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사연) 

첫 진단을 받은 게 20대 초반이었습니다. 현재까지 진단받은 건 재발성 우울증, 중증 우울증, 편집성 조현병(삽화성), 불안장애 이 네 가지인데요. 써놓고 나니까 정말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네요.

사실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절 둘러싼 모든 환경이 다 내 병의 원인이었던 것 같고, 반대로 어떤 것도 사람들 말대로 다 겪는 건데 나만 나약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대학생활 중에 같이 다니던 동기들한테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대놓고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저는 대학생활 내도록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고, 항상 불행은 한꺼번에 찾아온다는 말이 딱 맞는지 마침 그때 어머니랑 아버지랑 이혼하시고, 아버지는 사업 벌이다가 망해서 개인파산 신청하시고 저한테 직접적으로 아버지 같은 것 없다고 생각하라고 짜증 내길래 저도 열 받아서 연 끊자 그러고 연 끊기고, 등록금 낼 돈 없어서 국가장학금에 매 학기 집착하고. 겨우 스트레이트로 졸업하니까 지금까지도 취업 못하고 있어요. 한 일 년 반 날리고 지금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대학 나와놓고 직업훈련 다시 받고 있네요.

진짜로 기운 빠져요. 적고 나니까 진짜로 제가 많이 힘들었네요. 우울증 안 오는 게 이상할 정도로.

 

따돌림당할 때의 저에 대한 타인의 비난을 제가 아예 체화했나 봅니다. 머리로는 타인이 절 싫어하지 않아도 제가 잘못했거나 실수한 게 있으면 지적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데도, 타인이 조금만 저에게 지적을 하면 '아 내가 무능력하고 남한테 피해만 입히는 사람이구나'하고 쪼그라들게 됩니다.

그게 그 애들처럼 절 아예 비난하고 깎아내리고 괴롭히는 게 아니고 진심으로 악의 없이, 혹은 저를 성장시키기 위해하는 소리임에 알아도 그 당시의 기억 때문에 '저 사람도 날 싫어하면 어쩌지', '아 이번에도 내가 타인에게 불쾌감을 심어주고 피해를 입혔구나' 이런 생각으로 흐릅니다.

오늘도 직업전문학교 등교했는데 제 바로 옆옆자리 앉은 사람이 저보고 "의자 뺀 거 좀 집어넣고 다니세요."라고 딱 한 소리 했다고 그 말 듣고 "역시 나는 구제불능인가 봐."이런 생각에 하루 종일 빠져있었습니다. 그게 올바른 인지도식이 아니라는 걸 아는데도요.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타인의 평가에 쉽게 흔들리고 좌절하는 것 때문에 괴로움을 많이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일단 지금 우울증, 조현병, 불안장애 등의 질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위의 질병들은 말씀하신 인지도식을 왜곡시키는 것과 관련이 큽니다. 예컨대 우울증의 경우 나 자신, 주변의 상황, 미래의 전망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는 것이 핵심 증상입니다.

모든 병이 그러하듯 전문적인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임을 인지하고 꾸준히 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위의 질환들이 치료되면 지금의 부정적 평가에 대한 민감성도 자연스레 약화될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언제부터 이렇게 부정적 평가에 민감하고 수긍하게 되었는지 그 뿌리를 찾아보는 게 중요합니다. 글쓴이분께서는 추측컨대 대학교 시절의 왕따 경험에서 그 원인을 찾고 계신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수 있겠지만, 그 이전에 중고등학교, 초등학교, 유치원 시절은 어떠했는지 생각해보시는 것도 중요합니다. 타인의 비난에 대한 내재화를 말씀하셨는데 그 내재화라는 것은 주로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존감의 관점에서는, 타인의 부정적 평가 때문에 자존감이 떨어진다기보다는, 이미 자존감이 낮기 때문에 타인의 부정적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나 자신에 대해 스스로가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어느 정도의 능력과 특성을 지녔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관계에 신경 쓰기보다는 일단 나 자신을 잘 알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위에 적은 것처럼 언제부터 어떠한 연유로 낮은 자존감을 갖게 되었는지를 먼저 파악하십시오.

예전, 그리고 지금 내가 어떠한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노트에 적으면서 정리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사소한 것 하나부터,구체적인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내 장단점을 파악하게 된다면 조금 더 자신에 대한 확신이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비교적 쉽고 간단한 일에서부터 성공의 경험을 쌓아나가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운동, 음악, 정리정돈 등 무엇이라도 좋으니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이를 성취해나가는 경험을 하다 보면 조금씩 자신감이 쌓여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많이 힘든 시간을 보내시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적으신 내용을 보면 글쓴이 분은 스스로의 심리적 상태에 대해 비교적 핵심을 잘 파악하고 있고 이를 교정해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정신과적 용어로 심리적 마음가짐, psychological mindedness라고 하며 이를 지니고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증상 호전과 치료에 많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글쓴이 분의 능력을 잘 활용하시면 충분히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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