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의 예기불안과 비행공포증에 대처하는 안심시나리오

[정신의학신문: 이상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방송인 A씨는 미국 애틀란타행 비행기에 촬영차 가는 길이었다. 비즈니스석을 예약했지만 업그레이드가 되어 기분 좋게 일등석 자리에 앉게 되었다. 넓고 편안한 자리였다고 한다. 그런데 웬걸. 갑자기 앞쪽 비행기 문이 닫히는 순간 갑갑한 느낌이 들었고, 이 공간에서 13시간을 견딜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자 숨이 막히며 몸이 이상해지더란다. 결국 A는 비행기를 타지 못하겠다고 말하고, 뒤편 문으로 나왔다. 자신으로 인해 비행기는 2시간 정도 출발하지 못했는데, 짐을 내리고 안전확인을 하는 절차로 기내 안의 다른 승객들의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항공 마일리지가 70만이나 될 만큼 비행기를 많이 탔던 A는 우습게도 자기 손으로 문을 열 수 없는 곳에서 답답함을 느끼면서 공항을 황급히 빠져나갈 수밖에 없었다.

 

일등석에서 공황이라니. 공황이 있더라도, 단 한 번으로 공황장애가 진단되는 것은 아니다. 공황장애의 진단기준을 보면, 반복된 예기치 못한 공황이 있어야 하고, 추가 발작에 대한 지속적인 걱정인 예기불안과 발작과 관련된 걱정이 계속되거나, 그로 인한 부적응적 행동의 뚜렷한 증상들 중 한 개 이상의 증상이 1개월 이상 지속되어야 내릴 수 있다. 물론 신체적인 문제가 배제될 때에 공황장애라고 진단을 내린다. 

평생 살면서 30%가 걸린다는 공황, 오랫동안 기다렸던 휴가에 공황이 온다면 난감하기 짝이 없다. 비행기 타는 여정 내내 당황스럽고 괴로울 것이다. 당신이 공황장애의 예기불안으로 치료를 받았다면, 아마도 평생 비행기를 타보는 것이 숙제였을 것이다. 언젠가 타야 하는 비행기를 안전하게 타는 방법이 없을까?

갑자기 찾아와 서든어택 펀치를 날리는 공황이라 해도 10분 있다가 자체적으로 멈출 수밖에 없다는 체험을 각인시키고, 대응 매뉴얼을 갖고 있다면, 불안을 진정시키고, 비행기를 타는데 심리적 안정을 확보할 수 있다. 문제는 응급상황이라고 스스로가 해석해 일단 살고 보자는 마음이 요동치면, 안 그래도 요동칠 수 있는 비행기에 내 몸을 맡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여러 번의 공황발작을 겪고, 충분히 여행에 대해서 준비를 했더라도, 하늘 위에 떠있는 비행기 안은 여러 공황발작이 터질 수 있는 자극들로 충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죽하면, 공황장애의 노출치료의 막바지 단계가 비행기 탑승훈련이 아니겠는가.

실제 공황이 올 때도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는 대응 시나리오를 이제부터 순차적으로 살펴보고, 자신만의 비법을 첨가하면 더욱 좋을 듯싶다. 어쨌든 대처방법을 숙지하고, 공황이 오면, 내 자율신경이 몸을 위해 일해주는 것을 믿고 맡길 수 있다면, 비행기를 타는 것도 버스 타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사진_픽사베이

 

공항으로 출발 전 준비사항

공항패션은 신경 쓰지 않고, 무조건 편하고 느슨한 옷을 준비한다. 여권이나 신분증, 휴대폰은 꼭 챙기고 긴장할만한 상황을 꼼꼼히 확인하고 대비할 수 있어야겠다. 해외여행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준비하고, 무엇보다 여유 있게 공항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 좋다. 허겁지겁 공항 시간에 맞춰 발권 수속을 하는 것은 편도체를 자극해 쓸데없이 긴장감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공항에 늦게 도착해 중간 좌석을 배정받아 꽉 낀 샌드위치 상태가 되면 답답함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 탑승권을 발권할 때, 복도석을 확보한다. 좁은 이코노미석보다는 탑승구 좌석이나 비즈니스 좌석이 좀 더 쾌적할 수 있겠다.

