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다른 게 아니라 정리 정돈이 안 되는 누나 때문에 걱정입니다. 몇 해 전부터 서서히 누나가 집안 청소를 게을리하다가 이제는 사람이 누울 자리만 겨우 나올 정도로 집안 청소가 되지 않습니다. 설거지는 악취가 날 정도로 한 달간 미룰 정도입니다.

누나가 2년에 한 번 정도로 이사를 자주 하는데 제가 옆에서 보기에는 집이 너무  지저분해져 살기 힘든 지경이 되면 이사를 가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다가 이사를 가서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다시 지저분해집니다.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무엇보다 걱정은 자식이 있는데 어릴 때는 별로 못 느끼는 것 같더니 큰 놈이 중학생이 되니 집이 지저분해져 못마땅해하는 게 눈에 보입니다. 집에 친구도 데려오고 싶고 편하게 쉬고 싶기도 할 텐데 도저히 그러기에 집안이 누구한테 얘기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저분하니... 곁에서 보는 제가 너무 속이 상합니다. 저러다가 엄마랑 갈등이 심해지거나 지저분한 집안 모습에 자괴감을 느껴서 나중에는 위축되는 건 아닌지 너무 걱정이 됩니다.

 

실은 저도 어릴 때 어머니가 집안을 치우지 않아 너무 스트레스였습니다. 어머니는 우울증이 있으셨고 몸도 아프셨습니다. 지나고 보니 지저분한 집안 모습에 내내 저도 모르게 우리 집에 대한 콤플렉스 같은 게 있어서 위축이 많이 되었습니다.  다른 집에 가서 깔끔하고 편안해 보이는 집안 환경을 보고 나면 괜히 부럽고 우울해졌지요...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을 조카들이 겪게 될까 봐 너무 걱정이 됩니다.

누나는 공황과 우울이 있습니다. 청소는 손이 너무 저려서 하고 싶어도 움직이질 못한다고 하는데... 어릴 때 봤던 엄마의 모습과도 많이 닮았지만 누나는 그 정도가 더 심한 것 같아 너무 걱정입니다. 병원에도 다니고 몇 개월째 약도 먹고 있는데 크게 호전되지 않는 것 같네요. 병원도 다니는데 왜 나아지질 않는 건지.

다른 건 몰라도 집안 환경만큼은 애들 생각해서 어느 정도라도 정리하고 살아야 될 텐데... 엄마의 경우도 있고 해서 저는 누구보다 악화되어가고 있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알면서도 곁에서 뻔히 보고 있자니 너무 답답하고 무력감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답답한 것은 병원에서 약물과 상담치료를 받고 있는데 호전되지 않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혹 누나가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닌지...

본인은 괜찮다고 하지만... 누나도 애들도 너무 걱정입니다. 제가 누나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꼭 좀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입니다. 현재 누나분의 가족 구성원은 어떤지, 어떤 환경에서 누구와 생활하시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말씀 주신 내용을 보면 집안 정리의 대부분을 누나분이 담당하시는데, 이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걱정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우선 글쓴이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등을 미루어 보았을 때 글쓴이님의 우려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아이들에게도 깔끔한 생활환경이 그렇지 못한 환경보다는 신체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물론 좋겠지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번 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누나분이 지금처럼 우울, 공황이나 손저림 같은 일견 확연한 실체가 없어 보이는 경과가 아닌, 팔다리의 골절과 같은 눈에 보이는 확연한 상병으로 인해 정리에 힘들어한다면 글쓴이님이나 누나분의 가족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를 하실까요?

 

정리 정돈을 어렵게 하는 여러 심적 요인이 있을 수 있고, 또 이러한 어려움에 대해 정확한 진단 및 치료적 접근으로 도움을 드리는 것은 물론 중요합니다. 다행히 누나분께서는 우울, 공황으로 꾸준한 진료를 보고 계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측면이, 이러한 마음의 어려움에 대한 가족의 반응입니다.

우울이나 불안장애의 일환으로 심한 무력, 무의욕, 실행기능의 저하, 피로감 등이 동반될 수 있습니다. 심할 경우 가사 정도가 아니라 개인위생관리, 식사 같은 기본적인 일상 수행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 이러한 경과는 눈에 보이거나 명확히 드러나진 않기 때문에, 확연히 드러나는 신체질환들에 비해 그 고통이 간과되거나, 심하게는 꾀병 같이 폄하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은 환자분들에게 큰 스트레스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진료를 보다 보면 ‘차라리 몸이 아픈 거면 마음도 덜 답답하고 주변 보기에도 부끄럽지 않겠다’는 말씀을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힘든 마음만으로도 버거운데, 다른 신체적 질환처럼 인정이나 도움, 격려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더 힘들게 다가온다는 것이지요.

 

현재 누나분의 가정환경, 가족 구성, 구체적 상황 등에 대해 자세히 알 수는 없어, 답변을 드리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정리정돈을 비롯한 가사는 해낼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니, 누나분이 가사를 버거워하신다면 가족분들이 현실적으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집안일을 나누면 좋을지 상의를 해 보시고, 실행에 옮기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피치 못할 신체질환을 바라보는 것처럼 누나분이 호소하시는 마음의 어려움에 충분히 공감해 주시고, 꾸준히 진료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시며, 따뜻한 이해와 위로의 말을 건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서 나아서 집안일을 제대로 챙겼으면 좋겠다는 뉘앙스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지금이 많이 힘들겠다는 공감입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 조카를 걱정하시는 마음 등으로 그러한 고민을 하시는 것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이 됩니다. 아무쪼록 모두에게 행복이 깃드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부족한 답변이지만,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