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외국인 남자 친구와 결혼을 앞둔 상태입니다. 이제 만난 지는 갓 1년 정도가 되었고요, 이제 6개월 정도 후에 결실을 맺게 될 것 같아요.

문제는 지금 남자 친구에 대한 의심이 너무나 커지고 있다는 거예요. 사실 남자 친구를 만날 때도 이미 외국에 있는 여성과 교제를 하고 있는 중이었어요. SNS를 통해 뒤늦게 확인했을 때는 배신감이 들었지만, 남자 친구가 이 부분에 대해서 이미 마음이 떠났었다며, 이미 헤어진 사람이라고 나에게 설득을 해서, 나도 아직은 그가 좋은 마음에 덮었었거든요.

하지만 그 외에도 아직 SNS를 보면 내가 모르는 외국, 한국 여성들이 너무 많아요. 마치 연인인 것처럼 언제 오냐, 보고 싶다, 어디로 여행 같이 가자는 말도 쉽게 하고요. 마치 나의 존재는 없는 것처럼 연인에게 답을 하듯 그녀들에게 댓글을 다는 남자 친구의 모습이 너무 실망스럽습니다.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오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남자 친구는 핑계 대기 바쁘고요.

 

객관적으로 보면 남자 친구와 매몰차게 헤어지는 것이 너무 당연한데, 문제는 저의 태도입니다. 저는 항상 이전의 연인들에게 수동적이고 의존을 많이 했거든요. 항상 눈치를 보고, 능력 이상의 선물을 주기도 하고, 어떻게든 남자 친구 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너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헤어지는 것이 너무 두려웠어요. 헤어지고 나면 자책이 너무 심해서 죽어버릴까 생각까지 했었어요. 그러다 보니 아무리 남자 친구가 바람을 피거나 나를 함부로 대해도, 뭐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도 마찬가지예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사람을 의심하는 것이, 마치 내가 너무 소심하거나 문제가 많아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남자 친구와 관계가 깨어지는 것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너무 아프고 두려워요.

제가 어떻게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남자 친구의 행동이 아니라, 제가 잘못인 걸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강남 푸른 정신건강의학과 대표원장 신재현입니다.

남자 친구에 대한 고민을 나누어주셨네요. 남자 친구의 신뢰를 주지 못하는 행동들이 질문자님을 자꾸만 힘들게 만드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말씀하신 남자 친구의 행동은 누구든 그 상황에 놓여 있다면 혼란과 불안을 느끼게 할 거란 겁니다. 연애를 시작할 당시에도 다른 여성과 연애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또 다른 여성들과의 직-간접적 접촉이 계속되었다면 지금 결혼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걱정이 되는 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상황적인 측면에서 충분히 나타날 수 있고, 그러니 지금의 불안은 자신에게 충분히 허용해도 좋을 감정입니다. 자신을 탓하는 건 이제 멈추셨으면 좋겠어요. 

 

질문자님의 '생각을 고쳐서' 결혼을 해야 하는 단순한 문제는 아닐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라면 남자 친구의 행동은 남자 친구 자신이 의도하진 않았더라도 질문자님께 불안을 줍니다. 즉, 특수한 상황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닌 남자 친구의 오래된 습관 혹은 버릇일 겁니다. 바꿔 말하면 언제든 다시 나타나 질문자님의 불안을 자극할 수 있다는 말이겠지요.

또, 이미 질문자님께서는 남자 친구의 행동을 이미 갈등의 주제로 인식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질문을 올리신 것을 봐도 그러합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남자 친구의 태도나 행동, SNS상에서의 모습에 대해 계속해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기도 하고요. 이는 결혼으로 이어질 경우 잠재적인 갈등의 소지가 될 수 있음을 방증하는 부분이지요.

 

이러한 부분들을 혼자 감내하고, 인식을 바꾸려 노력하며 결혼을 하는 건 위험해 보입니다. 남자 친구에게 본인이 가진 염려와 걱정, 불안에 대해 충분히 공유하시고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위안과 나름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외국인이라면 우리네와 사고방식과 관점이 다른 부분이 분명히 많습니다. 질문자님만 이해하는 것은 정답이 아닐 것 같아요. 

또, 혼자만 전전긍긍하지 마시고 나를 이해하고 공감해줄 수 있는 가까운 이들과 이러한 문제를 함께 나누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결혼을 앞둔 남자 친구의 이해하지 못할 행동은, 어찌 보면 타인에게 비추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일 겁니다. 하지만 혼자 고민하면 자신의 관점이나 태도에 묻어 있는 오류를 발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결혼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고도 큰 결정입니다. 한 번 시작되면 멈추거나 돌리기 힘든 인생의 큰 흐름이기도 하고요. 신중한 고민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보편적인 시각으로 볼 때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너무도 자명한 문제이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는 질문자님의 시각에도 왜곡이 숨어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연인과의 헤어짐이 두려워 연인에게 모든 관계의 중심을 두는 행동 패턴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문제일 것 같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안정적인 관계에 대한 감각이 부족했던,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는 나를 쉽게 떠날 것이라는 두려움을 일으키는 성장 과정의 경험이 거기 영향을 미쳤을 테고요. 혹자는 이를 바꿀 수 없는 ‘성격적 문제’라 치부하지만, 실은 고정된 성격이라기보다 오랫동안 학습해온 ‘나쁜 버릇’에 가깝습니다. 

세 살 버릇이 평생 간다고도 하지만, 어떤 부분은 분명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이런 행동을 하게 된 기원과 현재 삶에서의 영향을 충분히 이해하고, 당시에 힘들었을 자신에 대해 공감해주어야 합니다. 생각의 초점을 ‘나쁜 버릇’에 두는 연습을 할 수 있다면 습관적인 패턴이 이어지는 순간 잠시 브레이크를 걸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조금씩 오랜 패턴을 바꾸어 나가는 거지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란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아요. 

부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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