만약, 탑승권을 받았는데, 검색대 대기줄이 밀려있다면, 가슴은 두근거릴 수 있다. 탑승구까지 헐레벌떡 뛰고, 겨우 시간에 맞춰 비행기를 아슬아슬하게 타는 상황에서 잠시 안도감이 들더라도, 심박동이 증가된 상태에선 기내 탑승 후 속이 메스껍고, 심장이 두근두근거리는 눈앞이 하얗게 되어버리는 상황을 맞이한다면,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히는 것이다. 공항에 일찍 도착해 변수를 줄이는 것이 최선이다.

물론 비행기 예약을 하는 시점부터, 주치의와 상의해 항공기 탑승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되도록 경유를 많이 하지 않고, 직항편을 이용한다. 환승 절차가 낯설기에 긴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황장애 노출치료에서 국내선 비행부터 순차적으로 시행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편안하고 여유 있게 타는 것을 상상하는 것도 좋다. 편안한 자세에서 눈을 감고,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공항 도착, 탑승수속, 항공기 탑승, 착석해서 이륙 후 기내 밖의 구름을 바라보는 안전한 장면을 순차적으로 만들어 차분하고 이완된 감각을 미리 몸에 준비시키는 리허설도 꽤나 도움이 된다. 이 정도로 마치고, 다음과 같은 있을 법한 시나리오에 대비해보는 연습도 필요하다.

 

실제상황 1. 공항에서 도착했는데, 공황이 오면 어떡하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불안한 기운이 감지된다면, 무척 당황스러울 것이다. 우선은 복식호흡법을 통해 가라앉힌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소중한 몸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장치가 가동된다고 믿자. 공황대처방법을 숙지해 호흡-이완-분산의 전략을 동원한다. 처방받은 응급약물을 이때 먹어주면 괜찮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정 안되면, 공항 의무실을 찾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황이 올 것을 대비해 응급약을 휴대하는 것이다. 

 

실제상황 2. 탑승 후 기내에서 공황이 오면 어떡하지?  

문이 닫힌다. ‘이젠 내릴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한다면, 뛰쳐나가고 싶어도 뛰쳐나갈 수 없이 꼼짝없이 앉아있어야 한다. 좁은 좌석에서 벨트는 꽉 조여있고, 더 좁게 느껴지면서 ‘나 이대로 죽는 것 아니야’ 하며 ‘비행기를 내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식은땀이 나고, 기름 냄새에 멀미가 오는 듯해도 정신을 바짝 차려 질문을 통해서 주의를 분산시켜야 한다. ‘일단 뛰쳐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죽을 것 같지만 과연 그럴까?’

압도될 것 같은 느낌에 호흡이 빨라지겠지만, 하나, 둘. 셋, 숨을 천천히 깊게 쉬며 숨 고르기에 들어간다. '대개 이러다가 말겠지!'라고 생각하며 호흡-이완-분산을 통해서 다스릴 수 있게 되면 공황은 만만한 불안으로 줄어들 수 있다. 좌석벨트 등이 꺼지는 대로 화장실에 가보고, 세수를 한다. 화장실 옆에 공간에 기대어 사람들을 멍하니 쳐다보는 것도 괜찮다. 결국에는 죽는다는 생각 때문에 죽는 것 같다고 느낄 뿐, 우리 몸은 쉽게 죽지 않게, 방어기전이 발동된다는 점을 떠올리자. 복식호흡을 하면서 승무원에게 물 한 컵을 달라하면서 천천히 ‘고맙습니다’라고 말을 건네보며 호흡-분산-이완전략을 계속해 나간다. 공황을 겪으면 우리 몸은 과민해지기에 쓸데없는 세세한 것을 신경 쓴다. 비행기 소음도 크게 들리기도 한다. 문제는 완벽하게 조절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비가 오면 우산을 써도 비를 맞을 수 있듯이 공황을 겪는데 깔끔할 수는 없다. 비록 공황을 겪더라도 비행기를 여태 타고 있으면 잘하고 있다고 격려하면서 애쓰고 있는 나 자신을 뿌듯하게 바라봐주자. 

