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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번아웃의 시대에 살고 있다

기사승인 2019.10.15  0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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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신문 :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요즘 직장인들은 괴롭습니다. 너무 괴롭지요.

항상 지금보다 발전해야 하는 게 당연시되고 연봉과 고과, 실적으로 숫자로 끝없이 평가됩니다. 삼성전자에 일하면서도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부동산 중개사 자격증을 따야 하고, 유창한 영어를 구사함에도 중국어 능력이 부족하다며 핀잔을 듣곤 합니다. 

강제적인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만 하고 지금 일에 허덕이면서도 일을 더 잘할 준비를 미리 해두어야 합니다. 인터넷을 보면 직장 일을 완벽히 해내면서도 몸짱이며, 재테크 역시 매번 성공하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자격증의 시대를 넘어 투잡, 쓰리잡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이 우월하게 인정받습니다. 이제는 나이나 직업, 성향과 관계없이 유튜브와 블로그를 알아야 하고, 부동산 카페에 들어가 집값 오르는 것을 확인하지 못하면 저만치 뒤처지고 도태되는 사회가 돼버린 거지요.

 

출퇴근 시간에 경제 관련 유튜브 영상이나 팟캐스트를 듣고, 퇴근하고 매일 저녁 7시에 강남에서 부동산 강의나 주식 강의를 듣는 사람도 넘쳐납니다. 독서 모임, 운동 모임, 어학, 스피치... 한 가지 직업만 가지고 안주하는 사람들은 마치 패배자가 돼버린 양, 그야말로 사회 전체가 ADHD에 걸려버린, 과잉활동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는 SNS와 미디어를 통해 성공한 소수의 사람들이 과다한 열정과 활동력으로 2, 3인분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이상화되고 우상시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변호사이면서도 만화가인 사람도 있고, 치과의사이자 방송인, 운동까지 프로 가까운 수준으로 해내는 사람도 있지요. 그들은 보면서 나도 저렇게 열심히 살아야겠다, 연봉을 높여야겠다, 잠을 줄여가며 공부해야겠다는 불안과 초조함에 쫓기게 되는 것입니다.

 

사진_픽사베이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자극과 모티베이션에 순응하는 것은 과잉 수동적인 것입니다. 사람은 모든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없습니다. 아니, 최고는커녕 보통 이상을 해내기도 힘들지요.

페이스북과 인스타, 유튜브가 제공하는 과도한 정보는 공유의 즐거움이 아닌 경쟁심과 열등감을 제공하게 되었고 과잉 성과주의가 미덕인 사회로 우리를 인도했습니다. 조회 수와 구독자 수, 관심이 곧 돈으로 산출되는 트렌드에서 음악, 문화, 소비, 심지어 먹방까지.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일에도 대중의 의견과 블로그, 유튜브 셀럽과 연예인의 의견을 참고하고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는 아주 사소한 일상을 수행하면서도 끊임없이 자극에 시달리고 갈등과 도전, 선택을 강요받게 되었습니다. 운동하는 법, 숙면을 취하는 법,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법까지요.

 

이처럼 바쁜 시대에 각광을 받게 된 마인드풀니스란 개념이 있습니다. 마인드풀니스란 명상 혹은 사색, 마음수행 등 여러 의미로 해석이 가능한 명제인데 전 세계적으로 마인드풀니스를 주제로 SCI급 논문만을 한정에도 최근 5년 동안 4794개의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정신과학 분야에서 얼마나 이에 대한 관심이 높은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지요.

마인드풀니스를 통한 이완과 호흡을 통해서 우리의 미주신경의 활동이 증가되고 부교감계 활동이 촉진됩니다. 단순히 심리적인 부분이 아니라 명상이 세로토닌 호르몬의 분비를 통해 불안과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것이 뇌과학적으로 입증된 후, 마인드풀니스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사람은 그저 꿈을 꿀 뿐이지만 자신의 내면을 보는 사람은 비로소 그 꿈에서 깨어난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의 말입니다. 그는 집단 무의식이라는 표현으로 무의식의 인지와 공유, 관계의 상호작용이 인간의 정신세계에 얼마나 강력한 힘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역설했습니다.

명상과 사색은 얼핏 보면 비활동적이고 비생산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자극이 넘쳐나는 트렌드에 대한 저항이며 타인에 휩쓸리지 않는 무척 주체적인 활동입니다. 밀려드는 정보와 감정, 조급함에 대한 인내이며 한번 멈추어서 천천히 삶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인 것이지요.

 

정신치료의 핵심은 심리적인 내적 갈등을 인지하는 것입니다. 무의식에 묻혀 있던 갈등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의식의 표면으로 끌어올리는 것이지요. 초자아와 본능의 오랜 다툼은 우리에게 ideal self(자아 이상)를 파생시켰으나 현실과의 격차는 우리에게 우울함을 주었습니다. 자기 스스로가 자신을 몰아붙이고 마모시키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진 않을까요.

오늘 우리의 경쟁 상대는 타인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끝없이 자기 자신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조금씩 삶의 마모와 소진을 불러옵니다. 물질 만능과 성과주의의 사회에서 우리는 자유로운 듯하지만 속박되어 있습니다. 일과 직장, 돈, 그리고 관계에 말이지요.

 

카프카의 단편 프로메테우스를 보면 “신들은 지쳤고 독수리도 지쳤으며 상처도 지쳐서 저절로 아물었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선물하였으나 동시에 노동을 선물했습니다. 서울과 지방, 부자와 가난한 자, 자유와 평등이 가져온 모순적인 양극화가 극대화되었고, 욕망과 박탈감, 세대 간의 갈등과 계층 간의 분노는 참 많은 고민을 남겨주었습니다.

번아웃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휴식과 사색이 필요합니다. 자극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멈추어 천천히 생각하는 힘, 욕망과 불안을 다스리는 힘이야말로 나 자신의 소모를 늦출 수 있는 방법임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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