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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쳐서는 안 될 우울증 환자의 마음

기사승인 2019.07.12  06: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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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신문 : 건대하늘 정신과 박지웅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학병원 전공의 시절 우울증으로 입원한 젊은 환자가 있었다. 치료가 잘 안되고 입원이 장기화되는 와중에 다른 문제로 찍은 복부 영상검사에서 희귀한 내분비 병변이 우연히 발견되었다. 의료진과 가족은 모두 흥분했다. 우울증을 일으키게 한 명백한 원인을 말 그대로 기적 같이 발견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수술로 문제의 호르몬을 분비하는 병변만 제거해주기만 하면 우울증이 완치되는 상황이었다.

수술로 우울증을 치료한다는, 정말로 드라마틱한 상황 속에서 가족들은 이제야 모든 것이 다 이해되고 해소됐다는 표정으로 ‘어쩐지, 우울증이 생길 애가 절대 아니었거든요. 그게 다 저 호르몬 때문이었군요’라며 기뻐했다. 의료진도 흔치 않은 케이스를 더 늦기 전에 발견한 것에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자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출처: http://www.endocrinesurgery.net.au/incidentaloma-overview/>

 

그런데 그렇게 모두가 기뻐할 때 환자가 먹먹하게 토로했던 말은 정말 의외였다. 그 환자를 위한 수술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며칠 사이에 내가 당직을 서는 날이 있었다. 병동 호출을 받고 가니 그 환자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심리적으로 힘든 건데, 아무도 그걸 몰라주는 것 같아요’.

정말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문제가 해결됐다고 손뼉 치는 동안에 그분만은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니 그분의 우울증이 갑자기 신체질환으로 취급되면서 역설적으로 우울한 감정은 적절히 다루어지지 않고 소외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가족으로부터도, 의료진으로부터도... 수술로 치료할 수 있든 없든 간에, 지금 그분이 심적으로 힘든 것은 여전한 사실인데 말이다.

‘그러셨군요, 많이 힘들었겠어요.’

 

사진_픽사베이

 

그날 이후로 그분의 말이 생각날 때가 종종 있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많은 것들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감정의 어려움도 그런 식으로 설명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뇌의 부위와 호르몬, 그리고 그것을 교정해주는 약물치료의 원리. 그런 걸 더 많이 논하게 되면서, 정작 병원으로 오게 한 감정적 고통과 환자가 품고 온 가슴 아픈 이야기들은 소외되는 게 아닌가 한다.

미래에 의학이 더욱 발달한다면 우울증 치료마저 당뇨병처럼 환자의 이야기보다는 혈액검사 수치가 훨씬 더 정확하고 중요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리된다 하더라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만큼은 환자의 이야기가 소외되지 않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가끔씩 떠오르는 그분의 낙담하는 표정과 목소리가 말해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지막까지 놓쳐서는 안 될 것, 그것은 바로 아픈 이들의 마음이라고 말이다.

 

박지웅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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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4
전체보기
  • ㅇㅇ 2019-07-13 18:50:55

    몸과 마음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줍니다. 이 기사에 나온 경우는 몸이 안좋아서 마음도 안좋아진 경우이므로 주변 사람들은 '수술만 하면 다 괜찮아지겠네'하고 이미 모든 문제가 해결된것처럼 대했겠죠.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현재 자신의 마음이 제일 힘들고 괴로운데 그걸 이해해주려는 사람은 없고 그저 '해치워버릴 문제'로 여기고 무시당하는 기분이었겠죠. 환자와 비환자의 생각차이가 큰것같아요.신고 | 삭제

    • ehrek 2019-07-13 02:00:45

      그 환자가 호르몬 때문에 마음이 우울해 진다라는 사실을 이해못한게 아닐까요? 사실 사람이라는 게 호르몬과 뇌의 작용으로 움직이는거 아닐까요. 그 마음을 당연히 알아줘야 하지만 호르몬치료를 하며 좋아지는 경우들이 있으니까요.

      분명한 이유가 있어서 (사별, 실직, 왕따, 이사 등등) 생긴 우울증은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 줘야 하지만 이유없이 우울하다는 사람들은 마음이 아닌 신체의 문제때문에 생기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 경우에는 약보다는 한약이나 침치료가 더 잘 듭니다. 믿기 싫겠지만 침치료만으로도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사람들 보고신고 | 삭제

      • 초등상담 2019-07-12 09:39:28

        또 역으로 몸이 안 좋으면 마음까지도 안 좋아진다고 보는 입장도 있지요. 그 입장도 일리는 있습니다. 열이 심하게 나면 평소보다 힘이 빠지긴 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조금 극단적으로 '장이 안 좋으면 성격이 안 좋다' 등의 이야기를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닉 부이치치 등 몸에 장애가 있으면서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분들은 뭐가 되나요. 암환자가 되고 나서 삶의 의미를 찾고 더 행복해 지신 분들은 뭐가 되는거죠. 몸과 마음에 교집합(공통 부분)도 있지만, 차집합(몸 또는 마음만의 고유한 영역)도 엄연히 존재합니다.신고 | 삭제

        • 초등상담 2019-07-12 09:36:33

          정말 극 공감되는 기사입니다.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마음의 상처를 무조건 몸의 상태를 가지고만 설명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체활동이나 약물 등이 심리적인 어려움 해소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정말 핵심적인 상처까지 다 치유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내담자의 이야기가 살아 있는 것이 심리치료의 기본이라고 봅니다.

          **이 글을 제 블로그에 링크로 걸어두고 싶군요.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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