[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며칠 전 연예계에서 또 비보가 날아왔더라고요. 고 전미선 배우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었는데요. 연예계에서는 이러한 소식이 드물지 않게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일반인인 우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연예인만큼 부러운 직업도 없거든요.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많이 받기도 하고요. 그에 따라 벌어들이는 수입도 일반인이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연예계 종사자들은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종종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화려해 보이기만 하는 연예인, 그런데 이러한 비보는 왜 생기는 걸까요? 경제적, 사회적 위치 등 현실적 조건만 따져보면 부족할 게 전혀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데도요. 그 이면에는 정신의학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기에 오늘은 그 이면에 대해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또한 그 내용은 제가 38 연재 동안 줄곧 해왔던 이야기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연재를 쓰고자 마음을 먹었던 건, 2019년 7월 2일 화요일에 방영되었던 ⌜SBS 본격연예 한밤⌟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생각이 문득 들어서였습니다. ⌜SBS 본격연예 한밤⌟에서는 고 전미선 씨가 예전에 방송에서 언급했던 이야기를 편집해서 보여주었는데요. 그중에서 2012년 방송 출연 당시 언급했던 내용이 제 시선을 끌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는데요.

 

<2012년 방송 출연 당시 (출처: SBS 본격연예 한밤)>

고 전미선: 너무 힘들어서 사실은 살짝 안 좋은 생각도 했었어요. 나는 이 세상에서 살 만한 가치가 별로 없는 사람인가 보다. 뭐 전미선이라는 사람 그냥 한 명 없어지면 이 세상 그냥 다 그냥 넘어가는데, 안 살아도 되겠다. 그런 생각이 문득 그냥 지나가더라고요.

 

사진_픽사베이

 

저는 개인적으로 고 전미선 씨를 뵌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고 전미선 씨의 마음속 깊은 곳을 제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위 멘트는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고 전미선’ 씨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위와 같은 생각(idealization, 이상화)을 가진 사람들 또는 위와 같은 생각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주시고 이 연재를 읽어주시면 될 듯합니다. 그리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상담을 할 때에는, 내담자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가, 위와 같은 포인트가 나타날 때 잘 다루어주는 것이 상담자의 역할이기도 하거든요.

 

여러분들도 위 멘트에서 어떤 이상한 지점을 발견하셨나요? 고 전미선 씨는 “나는 이 세상에서 살 만한 가치가 별로 없는 사람인가 보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전미선이라는 사람 그냥 한 명 없어지면 이 세상 그냥 다 넘어가니까.”였습니다.

잘 한번 생각해봅시다. 우리 각자는 모두, 동일하게 세상에 살고 있는 그냥 ‘one of them’입니다. 그 ‘one of them’ 중 누구 하나 없어지더라도 세상이 변할 리는 만무합니다. 사실 대통령조차도 거기에 해당이 됩니다. 대기업 총수도 동일하고요. 대통령이 없어지면, 국무총리가 대신 그 일을 맡아서 합니다. 대기업 총수가 없어진다고 그 기업이 망하지 않습니다. 대체할 사람이 존재하는 시스템일 테니까요.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자살을 생각한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명제가 성립된다고 받아들여지면, 결론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살아갈 이유가 없는 것으로 귀결되는데도 말입니다. 아마도 전미선 씨도 이 지점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을 해봤다면 이 지점을 모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럼에도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던 건, 내 마음속에 어떠한 이유가 자리 잡고 있었던 거겠죠.

 

이런 경우는 내 마음 안에 ‘이상화된 상’을 가지고, 자신을 그것과 동일시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마음속 깊이 ‘이상화된 상’을 자라나게 할 가능성이 높은 직업군입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되는 직업이죠. 그러다 보면 자신 스스로가 특별한 무엇으로 여겨지게 됩니다. 하지만 집에 들어오면 다시 그냥 평범한 사람이 되게 되죠.

이 gap이 주는 심리적 타격은 적지 않습니다. 많은 가수들이 무대에서 내려올 때 많은 공허감을 느낀다고 하더라고요. 이러한 일이 반복되게 되면 평범한 자신을 받아들이기가 싫어집니다. ‘특별한 무엇’으로 대접받을 때의 기분이 주는 행복감이 너무나 크니까요. 그렇게 되면 점점 내 안에 ‘실제 내 모습’을 부정하고 ‘이상화된 상’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됩니다. 스스로를 ‘특별한 무엇’으로 여기는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내 실제 모습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종착지는 ‘실제 내 모습’과 ‘이상화된 상’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방향으로 귀결되게 됩니다. 이 멀어진 거리는 결국 자신을 공격하게 되어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적으로는 이 괴리가 많은 정신병(신경증)의 원인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실제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의 격차가 크면 클수록 정신의학적으로는 취약한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38 연재 동안 언급했던 ‘진짜 나’와 ‘가짜 나’에 대한 바로 그 내용입니다. 연예인이라는 특수한 직업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정도와 내용이 다를 뿐이지, 저를 포함해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구에게나 해당이 되는 내용입니다.

제 상담 경험에 의하면 많은 분들이 마음 안에 이상화된 상을 가지고 있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워크 홀릭이셨던 제 내담자는 마음 안에 ‘쉬지 않고 일하는 완벽한 사람’이라는 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 이상화된 상은 결국 자신을 공격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상’이라는 말 자체가 ‘현실에 없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실현 불가능으로 귀결됩니다. 그러면 결국 자책으로 이어지게 되고 우울에 빠지게 되죠.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빠지셨던 제 내담자는 마음 안에 ‘누구에게나 착한 사람’이라는 이상화된 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 이상화된 상도 결국은 자기 자신을 괴롭히게 되어 있습니다. 늘 자신은 부족한 사람이 되어있고, 그래서 그 방향으로 더 노력을 하고, 하지만 또 부족하고, 늘 그렇게 살아갔던 것이죠.

내 안에 있는 ‘이상화된 상’은 결국 나 자신을 공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스스로가 힘들어지고 심한 경우는 정신병(신경증)이 생기기도 하게 되죠. 그렇기에 내 안에 어떠한 ‘이상화된 상’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살펴봐주는 것은 정신건강의학 관점에 있어서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예전에 MBC ⌜전지적 참견 시점⌟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정우성 씨가 나와서 이영자 씨랑 밥을 먹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하시겠지만, 저도 정우성 씨에게는 뭔가 모르는 ‘멋짐’이 가득가득 풍겨져 나오는 것을 자주 느꼈습니다.

‘워낙 잘 생겨서 그렇겠지’라고만 생각을 했었는데 ⌜전지적 참견 시점⌟에 나온 모습을 보고 ‘그것만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와 여유는 외모뿐만 아니라, 정우성 씨 내면의 힘에서 나오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우성 씨는 ‘진짜 나’와 ‘가짜 나’를 구별할 줄 알고 ‘진짜 나’로서 살아가려고 끊임없이 노력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우라와 여유는 거기서부터 나오는 것이었고요.

그만한 위치에 올라가다 보면 외부에서 주어지는 피드백이 ‘진짜 나’라고 착각하고 거기에 맞춰 살아갈 법도 하거든요. 물론 앞에서 계속 언급했듯이 그 방향은 자신을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방향이기는 하지만요. 짧게만 생각하면 큰 희열을 주기도 하기 때문에 쉽게 그 구렁텅이에 빠질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정우성 씨는 다르더라고요. 정우성 씨가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했던 말에서 그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정우성 씨의 입을 빌려, 여러분도 그 지점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가 바라는 정우성이 되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정우성이 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었던 거 같아요.”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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