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매운맛을 받아들임에 관하여

[정신의학신문 : 이상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갑자기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이 복받치면서 저녁 식사 때 간신히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금 이 몸 상태로는 수술을 한다고 하더라도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비극적인 생각이 들었다. 생일상을 차려준 아내와 아버지를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고, 뒤이어 그들에게 했던 내 말과 행동이 떠오르면서, 미안함과 후회스러움이 가슴을 쳤다. 그렇게, 나는 나의 존재가 가족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고, 차라리 내가 사라지는 게 가족들에게 좋을 것이라는 끔찍한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렇다. 난 죽기로 했다. .... 그렇게 한참 동안 집안 여기저기를 뒤지고 다니다가, 작은 방에서 엄마와 함께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이내 참았던 눈물이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자살을 하려던 생각을 포기했다.'

<임세원,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중에서

 

통계청이 발표한 2018 사망원인 통계를 보면, 지난해 자살로 인한 사망자는 1만3670명이었다. 10만 명당 자살 사망자 수는 24.7명으로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회원국 중 1위다. 2003년 이후 줄곧 1위였다가 뒤늦게 가입한 리투아니아로 인해 작년 2위로 밀려났지만, 자살자가 2017년보다 1207명(9.7%)이 늘어난 결과로 다시 1위에 선정되었다. 어쩌다가 우리나라는 15년째 OECD 자살률 1위란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정신과란 이름이 주는 부정적인 어감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학회 차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로 개명까지 해보았지만, 여전히 자살의 흔한 원인인 우울증에 대한 편견은 병원 방문을 꺼리게 만든다. 도움을 받으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를 우울증은 나약한 사람의 병이라는 왜곡된 시선 때문에, 안타깝게도 극단적인 자살을 고민하고 있다. 우울증을 극복하는 조언을 들려주고 싶어, 한 달간 떡볶이를 먹으면서 고민을 해봤다. 하지만, 우울증에 빠지면, 이런 글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 3개를 추려보았다.

 

사진_픽사베이

 

첫째, 머리로 스쳐 지나가는 우울한 생각들을 확인하고 일시정지시키기.

우울증의 상태에선 머릿속에서 불안과 걱정이 끊이질 않는다. 그런 생각을 멈추려고 해도 잘되지 않는다. 그래도 멈출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나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진다.’ ‘이렇게 사는 게 너무 힘들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또 다른 부정적인 생각을 불러오며, 최악의 결과만을 떠올리게 만든다. 뼛속 깊이 새겨진 깊은 슬픔은 비관적인 느낌을 낳고, 나는 혼자라는 생각과 함께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라고 여긴다. 그런데 문제는 우울할 때 이런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생각들이 진짜처럼 느껴지게 된다는 점이다. 진짜처럼 느껴지지만 정확한 생각은 아니다. 대신에 이렇게 반박해줘야 한다. 일단, 3가지만 기억하자. 

1. 과연 그럴까? 그것이 사실일까? (일시정지버튼)
2. 일부 사실일지라도, 과연 그것이 나에게 도움이 될까? (환기버튼)
3. 부정적인 생각을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재생버튼)


예를 들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 과연 그럴까? 그게 사실일지라도, 과연 그것이 나에게 도움이 될까?
→ 일단, 몸이라도 움직여야 의욕도 생기는 법이야. 일단 시작하자. 다시 시작하는 거야. 

일어날 힘도 없어. 누워 있는 게 차라리 낫겠어.
→ 몸이 무겁기는 해. 그래도 못 일어날 정도는 아니야. 한번 일어나 나가보자. 

지금 상태로는 아무것도 못 하겠어.
→ 생각만 그럴 거야. 막상 해보면 잘할 수 있을 거야.

해 봤자 또 안 될 텐데. 소용없다고.
→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점쟁이도 아니고, 다시 한번 해보자. 그러다가 잘할 수도 있잖아.

 

우울증에 빠지면,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아프고, 머리 회전도 잘되지 않아 뒤죽박죽 엉킨 느낌이 든다. 불면증과 무기력증으로 여과되지 않는 생각을 그냥 받아들이기 쉬운데 문제는 부정적인 느낌이 더 생생하게 올라온다는 것이다. 힘들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이런 것도 못 견디는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심한 존재로 단정하고 자신의 남은 인생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현실의 자신은 초라하고, 외로워, 쉽게 좌절하고 숨어버리고 싶다. 이런 좌절감 속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 아침에 눈을 뜨는 것조차 고통스럽고, 무기력하다. 결국, 죽음만이 답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인생의 매운맛을 보았다고 생각하고, 이 상황을 끝내기 위한 죽음 말고 다른 건설적인 대안을 찾아볼 수는 없을까? 일단, 2가지만 기억하자.

