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빛날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이혁]

 

정신병 중 가장 대표적인 조현병과 조울증을 처음 진단하고 치료를 상의하는 경우에 가족이나 환자들과 자주 나누는 대화입니다. 대부분 꼭 약물을 먹어야 하는지, 상담만으로는 치료가 어려운지 묻습니다. 정신과 약물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생긴 편견,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약물치료가 그래도 중요하다는 정신과 전문의의 의견을 신뢰하지 못하고 한의사나 상담사 등을 찾아가서 자신들의 의견에 동의하는 의견을 듣고 실제 다른 방식의 치료를 시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학문적 이해가 전혀 다른 직역이 관계되는 문제라서 답답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정신병 치료에서 정신과 의사들 개개인도 약물치료와 상담치료에 대한 태도는 의사 개인의 수련 배경, 진료형태 등에 따라 달라서 환자와 가족들이 혼란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조울증으로 치료 중이던 A씨는 심층적 상담치료를 주로 하는 의사를 만났을 때 상담치료가 잘 되면 약물을 중단해도 된다는 안내를 들었다면서 안정기에 약물치료를 중단하고 증상이 재발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반대로 조현병으로 약물치료와 집단상담 등 심리치료를 꾸준히 받고 있던 B씨는 대학병원의 유명 전문의에게 “정신병은 상담으로 나아지지 않는다.”라는 얘기를 듣고 주 1회씩 하던 상담을 중단하고 2개월에 1회 대학병원 외래진료만 유지하다가 증상이 악화되고 사회적 기능이 더 떨어져서 고생한 경우가 있습니다. 좀 극단적인 예로 들릴 수 있지만 30여 년 저의 정신과 의사 생활에서 실제 경험했던 일입니다.

두 가지 정신병 치료에 대한 위 두 명의 선생님들의 권유가 이론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들의 세부 전공 분야 또는 연구, 수련 배경에서 그리고 개인병원과 대학병원이라는 진료형태에서 강조하는 부분이 다르고 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환자와 가족들에게 혼돈을 줄 수 있습니다. 

 

정신병의 발병과정과 증상, 치료에서 뇌신경의 기능 변화 등에 대한 것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고, 심리‧환경적 접근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던 19세기의 정신의학과 비교하면 완전히 새로운 학문이라 볼 정도로 세상이 변했습니다. 새로운 약물의 개발은 이전에 평생 사회에서 기능하지 못하고 정신병원에 격리했던 일부 환자들까지 회복시키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여러 체계적인 연구에서 정신약물의 유지 요법이 재발의 방지에 일정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약물치료를 하지 않고 정신병을 치료한다는 것은 의사의 두 손을 묶고 수술을 하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그렇다면 상담치료 등 심리‧환경적 접근은 전혀 도움되지 않는 유행이 지난, 시간과 금전적 비용 낭비인 그런 치료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믿어지지 않지만 비슷한 주장을 하는 생물정신의학에 과하게 경직된 생각을 하는 정신과 의사들도 없지 않습니다. 이런 분들의 경우 대학병원이나 대형 정신병원 같은 근무 환경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경우 외래에서 하루 수십 명의 환자를 개인당 10분의 진료 시간도 허용하지 못하는 빠른 진료 방식에 처한 경우가 많습니다. 20분에서 50분까지 환자와 주 1회 또는 2주 1회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개인병원에서는 위와 같이 하고 있는 의사들이 있습니다. 약물치료와 병행하면서 정기적인 상담을 꾸준히 하는 경우입니다. 개인정신치료, 집단정신치료, 가족치료, 인지행동치료 등 다양한 방식을 사용합니다. 이렇게 두 가지 치료를 환자의 형편에 따라 적절히 배분하는 경우에 효과는 분명합니다. 진료 환경상 이렇게 할 수 없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에게는 아쉬운 일이지요. 그렇다면 상담치료가 필요한 이유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첫째, 제 경험을 토대로 보았을 때 의사와 꾸준하게 상담하는 환자와 가족의 경우 약물치료의 순응도가 높습니다. 부작용에 대해 적절히 대처하고 임의로 약물을 중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불편한 부작용이 있는 약물임에도 그 기간을 잘 견뎌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둘째, 약물치료로 정신병적 증상이 개선되어도 해결되지 않는 심리적 어려움(발병에 대한 심리적 위축, 사회적 편견, 직장, 대인관계에서 상실에 대한 우울한 정서 등)을 상담치료를 통해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심한 정신병 상태에서 경험한 이상하고 왜곡된 현상의 기억들을 다시 통합하고 이해하는 어려운 과정에 의사가 동행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발병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사회환경적 스트레스 요인과 이에 대처하는 성격적 요인의 취약성을 이해하고 개선하는 과정에서 심리적 치료가 중요합니다. 어린 시절의 감정 경험과 관련된 환자의 성격 특성이 성장하며 대면하게 되는 도전적인 과제 등을 다루면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병이 호전된 다음에도 환경적 요인의 큰 차이가 없는 경우에 이에 대응하는 환자의 심리적 변화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경우보다 심층적, 분석적인 심리치료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까지도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환자분들이 상담해주는 의사가 별로 없다는 얘기를 자주 했습니다. 일반인에게 정신건강의학과는 상담하는 곳으로 아직 알려져 있지만, 실제 내원하면 간단한 설문지 작성과 약물치료를 받았다는 얘기를 합니다. 다행히 최근에는 상담에 관심을 가진 선생님들이 조금씩 늘고는 있습니다.

비록 의료수가 등 열악한 진료 환경일지라도 우리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심리상담치료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세월이 바뀌었어도 우리는 생물학적 접근(약물치료)과 심리‧환경적 접근(상담치료)을 통합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도 환자와 가족에게 두 가지 치료적 접근의 장단점과 의미를 잘 설명하고 적절한 비율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환자와 가족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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