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용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저는 어머니가 알코올 중독이셨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장취 중에 돌아가셨습니다.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부음을 듣고도 슬프지가 않았습니다. 그냥 예상했던 결말을 맞이한 기분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셔도 어쩔 수 없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보다 저런 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제 인생이 불쌍했을 뿐이었습니다.

어머니 술주정받이 노릇을 하느라 너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초, 중, 고 어머니의 간헐적인 장취와 술기운에 저지르는 이상 행동으로 너무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부모님은 당연히 불화가 심했습니다. 저럴 거면 왜 이혼을 안 하고 살까 혼자 고민한 날도 많았습니다.

치료를 거부하니 어머니는 연세가 들수록 점점 증세가 심해졌습니다. 밖에서 취한 채 노숙을 하거나 심하게 다쳐서 신고를 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애원해도 못 끊는 술 때문에 저는 정신적인 상처가 심했습니다. 집을 나가고 싶었고 이렇게 살면 뭐하나 싶어 자살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친구들에게 집에 놀러 오라고도 못하고 어머니와 한바탕 일 치르고 나면 늘 침울하곤 하니 인간 관계도 제한적이었습니다. 가스나 문단속을 끊임없이 점검하는 강박증도 있습니다. 밖에 돌아다니거나 아는 사람을 만나는 걸 싫어하는 대인 기피도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을 아는 사람들은 죽어야 끝나는 병이라고 합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으니 어머니의 병은 끝이 나셨겠지요.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마음의 병은 끝이 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제가 가지고 있는 근심의 많은 부분이 내려놓아졌지만 아직도 제 마음의 병은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많이 신경질적이고 지적이 많으셨는데 저는 그래서 술을 드시나 늘 조심하면서 살았습니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고 어머니 마음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늘 노심초사하다 보니 사회적으로 모범적이라는 길만 걸으며 성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의사를 잘 표현하지 못할 때가 많고 화가 나도 표현도 잘 못하고 대인기피, 외모에 대한 집착, 수동 공격성, 강박증 등이 근본적으로 나아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마법처럼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고 저도 모르게 생각했나 봅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마음을 잘 추스르고 행복하게 생활하는 것이 쉽지가 않네요. 자존감은 물론 낮고요, 저를 돌보기보다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살아가려고만 노력하다 보니 삶이 늘 피곤했습니다. 좋은 말씀 듣고 큰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용진입니다.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관계였던 간에 부모님의 죽음은 자식들에게 죄책감과 후회를 남깁니다. 하지만 글쓴이님에게는 어머님에 대한 오래되고 치유되지 못한 양가감정이 남아있기에 더욱 괴로우시리라 생각됩니다. 마음의 한편에는 어머님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과 관련된 분노 등의 감정이 있을 수밖에 없기에 자연스러워야 할 죄책감을 의식, 무의식적으로 부인하려고 할 수 있고 이렇게 어머님의 죽음에도 오롯이 슬퍼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더욱 죄책감을 느끼는 악순환의 상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런 양가적 감정을 글쓴이님에 마음에 남겨둔 것조차 본인의 탓이 아닌 어머님이 남겨놓은 피해의 유산이라고 생각됩니다. 글쓴이님은 어린 시절부터 무력한 피해자였습니다. 전적인 안정과 사랑, 포용과 관심을 당연히도 기대하는 자식의 마음을 만족시키기는커녕 어머님의 중독은 무력한 글쓴이님에게 불안과 고통스러운 감정을 남겨주었으니까요. 

 

일반적으로 알코올 중독자들의 자녀는 3가지 정도의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첫째는 도망자 아이입니다. 너무 지쳐버린 나머지 가출 등으로 이르게 부모와 단절하는 것이죠.

두 번째는 영웅아이입니다. 알코올 중독자인 부모와 강하게 맞서며 한쪽을 지키기 위해서 중독자 부모와 끊임없이 다투고 적극적으로 배척하려 하는 것이죠. 남자들에게 많이 나타나고 심하게는 중독자 부모와 신체적인 마찰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예상하시다시피 이런 아이들도 마음속에 남겨진 양가감정으로 고통받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은 글쓴이님께 해당될 것 같은 중재자나 마스코트 역할을 하는 아이입니다. 분명 중독자인 부모 탓으로 집안의 분위기가 엉망이고 자신은 관심과 애정을 받지 못한 피해자이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인해 이런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는 백일몽을 꾸는 것이죠. 더 어릴 때는 자연스레, 부모가 나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지 않는 것이 내가 잘못해서 그런가 하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이들은 몇 번의 경험을 할 수도 있겠죠. 좋은 성적이나 집안일을 돕고 해서 받은 어머님의 미소와 관심 그로 인해 조금 좋아진 집안 분위기. 이런 경험들이 기폭제가 되어 모든 것을 잘해야 한다는 불안하고 강박적인 성격을 만들어내고 알게 모르게 부모님과의 관계나 집안의 문제에 나의 탓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죄책감이라는 양가적 감정을 키우게 됩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이것은 백일몽이고 착각입니다. 무력한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심지어 지금까지도 본인의 노력으로는 어머님의 문제를 치료하거나 어머님으로 인하여 손상된 가족관계나 분위기를 되돌리지는 못합니다. 모든 문제는 오롯이 어머님의 중독이 책임이며, 어머님이 변화하지 않는 이상 회복하기는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에서 벗어나셔야 합니다.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시고, 본인의 책임이 없음을 받아들이십시오. 글쓴이님은 어머님이 가지고 계셨던 중독이라는 질환이 만들어낸 피해자입니다. 

 

마지막으로, 증상의 정도를 떠나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님의 부재와 관련된 감정뿐만 아니라 과거부터 두 분 관계에서 있었고 현재까지도 글쓴이님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여러 요인들에 대해서도 상담을 하면 바라시는 새로운 시작에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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