1. 힘들지만, 이 상황에서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2. 이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상황을 바꾸려면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 한 번쯤은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배우 최강희는 방송 인터뷰에서 가끔 자신이 쓸모없다는 생각으로 괴로울 때,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헌혈을 한다고 밝혔다. 그럴 때마다 자신이 가치 있고, 뭔가 깨끗해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이타적인 행동을 통해,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경험을 반복하면,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라는 믿음이 강화되며, 부정적인 감정이 줄어들 수 있다. 그녀는 힘든 상황에서, 자신이 해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30번 이상의 헌혈을 통해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둘째로, 아직도 남아있는 희망적인 것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서 해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았다면, 아직도 남아있는 긍정적인 것을 생각해보자. 나에게 남아있는 희망적인 것,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무조건 없다고 단정하지 말고,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고,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면, 보일 것이다.

진료실에서 환자가 해준 말이 잊히지 않는다. “이런 날씨에 우울한 것이 항상 안 좋게 느껴졌는데요. 오늘은 그래도 감사한 것을 찾아보는 그런 우울함을 느꼈어요. 우울했지만, 귀여운 강아지 두 마리가 나를 좋아해 주는 것이 좋았어요. 우울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요?” 힘들고 부정적인 것을 유익한 생각으로 바꾸는 노력은 쉽지 않다. 하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좋은 것을 찾아보려는 동기만큼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진흙 구덩이 안에 있지만, 우리 중 몇몇은 빛을 바라본다.’라는 영국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우리는 가끔 흙탕물과 진흙 구덩이에도 빠지기도 하지만, 그렇더라도 우리 자신에게 있는 남아있는 좋은 것을 애써서 찾을 필요가 있다. ‘영화 <록키 발보아> 중에서 인상적인 대사가 떠오른다.

‘인생이란 건 결국 난타전이야. 네가 얼마나 센 펀치를 날리는 것이 아니라 네가 끝없이 맞아가면서도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며 하나씩 얻어가는 게 중요한 거야. 계속 전진하면서 말이야. 그게 바로 진정한 승리야.’

끝없이 맞아가면서도 때론 버텨야 하는 순간이 있다. 인생의 매운맛을 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이 상황에서 배울 수 있다고 여기고,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고, 오늘 딱 한 가지만을 해보면 삶의 밑바닥에서조차 언젠가 다시 통통 튀어 오르는 반전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위기의 순간에 그렇게 앞으로 전진하며, 하나씩 얻어가고 성장하고 있음을 믿는다면, 이 힘든 시간도 아프지만, 견딜 수 있다.

 

사진_픽사베이

 

마지막으로, 우울증에 사로잡혀있다면, 병원에 방문해보기. 

병원에 가기를 주저하는 분들에게 <한낮의 우울>의 저자 앤드류 솔로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짜 중증 우울증과 싸워서 이길 수가 없다. 진짜 중증 우울증은 치료를 하든가 아니면 지나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치료를 받거나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동안 계속 싸워야 한다. 싸움의 일환으로 약을 복용하는 것은 격렬하게 싸우는 것이며, 약물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현대적인 전투에 말을 타고 나서는 것처럼 어이없고 자기파괴적인 태도다. 약물치료를 받는다고 심약하거나 자신의 인생에 대처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다. 현명한 심리치료사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나약한 행위가 아니다. 신과 자신에 대한 믿음도 꼭 필요하다. 당신은 어떤 치료든 받아야만 한다. 저절로 낫기를 기다리고 있어선 안된다.'

한 달 동안 떡볶이를 먹으면서 생각해보았다. 떡볶이는 원래 맛있는 음식이 아니다. 하지만, 먹다 보니 친숙해져서 맛있게 느껴진 것이 아닐까 싶더라. 어떤 상황에서 자기 자신이 초라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힘든 상황에서 뭐라도 하려고 고민하는 나 자신을 귀하게 여겨줘야 한다. 나 자신을 귀하게 여기면 귀하게 대접하게 된다. 귀한 자신에게 용기를 주는 말도 들려주게 하고, 우울증을 극복하게 하는 좋은 약물도 줄 필요가 있다. 그렇게 마음먹고 치료를 받다 보면, 인생의 매운맛도 익숙해지고, 어느 순간 어떤 아픔도 견딜 수 있는 통통하고 유연한 마음이 되어 있지 않을까. 우울증과 싸우고 있는 분들을 응원하며, 이 글이 우울증을 극복하려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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