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강남 푸른 정신과 원장]

 

광장공포증이 뭔가요?

광장공포증의 영문명인 ‘agoraphobia’는 광장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인 ‘agora’와 공포증을 의미하는 ‘phobia’가 합쳐진 단어다. 광장공포증은 그 이름만 봐서는 광장과 같은 넓은 곳에서의 불안과 두려움을 경험하는 질환으로 오해받기 쉽다.

하지만, 광장공포증에서 두려움의 대상은 단순히 ‘넓은 장소’가 아니라, ‘도움을 받거나, 즉시 탈출하기 어려운 장소’이다. 즉, 광장공포증은 여러 이유로 인해 쉽게 벗어나지 못하거나, 즉각적으로 도움을 받지 못할 거 같은 장소를 두려워해 이를 회피하게 되는 질환이다.

 

공황장애가 광장공포를 만든다?

광장공포증은 정신의학 진단 체계에서 한동안 공황장애와 밀접한 질환으로 여겨졌다. 공황장애를 가진 이들은 대개 자신을 둘러싼 환경적 변화에 민감해진다. 즉, 예전에는 부담 없이 갈 수 있었던 많은 곳이 불편하고 두려운 곳으로 변해버리게 되는 것이다.

장소에 대한 불편함 중에는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사람들이 붐비는 지하철 안, 당장 벗어날 수 없는 비행기,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는 영화관 등의 장소가 답답함과 불편함을 유발하고, 더 나아가 공황발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공황장애를 진단할 때에 크게 ‘광장공포증을 동반하는 공황장애(panic disorder with agoraphobia)’와 ‘광장공포증을 동반하지 않는 공황장애(panic disorder without agoraphobia)’로 분류하였다. 그만큼 공황장애와 광장공포증은 흔히 동반되어 나타나며, 광장공포증 동반 여부에 따라 치료의 목표나 경과 또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정신의학 진단체계가 DSM-IV에서 DSM-5로 판올림 되면서 공황장애의 하위분류 정도로 여겨졌던 광장공포증이 나름의 독립적인 진단체계와 경과를 가진 질환으로 보려는 움직임이 생겨났지만, 임상적으로는 여전히 공황장애와 광장공포증의 교집합은 적지 않다.
 

사진_픽사베이


실제로 공황발작을 겪은 이들은 광장공포증을 함께 겪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광장공포증을 가진 이들의 3/4 정도는 공황장애를 함께 앓는다는 연구도 있다. 공황장애에서 경험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신체 질환들이 생활 반경을 좁아지게 만드는데, 당연히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장소는 더욱 회피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피하게 된다면 당장은 그 장소가 유발하는 불편함을 마주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두려움의 대상을 피하기만 한다면 점차 마음 안에서 두려움의 크기는 불어나고, 어느샌가 그 장소는 더는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마음속에서 특정 장소가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등의 대처 행동을 전혀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곳으로 변해버린다.

광장공포에 숨은 의미가 탈출하거나 도움을 구하기 어려운 장소에 대한 공포임을 감안할 때, 공황장애로 인해 생긴 여러 장소에 대한 두려움은 광장공포와 같은 맥락의 공포라 할 수 있겠다.
 

또, 불안은 일반화(generalization)하는 경향이 있다. 한 상황에서 불편함을 겪고 이를 피하기만 한다면, 처음의 상황을 넘어 비슷한 다른 상황들도 불안해진다. 공황에서 흔히 겪는 불편함 중 하나는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한, 때로는 숨이 멎어버릴 것 같은 질식감이다. 이런 이유로 처음에는 단순히 사람이 많은 지하철을 피하지만, 점차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을 회피하며, 급기야 사람이 붐비는 대형 마트나 영화관 등도 꺼리게 된다.

이렇듯 공황장애에 동반된 광장공포증은 일상의 불편함을 더욱 가중시키고, 전반적인 생활 반경을 좁힌다. 공황에서 나타난 장소에 대한 두려움은 ‘탈출할 수 없는, 당장 도움을 구할 수 없는’ 장소라는 의미가 덧붙여지며 광장공포로 번지게 된다.

