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설리 씨를 애도하며

[정신의학신문 : 나종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포털의 인기 검색어 순위에, 최근 활동이 잠잠한 연예인의 이름이 일 순위에 오르면 늘 긴장된 마음으로 이름을 눌러본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에는 오랜만에 방송에 출연해서 화제가 된 경우이지만, 직업의 특성상 늘 자살로 사망한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불과 몇 달 전 사망한 배우 고(故) 전미선 씨의 경우, 나의 걱정은 현실이 되었었다.

우리 사회는 지난 십 년간 얼마나 많은 연예인들을 자살로 잃었나. 고(故) 이은주 씨를 비롯해서, 국민 배우였던 고(故) 최진실 씨, 지금의 고(故) 설리(본명 최진리) 씨까지, 아마 열 손가락으로 꼽아도 모자라지 않을까.
 

고(故) 이은주 씨의 죽음 이후, 우리 사회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잃었는가.

 

미국에서는 자살에 관련 보도 지침에서 용어에도 많은 무게를 둔다. 자살을 설명하는 동사는 전통적으로 늘 commit(저지르다는 뜻)이었다. 자살 관련 전문가들이 이 용어에 문제를 제기한 이유는 commit이라는 단어가 범죄라든가, 살인과 같이 부정적인 행동들에 주로 사용되는 용어였기 때문에, 자살로 사망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 유가족들에게 낙인을 찍고, 죄책감과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자살 유족들이 이에 공감을 표시했고, 여전히 기사들에는 commit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하지만, 자살로 사망했다(died by suicide)는 표현이 조금씩 전파되고 있는 중이다.

한국에서는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선택'이라는 말을 기자분들이 흔히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commit과 달리, 일상생활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인데 기사 제목에 자주 사용되어 부쩍 눈에 띄었다.
 

'극단적 선택'이란 표현은 자살로 사망한 사람의 기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목이다. (출처: 네이버 검색)


객관적으로 보면, 자살은 선택의 문제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타인의 입장에서는,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삶과 죽음의 선택지에서 죽음을 '택한 것'으로 보이고,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보면 그 사람이 살아야 할 이유 또한 수없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늘 그녀를 지지하던 가족, 사랑하는 팬들, 성공적인 커리어... 하지만 자살로 사망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선택이 아니라면, 왜 자살을 시도하는 것일까?

 

자살 시도 후 생존한 환자들에게, 자살 시도 당시의 생각을 물어볼 경우, 십중팔구는 이미 자살 생각에 너무나 강하게 사로잡혀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자살 생각이 너무 강렬해서, 마치 자살을 명령하는 환청처럼 들렸다고 하는 환자들도 있다. 자살 연구 전문가들은 이처럼 자살 생각에 강하게 사로잡힌 순간에는 감당할 수 없는 절망감에 사로잡힘으로 인해 이성적 사고가 마비되고, 우울감과 불안감이 소용돌이처럼 몰아치며, 극도의 정서적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자살 시도를 한 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생존 직후, 살아있음을 감사한다. 내가 만난 한 환자는, 총으로 자살을 시도한 후, 코를 비롯한 얼굴의 1/3 이상이 손상이 되어 있었다. 바로 오늘 스스로의 얼굴에 총을 쏜 환자에게 '살아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묻자, 살짝 웃으며 살아있어서 감사하다고 말하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결국 자살을 시도할 때, 그들에게는 자살이 선택지가 아닌, (현실의 고통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라는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선택지가 없었다고 느낀 사람에게 선택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정당한가?

 

자살로 사망한 사람에 대한 흔한 오해/편견은 수없이 많겠지만, 가장 흔한 편견은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이기적이다'라는 생각이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하는 편견이지만, 동양권에서 조금 더 강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자살을 선택으로 규정하는 것은, 이러한 편견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자살로 사망하는 사람들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짐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자신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자신이 사라질 경우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들의 '짐'을 덜어주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마지막으로, 자살을 한 사람이 모두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진 않지만,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 또한 매우 흔하다. 우울증과 경계선 성격장애, 약물중독 등의 환자들에게서 가장 흔하게 자살 경향성이 나타나며, 자살 생각은 정신질병의 흔한 증상이기도 하다. 이런 환자들에게 자살이 정신질환 때문이 아닌, 선택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낙인이 될 수 있으며, 낙인은 정신건강 치료를 받는 것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사진_KBS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 가장 걱정되는 것은 고(故) 최진리 씨의 유족들이다. 그녀의 가족들, 가까웠던 친구들, 주변의 친구들 중 앞서 말한 우울증, 경계선 성격장애, 약물중독 등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특히 그녀의 죽음이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고통이 극심할 경우, 자살 생각을 유발할 수도 있다. 유명인의 자살은 대중에게 미치는 파급력 또한 매우 강하다. 미국의 국민 배우였던 고(故) 로빈 윌리엄스가 자살로 사망한 직후 4개월 동안, 미국 내에서 자살률이 10퍼센트 가까이 증가했다는 연구결과들도 있다. 만약 지인 중에 평소에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자살 시도나 생각을 해왔던 사람, 혹은 그럴 것으로 추측되는 사람이 있다면, 괜찮은지 안부를 묻고,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우리 생각과 달리,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자살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는 것은 자살 위험성을 높이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살이 걱정되는 사람을 혼자 두지 않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자살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꺼려왔다. 심지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불편해하고, 이 중대한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보다는 덮어오는 데 급급했다. '극단적인 선택'이라는 용어에 대한 의견은 필자 개인의 생각이고, 이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이제 자살에 대해서 우리가 조금 더 이야기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반복되는 우리 사회의 자살은 우리 정신건강의 현주소이고, 사회 전체에게 큰 트라우마다. 무엇이 사람들을 '극단적인' 환경에 몰아넣고 있는지 성찰이 필요한 시기이다.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고(故) 최진리 씨의 명복을 빈다.

 

나종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예일대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
메이요클리닉, 뉴욕대학교 정신과 레지던트
예일대학교 중독 정신과 전임의
서울대 심리학 학사,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석사
저서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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