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강남 푸른 정신과 원장]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취업준비생이자 공무원 준비하면서 허송세월 보내고 있는 20대입니다. 저는 학교 다닐 때부터 좀 정신과를 자주 갔었거든요. 중학교 때 처음 가서 진단받은 게 사회공포증과 ADHD였어요. 약물 복용 6~7개월 정도 후에 약간 차도가 보이는 거 같아서 복용 중단 후 그 뒤로 병원을 끊었어요.

그러다 다시 힘들어져서 고등학교 때 다시 가서 진단받은 게 사회공포증, 조울증이에요. 역시나 정신과를 대략 6개월 정도 다닌 후에 약간 차도가 보이는 거 같아서 복용 중단 후 병원을 끊었고요. 그 뒤로도 그렇게 편하진 않았지만 그럭저럭 지냈어요. 힘들었다가, 괜찮아졌다가를 반복했어요. 군입대 전 다른 대학병원 정신과를 가서 검사와 치료를 받았었고, 그 이후에 입대 이후에서도 불안장애니 우울증이니 진단받다가 제대 이후 25살 때 다시 이번엔 한방 정신과를 가서 치료도 받았습니다.

이쯤 되니까 이제는 가족이나 주변인들 또한 하는 소리가 ‘정신과 가는 게 자랑은 아니지 않으냐, 네가 그렇게 정신과를 자주 가고 병원도 바꾸고 약물도 바꿔가면서 먹고 했는데 별 차도가 없지 않으냐, 이게 다 네 노력이 부족한 거다’는 말이더군요.

또 ‘고혈압 환자가 마치 고혈압 약 하나만 의지한 채 식단조절 없이 자극적인 거 먹음 어찌 되겠냐, 네가 지금 처한 상황이 딱 그 꼴이다. 정신과는 네가 잘 되게 도와주는 곳이지 모든 걸 입에다 떠 넣어 주는 곳은 아니다. 너도 낫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비난만 받고 있습니다.

이제는 힘들어도 이렇게 병원을 자주 가다 보니 입만 열면 주변에서 돌아오는 소리는 비난밖에 없다고 생각이 드니까 의지할 데도 없고 마음이 많이 힘들어요.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만 들고요.

 

또 이건 제 개인적인 문제일 수도 있는데 상담 내용들에 대해서 집중이 안 됩니다. 정신과를 간다고 한들 정신과 선생님이 해 주는 얘기들이 뭐랄까. 가끔 TV나 인터넷에서 보면 유명한 신부님 유명 목사님 유명 스님이 사람들 고민 같은 거 들어주고 솔루션이라고 해주는 말들처럼, 그런 유명 명사들에게서 잠깐 듣는 잔소리 같은 느낌만 들어요. 잠깐 듣고 그 순간에는 공감하고 그렇게 해야지, 했다가 정작 병원문을 나서면서 망각하게 되고 집 현관문 왔을 땐 정신과 의사분이 ‘뭐라 그랬지?’ 이런 상황에 처했던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갈 때마다 뭔가 약물 처방만 자꾸 해오지. 정작 차도는 없지. 정작 의사 만나면 할 얘깃거리도 없고 의사와 만나면 자꾸 이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의사 선생님의 기에 눌리는 거 같은 기분마저 들고 그렇게 된 거 같습니다.

정신과 치료는 병원을 정하면 한 곳을 오랫동안 다녀야지만 낫는 질환인가요? 이제는 정말 편해지고 싶네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강남 푸른 정신과 신재현입니다. 질문자님의 답답한 마음이 글에서까지 느껴지네요. 안타깝습니다.

사실 정신과 치료가 어떤 정해진 경과가 있는 건 아닙니다. 짧은 기간에도 일상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호전이 있다면 단기간만 치료를 받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요. 하지만 질문자님의 경우 잠시의 호전 이후 다시 예전과 같은 증상들이 금세 재발하는 패턴을 보입니다. 단기간의 치료가 일시적인 불안이나 불면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을지는 몰라도, 의식의 수면 아래 묻혀 있어 드러나지 않는 문제들로 인한 재발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진료를 보는 것 자체에서 부담을 느끼고, 의사 선생님의 기에 눌린다는 느낌을 받으신다면 정신과 치료와 상담 자체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타인에 대한 믿음은 여러 요소에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정신과 치료에서 치료 관계는 일종의 플라세보 효과와 같습니다. 치료자와 치료를 믿는 만큼 치료의 효과가 배가되기도 해요. 자신이 신뢰하는 이의 말을 좀 더 귀담아듣고 싶은 건 당연한 이치니까요.

글에 자세한 내용은 없지만, 추측건대 치료를 받았던 선생님들의 스타일이 본인에게 맞지 않았거나, 위 댓글처럼 오랜 기간 다니면서 충분히 관계가 무르익을 시간을 갖지 않은 탓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꼭 한 곳을 오래 다니라는 건 아니지만, 나에게 잘 맞는 선생님이 계시다면 표면의 증상보다는 의식의 수면 아래에서 반복적으로 문제를 만들어내는 ‘그 무엇’을 다루기 위해서, 정말 필요한 도움을 받기 위해서라도 충분한 기간 동안 진료를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또, 치료 기간만큼 중요한 것이 치료 목표입니다. 내 삶의 어떤 영역에서 얼마만큼 변화가 일어나기를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선생님이나 주변 사람들과 상의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현재 불편한 것만 덜어낼 정도라면 충분한지, 아니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복되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가족분들의 말에 대해서 저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어요. 정신과 질환이라 해서 자신의 의지만으로 극복되는 건 결코 아니에요. 정신과 병은 늪과 같아서, 어느 정도 이상 빠져버린 상태에서는 혼자 힘으로 늪을 벗어나기 힘듭니다.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손을 잡고 끌어줄 누군가가 꼭 필요한 거죠.

또, 병 자체가 의지에 영향을 주는 경우도 굉장히 많아요. 우울증을 예로 들면, 우울증이 심한 상태에서는 상담 시간에 주고받는 조언들이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타인의 모든 말이 부정적이고 회의적으로 느껴지며, 귀에 들어오지 않지요. 감정으로 인해 시야가 좁아진 탓입니다. 이럴 경우 얼마 동안의 약물치료를 통해 부정적인 감정을 어느 정도 완화하고, 이후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상담을 하며, 점차 스스로 건강한 삶을 위한 노력을 스스로 해나갈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의 문제들을 조금씩 극복해 나가는 거죠.

부디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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