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조성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성격장애라고 들어보셨나요?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정신질환이 있는 상황과 아닌 상황, 즉 병적인 상태와 정상인 상태가 구분 가능하다고 보는 전제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습니다.

우울증 - 우울한 기분의 상태 : 바꿔 말하면 우울하지 않은 시기가 있다는 것이죠.

조증 - 기분이 고양된 상태 : 기분이 차분한 시기와 반대되는 고양되는 시기가 있다는 것이죠.

분리불안장애 - 중요한 사람과의 이별이 있을 때 심한 불안을 보이는 상태가 있다는 것인데, 불안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성격장애는 이런 관점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성격은 한 개인의 고유한 특성이면서 일관된 특성입니다. 일관된 특징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 때와 그런 때가 따로 없다는 것입니다.

성격 :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성질이나 품성" (표준국어 대사전)

성격장애라는 것은 이러한 개인의 고유한 특성, 인격의 부분이 본인을 매우 힘들게 하거나, 타인을 매우 힘들게 하는 병적인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개인의 특성을 병적 상태라고 진단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러한 성격장애는 몇 가지 분류 방법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경계선 성격장애'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경계선, 영어로 borderline입니다. 원래의 뜻은 신경증(노이로제)과 정신증(이른바, 정신병)의 경계에 있다는 뜻에서 시작됐습니다. 신경증(노이로제)의 대표적 질환은 불면, 우울, 강박 등의 질환이며, 정신증(정신병)의 대표적 증상은 환청이나 망상과 같은 사고의 이상이 있습니다. 그 경계선에 있는 질병이라는 의미로 어떨 때는 노이로제 같으며, 어떨 때는 정신병 같은 상태를 오간다는 의미로 '경계선'이라는 명칭을 붙였다고 합니다.

​처음 의미는 저러한 의미였지만 여러 정신분석적 이론가들이 각각 다른 이론적 토대와 진단 기준을 주장하며 변화를 하고 있는 병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대체적으로 학자들 사이에 통용되는 진단 기준(DSM-5)은 다음과 같습니다.

 

* 다음 9개의 증상 중 5개 이상을 충족해야 함.

1. 강렬한, 불안정한 대인관계
2. 부적절하며 강렬한 분노
3. 버림받음을 피하기 위한 필사적인 모습
4. 불안정한 정서
5. 충동적인 행동
6. 반복적인 자해 및 자살시도
7. 만성적인 공허감 및 권태감
8. 스트레스와 연관된, 일시적인 피해 사고
9. 심각한 해리 증상으로 인한 정체성 혼란

 

이렇게 학술적인 용어를 보면 잘 그려지지가 않으니까, 제가 가상의 인물을 창조하자면.. 

​A 씨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극단적인 불화 속에 자랐다. 그런 불화 속에서 A 씨는 부모가 싸우는 것이 자신의 탓인 것 같고, 버림받을까 봐 항상 불안했다.

A 씨는 어릴 때는 혼자 울고 있는 어머니를 달래줘야 했다. A 씨가 어머니를 두고 다른 일을 하려고 하면, 어머니는 매정한 것이라고 욕하기 일쑤였다. A 씨의 부모님은 결국 이혼하고, 어머니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전처럼 우울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인이 된 A 씨는 늘 항상 우울하고 공허했다.

A 씨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클럽이나 술집에서 이성을 만나는데 아주 급속도로 사랑에 빠지고 성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그런 관계는 오래가지 않는다. 어쩌다가 안정적인 사람을 만나 교제를 하더라도, 그 사람이 자신에게 소홀하다는 느낌을 받으면,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되고 그래서 연인과 크게 싸우게 된다. 

A 씨는 이런 일이 있을 때 자해를 하거나 약을 털어먹는 행동을 보인다. 그럴 때마다 A 씨는 본인의 말로는 어느 순간 정신을 잃고 자해를 하고 있거나 쓰러져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한다. 

 

또 다른 예로는, 최근에 급증하는 자해하는 청소년(혹은 젊은 성인)에서도 드러납니다.

친구들과 잘 지내지 못하거나 따돌림을 겪는 사람들,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 누구도 믿지 못하지만 누군가는 옆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

왜 자해를 하는지 물어보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공부도 못하고,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친구도 없어요. 제가 이상한 것이죠? 저도 이런 제가 싫어요."

청소년이나 초기 성인의 경우 발달 과정상 일시적으로 경계선 성격장애적인 특징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계선 성격장애는 왜 발생할까요?

이러한 경계선 성격장애의 발생에 대해 설명하는 방법으로 마음 헤아리기(정신화) 및 애착의 실패가 있습니다.

마음 헤아리기(정신화)라는 것은 아이의 출생 후 아주 원초적인 단계에서부터 애착 대상인 부모가 아이의 마음을 알아차리고(교감) 이를 상호작용으로 표현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단계를 통해서 아이의 심리적 자아가 생겨나고 정서가 분화된다고 설명합니다.

​이를테면 울고 있는 아이를 보고, 부모는 '배가 고프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쉬를 하고 싶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잠을 재워줬으면 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이의 상태에 대해 부모가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아이에게 실행시켜 준다면, 아이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 잘 알 수 있고, 충족시켜주는 부모로 인해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경계선 성격장애의 경우 이러한 애착과 마음 헤아리기(정신화)가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울 때 부모가 아이의 의도대로 반응해주지 못하면, 아이는 '내가 우는 이 감정은 뭐였지?'라고 혼란스럽고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며, 이질적 자아가 들어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청소년의 경우를 예를 들어드리면, "아빠, 엄마, 나 요즘 너무 힘들어요"라는 말에 "네가 뭐가 힘들어? 네가 힘든 것은 힘든 게 아니야" 이런 말을 하게 된다면, 아이의 마음속에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부모가 원망스러우면서, 한편으로는 '아 내가 힘들면 안 되는 거구나, 힘들어하는 내가 이상한 거구나' 이런 마음이 싹트게 됩니다. 이런 양가적인 마음이 싹트는 것이 바로 정신화의 실패에 따르는 이질적 자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자해를 하는 청소년의 경우 자신의 어려움을 몰라주는 부모, 선생님, 친구들에 대한 원망을 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을 혐오하면서 "이런 나도 내가 싫어요!"라고 하며 자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경계선 성격장애의 치료는 어떻게 할까요?

크게 약물치료와 비약물 치료가 있습니다. 약물치료를 통해 우울감, 공허감, 감정 불안정과 같은 증상을 완화시켜줄 수 있습니다. 비약물 치료는 개인 정신 치료(상담치료)와 집단정신 치료가 있습니다. 

​경계선 인격장애의 경우 치료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년 단위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애착과 마음헤아리기 이론에 따르면, 치료자가 환자의 감정을 읽어주고 공감해주는 시간이 필요하고,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잘 맞는 치료자를 만나고, 환경적인 변화와 본인의 노력들이 합쳐지면 호전될 수 있습니다. ​쉬운 병은 아니지만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치료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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