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우울증과 화병으로 진단받고 약 처방을 받았는데요. 저는 제 기분과 표정을 남들 앞에서는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고 해요. 제가 우울증인 걸 눈치채는 게 싫어서요.

근데 오늘 누군가 저에게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고 우울증인 줄 알았다고 하더군요. 그 순간 저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뭐라고 제가 이렇게 쇼를 하면서 살아야 하는 건지...

제가 우울한 게 누군가에게 피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화나 보인다, 차가워 보인다며 저에게 하는 소리들이 오히려 저에게 상처가 되거든요. 제가 화나 보인다고 해서 화를 낸 것도 아닌데 제 사정도 모르고 저를 판단하는 게 괴로워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너무 괴롭네요. 우울증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고 아닌척하기도 힘들고 저는 어떡해야 할까요?

사람들의 평판 무시하고 살면 되는데 마음이 여려서 그런 게 신경이 쓰이고 사람 많은 곳에 가면 마음이 불편하고 괴롭습니다. 오히려 상처 주는 건 제가 아닌 그들인데 저는 언제까지 남들이 하는 말에 상처 받으며 살아야 할까요?

마음이 너무 슬프고 힘드네요. 마음은 피가 흐르는데도 웃고 있는 제가 너무 가여워요.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입니다. 질문 주신 글을 찬찬히 여러 번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글에서 조금은 상반되는 두 가지 생각을 느꼈습니다.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우울증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내 마음이 그렇지 않은데도 굳이 괜찮은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입니다.

우선 드리고 싶은 말은, 우울은 부끄러운 부분이라거나 잘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뼈가 부러지는 것은 적절한 치료가 필요한, 단지 조금 불편한 일입니다. 마음의 불편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울이 심하면 내가 원하는 삶을 꾸려가는 데 불편하기에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필요하다면 치료를 받기도 하지만, 굳이 숨겨야 할 부족한 부분이나 잘못은 아닙니다.

 

화나 보인다, 차가워 보였다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이 말을 사용할 때는 보통 다음과 같은 마음이 아래 있는 것 같습니다. ‘너와 편하게 이야기를 하기엔 너의 오늘 기분이 좋지 않아 보여, 혹시 무슨 일 있니, 요즘 힘든 일은 없니.’ 또는 ‘최근에 네가 차가워 보이고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어. 그래서 같이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조금은 어려웠어. 그런데 오늘은 기분이 그때보다는 괜찮아 보이네.’ 

우리는 서로의 마음에 대해 얼마나 알까요. 지극히 짧은 대화 내용, 겉으로 드러나는 몇몇 표정이나 행동 정도로 서로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오해는 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오해하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 역시, 타인을 자주 오해합니다.

‘내 마음이 이렇게까지 힘든데, 그것도 모르고 화나 보인다, 차가워 보인다고 하거나, 남의 속도 모르고 우울증인 줄 알았다, 괜찮아 보인다고 하는 게 너무 힘들다.’는 그 마음은 십분 공감이 됩니다. 다만 그러한 말이 나를 기분 나쁘게 하고 힘들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속속들이 파악하기는 애초에 어렵다는 한계에서 비롯된 말들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이는 상대방의 의도를 무조건 좋게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아니라,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감정과 생각들로부터 내 마음을 지키는 일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완벽하지 않기에, 항상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말만을 주고받으며 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나 스스로 역시, 타인을 위한다며 했던 말로 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요.

애초에 작정하고 다투려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려 말을 건네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타인의 말이 너무나도 마음에 걸린다면, 그래서 마음을 돌아봐도 불편한 감정이 진정이 되지 않는다면, ‘내가 완벽하지 않은 것처럼, 저 사람도 그래서 이런 말을 했겠구나, 내 마음을 저 사람이 다 알진 못하겠구나, 굳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하려 그런 말을 하진 않았겠지.’라는 생각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 합니다.

 

잠깐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돌려 보겠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 나 스스로는 다른 사람에 대해 얼마나 생각을 해 보았을까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다른 사람 그 자체’에 대한 생각을. 저도 답변을 쓰며 한 번 더 돌아봅니다만, 의외로 그 생각이 그리 많지 않았고, 몇 번의 생각이 있었다 하더라도 마음에 그리 오래 남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하기보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종종 몰두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마음은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에 너무나 많은 공간을 할애하고 있어서 의외로 타인에게 깊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타인에 대한 생각도, 찬찬히 살펴보면 ‘그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 ‘그가 나와 어떻게 연관이 있는지’ 등 ‘나와 관련된 그에 대한 생각’인 경우가 많습니다. 

평판 같은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며 애초에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내가 신경을 쓰는 것만큼의 타인의 시선이 존재하는지, 내가 신경이 쓰이는 만큼, 타인의 마음에 나에 대한 비중이 있는지는 돌아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는 보통 ‘타인의 시선’ 때문에 힘들다기보다는, ‘타인이 나를 좋지 않게 볼 것이라는 나의 마음’ 때문에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몸살에 걸리면 기운이 없어지고 쉽게 지치게 되듯 마음도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몸살처럼 우울이라는 감기에 걸린 마음은 평소보다 자기 자신을 좋지 못하게 바라보고, 타인이나 처한 상황 등 나를 둘러싼 주위 환경을 부정적으로 치우쳐 바라보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마음이 편안할 때라면 크게 개의치 않고 넘어갈 말들도 힘들 때는 마음에 오래 남아 부정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리 불편하지 않을 법한 이야기들이 마음에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요. 혹여 그런 일을 경험하실 때 ‘저 사람은 왜 저런 말을 할까.’라는 생각보다는 ‘요즘 내가 신경 쓸 일이 좀 많았는데, 그래서 마음이 불편한 쪽으로 조금 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불편하게 들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고 떠올려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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