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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or's Mail] 위협당했던 충격, 도무지 사라지지 않아요

기사승인 2019.10.31  00:5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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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사연)

안녕하세요, 궁금한 점이 있어 질문드립니다.

저는 20대 중반 여성입니다. 얼마 전 남동생과 다투다 칼로 위협당하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며칠 안 돼서 부랴부랴 집을 얻어 나왔습니다. 남동생 때문에 본가도 절대 안 가고 그 뒤로 절대 마주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지냅니다. 그 뒤로, 남동생과 닮은 사람이나 자주 입던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그 일이 떠올랐고 집에 있는 칼과 손톱깎이같이 칼이 생각나는 물건도 치웠습니다. 또 극도의 무력감과 우울증, 자살 충동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심하게 놀라는 증상도 있었습니다. 친한 사람이나 안 친한 사람이나 직장동료나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이나 차나 동물이나 바람에 날리는 비닐봉지나 이런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보면 스스로 제어가 안 되는 헉 소리를 내며 놀라는 증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좀 덜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비슷한 상황, 비슷한 인물(동생과 닮은)과 있으면 불안해지고, 예민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병원을 두 군데 정도 각각 3개월이나 한 달 정도 짧게 다녔는데, 가본 곳 모두 주 상병을 F412 혼합우울불안으로 내렸습니다. 저는 PTSD라고 생각했는데 두 곳 다 F412로 나와서 진이 빠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제가 느끼는 증상보다 진단이 경미하게 나온 것 같아서 치료에 대한 의지도 없어지고 의사에 대한 신뢰도 없습니다. 병원 다니는 1개월, 3개월 동안 약도 먹었지만 나아지는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병원 다녀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병원도 안 다니고 있습니다.

F412는 증상이 경미할 때 진단되는 것 아닌가요? 저는 그렇게 상황이 가볍지 않아요. 저 진단이 너무 쉽게, 가볍게 내려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자신과 맞는 병원 찾는 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원래 인간에 대한 신뢰가 없기도 하지만, 의사를 신뢰하기 어려워 3~4개월 다니다 그만두게 됩니다.

답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정희주입니다.

힘든 걸음을 하여 정신과 진료를 보았는데 예상했던 진단이 아니고, 치료에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 것 같아 실망감이 크실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신과 치료도 짧게 받다가 그만두고 다시 치료를 받다가 그만두고 반복되고 있으시고요.

먼저 F412로 진단되는 혼재성 불안 및 우울장애에 대해 설명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상기 질환은 불안과 우울이 함께 있으나 특정한 불안증, 특정한 우울증으로 분류하기에는 증상이 명확하기 않을 때 진단이 내려집니다. 한쪽 증상이 별도로 진단 내려질 정도로 심하지 않을 때 진단이 붙여지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진단 분류상 하나의 진단명에 우울과 불안이 동시에 언급되는 유일한 질환이기 때문에, 증상의 심각도와 상관없이 불안증과 우울증이 같이 있다는 이유로 위의 진단 내려지는 경우도 흔합니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죽음이나 심각한 부상과 관련된 사건을 경험한 이후 침습, 회피, 기분이나 인지의 변화, 과각성이 한 달 이상 지속되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말씀하신 내용을 보면 글쓴이분의 증상을 PTSD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PTSD를 진단 내리기 위해서는 각 부분별 증상의 개수, 외상성 사건과의 관련성 등이 구체적으로 판단되어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 명확히 알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말씀드릴 것은 혼재성 불안 및 우울장애든 PTSD든 진단만으로 심각도를 따질 수 있는 질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개를 비교하는 것도 마찬가지이고요. 이건 마치 고혈압이 당뇨에 비해 더 경한 질병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고혈압 중에 더 심한 고혈압, 더 약한 고혈압이 있는 것이지 고혈압이 당뇨에 비해 더 좋다 나쁘다고 따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신과 질환의 가장 나쁜 결과인 자살을 예로 들면, 자살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큰 원인은 우울증이며 그만큼 위험한 질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되는 것 역시 경한 PTSD에 비해 심한 불안증, 우울증이 더 심할 수 있습니다.

우울 및 불안장애와 PTSD를 가르는 것은 크게 볼 때 증상의 심각성이 아니라 원인 및 증상의 구체성입니다. 예를 들어 글쓴이분의 증상이 동생과의 오랜 반복되는 갈등으로 유발되었다면 불안, 우울장애일 가능성이 크나, 칼로 위협했던 그 날의 사건이 단일하게 원인이라면 PTSD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와 유사하게 증상이 삶의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면 불안 및 우울장애에 해당할 것이고, 칼로 위협당했던 일, 혹은 동생을 경험하는 것과 유사한 상황에서만 심하게 나타난다면 PTSD에 해당할 가능성이 큽니다.

어느 쪽이든 현 상태라면 정신과 질환의 경우 약물 상담 치료가 병행되며, 신뢰가 쌓인 상태에서 장기간 치료를 받아야 호전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면에서 1개월, 3개월 만에 치료적 관계가 끝나고 진료를 보는 의사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됩니다. 자신과 맞는 병원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과 맞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며,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솔직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글쓴이분이 경우 진단명과 관련된 의문, 그것과 관련된 서운함에 대해 담당의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오해가 풀릴 수도 있고, 글쓴이분이 PTSD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치료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디 좋은 치료자와 좋은 관계를 형성하여 지금의 고통에서 벗어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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