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장재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일상에서 ‘신경이 예민하다’라는 말을 흔히 한다. 정신의학을 공부하기 전엔 이 말이 그저 모호한 증상을 두루뭉술하게 표현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증상은 호소하지만 검사해도 별 이상은 없을 때 이를 두고 ‘신경성’이라며 설명하는 것을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부를 하고 임상경험이 쌓일수록 이 용어가 꽤 정확한 표현임을 체감하게 된다.

신경이 예민하다는 것은 과연 어떤 상태일까? 우선 오감이 모두 민감해진다. 최대의 시각 자극을 흡수하기 위해 동공이 확장된다. 청각도 예민해져 작은 소리에도 쉽게 놀란다. 촉각도 예민해져 미세한 자극도 민감하게 느껴진다. 교감신경 또한 민감해져 작은 자극에도 가슴이 쉽게 두근거린다.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 불안을 잘 느끼게 되는 이유다.

자극에 민감하고 쉽게 불안해지니 잠이 잘 올 리가 없다. 그러한 반응이 몸에 자주 일어나니 쉽게 지치게 된다. 신경이 예민한 초기에는 긴장이 잘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신경쇠약으로 진행되어 무기력하게 된다. 당연히 우울증이 오기 쉽다. 이런 기전으로 실제 임상에서는 우울과 불안이 흔히 동반된다.

 

사진_픽셀

 

그렇다면 신경과민 반응은 왜 일어날까? 이는 원래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반응이다. 전쟁터에 있다고 상상해보라. 최대한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자신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 위험 상황에서 감각에 둔감한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생존을 위해 스트레스 자극이 있을 때 몸에 반사적으로 이러한 반응을 일으켜왔다. 그래서 일상에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느낄 때는 자연스럽게 감각이 예민해지는 것이다.

적당한 긴장과 불안은 일의 효율을 높이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런 스트레스가 너무 과도하거나 오랜 기간 지속되는 경우에는 항상 예민한 상태가 된다. 예민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쓸데없이 예민해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몸에 과부하가 걸려 이유 없이 불안해지기도 한다. 스트레스 상황에서만 예민해져야 할 신경이 평상시에도 지나치게 민감해져 작은 자극에도 쉽게 불안해지는 것이다.

이 경우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이 뭔가 부자연스럽다고 느끼기도 한다. 이는 공포영화를 볼 때를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공포영화를 볼 때 ‘숨 죽인다’라는 표현을 하는 것은 긴장할 때 반사적으로 호흡이 얕고 짧아지게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그러다 보면 몸의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균형이 일시적으로 흐트러져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숨죽이고 있다가 위험한 상황이 지나 긴장 상황이 해소되고 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는데, 이는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균형을 다시 맞추기 위해 몸에서 스스로 심호흡을 크게 시키는 것이다. 한참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자연스럽게 한숨이 나오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신경이 예민해지는 것이 극단적으로 진행되면 환시나 환청이 생기기도 한다. 시각과 청각이 예민하다 못해 이상 반응이 오는 것이다. 원래 환각은 조현병에서 주로 생기는 증상이지만 극단적 스트레스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생기기도 한다. 심한 충격적 사건을 경험하거나 불면으로 일주일 가량 잠을 자지 못한 사람에게 급성으로 환각 증상이 생기는 것이 그러한 경우이다.

환각까지는 아니더라도 감각이 예민해지다 보면 이상 감각을 느끼게 되는 경우는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깊은 밤 혼자 위험한 골목길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혹시 그럴 때 자신도 모르게 뒤에서 누가 따라오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면 이상 감각을 경험한 것이다. 실제로 뒤에 사람이 없는데도 괜히 느낌이 싸해 뒤돌아보게 되니 말이다.

 

촉각이 예민해진 사람 중에 통증에 민감한 사람도 있다. 심리적 원인이나 신경과민으로 인해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에 정신과에서는 통증 장애로 진단하고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처방한다. 항우울제나 항불안제를 흔히 신경안정제라고 표현하는데, 신경안정제라는 말도 사실 공식적인 의학용어는 아니지만 꽤나 정확한 표현 같다. 예민해진 신경을 진정시켜주는 효과가 있으니 말이다.

사실 통증을 주로 진료하는 류마티스 내과나 통증의학과에서도 통증 조절을 위해 신경안정제를 자주 처방한다. 그런데도 같은 약을 정신과에서 처방하면 큰일 나는 것처럼 생각하고 내과에서 처방하면 잘 받아들이는 걸 보면 정신과 의사로서 자괴감을 느낄 때가 있다.

신경안정제를 통해 예민해진 신경만 진정시켜도 많은 증상이 해결된다. 불안이 가라앉고 답답함이 없어지며 감각이 안정되고 긴장이 풀리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예민한 촉각이 진정되어 통증도 호전된다. 당연히 잠도 잘 올 수밖에 없다. 공포영화를 보면서 잘 수 있나? 다큐멘터리를 보다가는 잘 수 있어도 공포영화를 보면서는 웬만하면 잠들기 어렵다. 몸이 긴장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신체의 긴장 반응을 신경안정제로 이완시켜주면 굳이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더라도 잠이 잘 들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신경이 예민한 사람들은 신경과가 아니라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해야 한다. 신경과는 뇌졸중이나 파킨슨병, 간질처럼 뇌의 기질적 질환을 진료하는 곳이지 스트레스 반응을 치료하는 곳이 아니다. 신경이 예민해 고생하시는 분들이 더 이상 정신과를 겁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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