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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에 대처하는 자세

기사승인 2019.10.29  00:2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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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신문 :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저는 환자들에게 상실에 대한 애도반응을 언급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천천히, 그리고 사려 깊게’라고 이야기합니다. 얼마 전 우리는 한 사람의 일을 언론에서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녀를 유명인 혹은 연예인으로 지칭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배려라고 여깁니다.

제 의견이나 글을 쓰지 않고 조용히 애도하는 것이 그녀와 유가족에 대한 당연한 배려라고 생각했기에 ‘연예인 자살’이니 ‘아이돌 우울증’ 같은 자극적인 주제의 칼럼과 인터뷰는 송구스럽게도 대부분 거절한 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거운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된 것은,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잣대로 평가하고 또 누군가를 비난하는 내용을 SNS로 접했기 때문입니다. 책임질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라 또 다른 분노의 대상을 찾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지요. 그중에는 '심리전문가가 본 이번 사건은' / '박사가 바라보는 관점' 등의 내용도 있었지요. 아마 이분들이 개인적으로 그녀와 친했거나 한 번이라도 상담을 해보진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마 저나 일반 대중들처럼 방송으로 접한 모습만 알고 계시겠지요.

 

전문가의 입장으로 무언가를 대중에 언급할 때는 자신이 정말 오래 연구하고 깊이 탐구한 분야에 한해서, 충분한 레퍼런스를 가지고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13년째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있습니다만, 한 번도 우울증의 전문가라고 자신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제가 스승으로 모시는 서울대, 연세대 병원의 교수님들조차 그러실 겁니다. 경력이 30년 이상 되신 분들조차 항상 우울증은 한두 번의 상담으로 원인을 파악하고 진단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볍고 쉬운 병이 절대로 아니라고 강조하십니다. 심지어 만나지도 않은 사람에 대해서, 검색으로 얻은 정보만으로 무엇무엇 때문에 병이 생긴 것 같다고 주장을 하는 것은 무척 위험하지요.

 

사진_픽사베이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대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을 마주한다는 것입니다. 각자의 트라우마와 걱정들, 속사정, 재정적 문제, 대인관계뿐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과 무의식의 깊은 곳까지 이해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녀는 어떤 이에겐 시기와 질투, 열등감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엠마 왓슨이나 나탈리 포트먼 같은 헐리웃 배우들만 가능한 줄 알았던 소신 있고 깨어있는 발언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안전한 성공에 숨거나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이유 없이 자신을 공격하는 이들에게도 관용을 보이려 했고 전 남자 친구에게조차 항상 좋은 사람이라며 아량을 보였습니다. 양극화와 남혐과 여혐, 선입관과 분노가 가득했던 SNS, 댓글과 마주 서서 홀로 외롭게 싸우면서도 사람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자 노력했습니다.

 

악플 방지법이 정식으로 입법 제안을 발의 중이며 다양한 추모 활동이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가볍게 상처를 주고 있었는가에 대한 반성과 통찰일 겁니다. 이전의 사례들이 그러했듯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겁니다. 아주 가끔 반성한다고 해도 여전히 한국에 만연한 분노의 연쇄는 사그라지지 않을 테니까. 인내와 이해는 느리고 어렵지만, 분노와 충동의 폭발, 카타르시스는 아주 쉽고 통쾌합니다. 경제는 어렵고 나는 이렇게 먹고살기 어려운데 억울함, 방황하는 분노는 다시 누군가에게로 향할 겁니다. 

인터넷 실명제, 처벌제도에 대한 강화, 혹시 가해자가 미성년자일지라도 무조건적인 관용이 아니라 실제로 적용 가능한 처벌제도를 개설해야 합니다.

 

그녀의 삶과 죽음을 굳이 미화하거나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안타깝다’ ‘불행했다’라고만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외롭고 힘들었지만, 누구보다 당당하고 소신 있게 삶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누렸으니까요. 

하지만 익명성에 숨어 분노와 열등감을 담아 쓴 글 하나가 모여서 수만 개가 되었고 결국 파도가 되어 그녀를 집어삼켰다는 사실만은 우리 모두가 깊이 반성하고 절대로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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