 

피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 불안을 마주 보기

광장공포증 겪는 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것은 회피(avoidance)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회피는 불안의 대상을 더욱더 두렵게 만들고, 급기야 그 불안에 다가서는 것조차 두렵게 하며, 비슷한 다른 상황들에도 두려움을 느껴 피하게 만든다. 하지만 피하는 것이 정답은 결코 아니다. 광장공포증을 비롯해 여러 불안장애의 치료 중 가장 핵심적인 건 결국 불안의 대상을 피하는 것이 아닌 마주하기, 바로 직면이다.
 

대개 사람들은 불안의 대상에 가까이 가는 것만으로도 불편함을 느낀다. 처음부터 자신이 불편해하는 대상을 마주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며, 혼자 해내기 힘들기에 약간의 기술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불편함을 느끼는 장소들을 나열하고, 약한 불편함에서 가장 불편한 수준까지 순위를 매겨보는 일이다. 그러고 나면 가장 덜 불편한 장소에서부터 점차적으로 견디는 시간을 늘려보자. 이를 체계적 탈감작화(systematic desensitization)라 한다.

어떤 이들은 불편한 장소에 머무르게 되면 불안이 점차 상승하여 견디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는 근거 없는 재앙화 사고*에 가깝다.
 

그림_신재현


불편한 상황을 마주하면 처음에는 불안한 마음이 다소 상승할 수는 있다. 하지만 불안 또한 습관화(habituation)가 되며, 많은 이들이 예상과는 달리 한없이 불안이 올라가기보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 불안이 다시 줄어들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같은 불안을 반복적으로 마주하면 불안을 느끼게 되는 역치(threshold)가 점차 상승하여 같은 상황에도 이전과 같은 불안은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위험하다/불편하다’고 인지하는 순간 우리 몸의 생리작용을 관장하는 자율신경계 중 교감신경계(sympathetic nerve system)가 작동하여 우리 몸 전체가 활성화되는데, 이때 우리는 갑갑함, 초조함, 가슴 두근거림 등 불안의 신체 증상을 겪게 된다. 하지만 체내에 축적된 에너지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우리를 불편케 하는 교감신경계의 활동도 잦아들게 되어 자연스레 진정국면에 접어들 수밖에 없다. 이렇듯 불안한 마음은 계속 강해질 수 없으며, 영원히 머무르지도 않는다.
 

불안을 마주하기 위해 그 불편함도 결국 흘러간다는 명제를 기억하자. 생각과 감정은 기차이며 우리 마음이 기차역이라고 생각해보자. 불현듯 ‘불안’이 들어와 역에 잠시 정차할 때 우리는 순간적으로 몸과 마음의 불편함을 인식한다. 하지만 기차는 결코 영원히 머무르지 않으며, 다른 목적지를 향해 떠나기 마련이다.

어제 떠올렸던 생각과 감정을 이 글을 읽는 오늘까지 생생하게 마음에 담아두는 이는 없지 않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차가 들어왔음을 인식하되, 가벼운 마음으로 우리가 하던 일에 집중하는 일밖에 없다. 불안이 마음에 머물렀다 이내 사라지는 몇 차례의 경험은 우리를 불안과 마주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다.
 

불편한 상황에 직면하면서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변화는 그 장소에 대해 해석이 달라진다는 거다. 상황에 대한 불편감은 우리가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크게 영향받는다. 공황장애를 경험하기 전에는 거리낌 없이 다니던 사람이 많은 강남역 지하상가, 발 디딜 틈조차 없는 출근길의 지하철, 관객이 들어찬 영화관은 공황발작 후 생긴 신체 반응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광장공포가 생겨나며 ‘도저히 갈 수 없는 곳’,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되어버렸을 테다.

그러나 두렵지만 단계적으로 불편함에 마주하고, 이에 습관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불편하지만 생각보다 견딜만한 곳’, 더 나아가 ‘불편하지 않은 곳’으로 바뀔 수 있다. 광장공포증으로 인해 늘 회피하던 장소는 해석의 변화로 말미암아 예전처럼 일상적인 장소로 변하게 될 것이다. 물론, 적절한 수준의 노출 단계를 정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재앙화 사고 : 단계를 건너뛰어 파국적인 결말을 예상하는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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