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로 바라본 세상 이야기 12

[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LOL에는 150명에 가까운 챔피언들이 있습니다. 이 중에 ‘야스오’라는 캐릭터가 있고, LOL 플레이어 사이에서는 ‘야필패’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야스오를 고르고 플레이하는 팀은 반드시 진다.’라는 속설을 반영하는 별명인데요. ‘야스오’는 왜 이런 누명을 쓸 수밖에 없었을까요? 게임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사람의 심리를 이해한다면, 억울한 ‘야스오’도 누명을 벗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단 바로 이전 연재(LOL 게임에서 마주하는 진상들, 그들의 심리)의 내용도 참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글에서 제가 남 탓과 자존감 사이의 관계에 대해 간단한 심리 실험을 통해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결국 ‘야필패’도 남 탓의 심리가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팀이 게임에서 지는 경우, 내 문제로 돌리지 않고, 남 탓으로 돌리는 경향은 너무나 쉽게 일어납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말씀드리면, ‘왜 하필이면 야스오인 것이냐.’에 대해서는 설명이 되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심리학 실험에 따르면, 하필 야스오여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리그오브레전드(LoL)의 캐릭터 <야스오>


‘야스오’라는 캐릭터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조작 난이도가 높은 편이며 잘할 경우 아주 좋은 챔피언이 되지만 못할 경우 우리 팀의 패배에 극단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캐릭터입니다. 즉, 중간이 없고 극과 극을 오가는 캐릭터인 것입니다. 이 특징은 ‘야필패’가 될 수밖에 없는 근거가 됩니다. 다음 심리학 실험을 살펴보시면 이해가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한 번 같이 해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우리가 판사라고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아이에 대한 양육권을 어느 부모에게 주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부모 A는 소득, 건강 상태, 노동 시간 등이 평균적이며, 아이와 관계가 원만한 상태입니다. 부모 B는 소득이 평균 이상이고, 아이와 관계가 매우 친밀하여 함께 활동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 때문에 출장이 잦은 편이고, 건강 상태에도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어느 부모에게 양육권을 주어야 할지 결정하도록 하였습니다. 상황은 위와 같이, 두 그룹 모두 동일하게 주어졌지만 질문만 약간 다르게 하여 실험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룹 1에게는 ‘만약 양육권을 준다면 어느 쪽 부모가 좋을 것인가?’로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부모 B를 선택한 사람이 64%였습니다. 그룹 2에게는 ‘어느 쪽에게 양육권을 주는 게 적당하지 않을까?’로 질문을 약간 다르게 하여 결정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또 부모 B를 선택한 사람이 55%가 되었습니다. 양육권에 적당한 부모를 물어도 B가 우세하게 나왔고, 적당하지 않은 부모를 물어도 B가 우세한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분명 이 답변은 모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그것은 부모 A의 경우 양육권을 인정하기에도 부정하기에도 두드러진 특징이 없어서입니다. 반면에 부모 B의 경우 양육권을 인정하기에도 부정하기에도 두드러진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육권을 인정할 때나, 부정할 때나 근거를 찾기 쉬운 부모 B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실험은 ‘야필패’가 될 수밖에 없는 근거를 제공해줍니다. 일단 우리는 게임에 이길 경우 그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습니다. 하지만 게임에서 지게 될 경우,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로 책임을 돌리기 위해 애씁니다. 이때 그 책임을 짊어질 캐릭터는 누가 될까요? 위 실험과 같이 명백한 근거를 찾기 쉬운 캐릭터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야스오’는 조작 난이도가 높고 극과 극을 오가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이 레이더에 걸릴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게임에서 지게 될 경우, ‘야스오’로 그 책임의 돌팔매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필패’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예로부터 내려온 말 중에 틀린 말이 없는 것 같습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 것이죠.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체기사 보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