 

실제상황 3. 난기류에 비행기가 흔들려 공황이 오면 어떡하지?

아무리 비행기를 많이 탔어도. 난기류에 급강하하는 것을 경험하면, 다시는 비행기를 타고 싶지 않다. 기내가 아수라장이 되면, 공황이 오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흔들린다고 꼭 위험한 것이 아님을 아는 것이 분명 도움이 된다. 비행기는 원래 기류를 타고 간다. 기류가 불안정하면, 당연히 비행기 동체도 떨리는 것이 당연하다. 하늘도로에서 잠시 비포장도로구간에 들어섰으니 요동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능숙한 기장의 비행실력을 믿어야 한다. 기장과 부기장 전문가가 두 명이나 타고 있다. 조금 있다가 기류를 벗어나면 안내방송이 나올 것이다. 할 수 있으면, 승무원의 표정도 살펴보자. 그런 상황에서 차분하게 주변을 살피는 강인한 표정을 보면서 '저렇게 내가 대처하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해보자.

 

기타상황: 일반적인 상황에서 이완을 하기 위한 팁. 

승무원이 "커피 드시겠습니까?" 물어보면 사양하는 편이 낫다. 카페인은 교감신경계를 자극한다. 심박수가 빨라지면 공황모드가 발동하는 것처럼 오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술 먹고 자는 것도 추천하지 않는다. 와인은 먹어도 되지 않을까? 정 아쉽다면, 딱 한 모금만 마시자. 알코올은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리게 만들고, 이완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효과가 있었던 자신만의 전략을 써보는 것도 좋다. 옆 사람과 화장실을 가면서 잠시 말을 걸며 따분함을 이겨 본다든지, 온열안대를 끼고, 허브오일을 바르거나, 평소 좋아하는 곡을 휴대폰에 담아서 듣는 것도 괜찮다. 나만의 안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같이 비행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안전과 편안한 여행을 위해 기도해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 자신만의 안전지대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도 좋은데, 난기류 상황에서 코 골고 자는 사람을 바라보는 웃지 못할 상황을 생각해보자. 불안한 아이나 고양이를 내 품에서 진정시키는 장면도 내 안의 숨어있는 강인함을 끌어낼 좋은 자산이 될 수 있다. 틈틈이 기내에서 목덜미와 어깻죽지와 종아리 스트레칭을 하면서 몸을 이완시키는 것도 도움이 된다. 

만일의 경우엔,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도움을 요청한다. 이 많은 사람들이 잠시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 있다고 생각하고, 결코 나를 외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탑승객 중에는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분들도 있을 거라 생각하면 조금 안심이 될 것이다. 승무원들 역시 비행공포증을 앓고 있는 승객에 대한 노련한 경험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인간의 따뜻한 유대감과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실제상황 4. 착륙에 실패하면 어떡하지?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곧 착륙하겠습니다. 좌석 등받이와 테이블을 제자리로 해 주시고, 좌석벨트를 매 주십시오. 그리고, 지금부터는 전자기기를 사용하실 수 없으니 전원을 꺼 주시기 바랍니다."

거의 다 왔다. 착륙에 실패하는 그럴 일은 없다. 그동안 걱정을 충분히 했으니 이런 걱정은 과감히 무시해주는 센스를 발휘하는 것은 어떨까? 이때만큼은 수하물 챙겨 빨리 나갈 현실적인 생각만 해보자. 정말 죽지는 않았음을 확인했다면, 여기까지 버틴 스스로에게 박수를 쳐주며, 삼페인을 터뜨릴 시점이다. 매번 죽다 살아나는 경험을 했지만, 일상에서 다시 살아나는 값진 경험을 이어나가기 위해 수건의식(삶의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참조해 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이제 주변을 돌아볼 때가 되었다. 애쓴 자신에 대해 뿌듯하게 여기며 지금까지 도운 준 고마운 분들을 생각하며 앞으로 자신의 삶에 더 긍정적인 경험이 더 많을 것을 기대하자. 승무원들에게 고맙다고 매너 있게 말하며, 당당하고 여유 있게 기내를 빠져나오는 그림이 그려진다면 당신은 이제 공항에서 공황을 두고 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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