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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환자로서의 삶 (1)

기사승인 2019.11.03  00: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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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상태에서 반복되는 자조와 자기비난은 끔찍하다. 비난과 자조가 순식간에 오가는데 이는 서로에게 쉼 없이 서브를 주고받으며 공격 기회만 엿보는 탁구게임처럼 정신이 없다. 그 와중에 나는 이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고, 이렇게밖에 행동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비난한다. 비난 속에는 좌절감, 무력감, 우울함, 분노와 같은 복합적인 감정이 뒤섞여있고, 그런 모든 감정이 한 번에 올라오는 때면 뇌는 마치 불을 지른 것처럼 화를 내며 날뛴다.

실제로 불을 질러 보면 이게 나아질까 싶은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회사가 강남대로에 있던 때였는데, 강남대로를 불태워 버리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 내 어려움에 공감해 준 동료들 덕분에 사고를 친 적은 없지만, PMS(월경전 증후군)를 겪을 때면 온 세상을 모조리 불태워 버린다 해도 풀리지 않을 것 같은 강렬한 분노와 세상의 어둠이 모조리 내게로 찾아온 것만 같은 심한 우울을 겪었다.

아직 그런 진단을 받은 적은 없지만, 극심한 감정 기복으로 괴로울 때면 ‘내가 양극성 우울증 환자가 아닐까?’란 의심을 하기도 했다. 타고난 자제력과 교육의 힘으로 억누르고 있을 뿐, 나와 타인을 파괴하고 싶다는 욕구 자체를 부정하기 힘들어서였다.

해가 지면 밤이 오듯, 비난이 사라진 자리에는 슬픈 자조가 자리했다. 그 속에는 못난 나를 붙잡고 살아가야 하는지, 힘겨운 삶 속에서 나를 벗어나게 해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다가도 픽 웃으며 그냥 살아보기를 택하는 나도 있었고, 더 살아 좋을 것도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사소하게 좋은 일을 기대하며 살기를 택하는 내가 있었다. 모든 것을 끝내고 싶던 것도 나, 그래도 더 살아보자며 다독이는 것도 나였다. 모든 순간이 너였다는 시구처럼 모든 순간이 나였다.

 

사진_픽셀

 

어쩌면 우울증은 부정적인 생각이라는 감옥에 갇히는 병이다. 우울증에 사로잡힌 사람이 자기 파괴적인 끔찍한 생각들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쇠사슬처럼 견고하게 엮인 부정적인 생각들은 깨어있는 내내 한 사람을 옥죄며 괴롭히고, 불면을 가져다주며, 간신히 잠든 이후에는 기괴한 꿈으로 나타나 조금의 안식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아무리 강한 의지를 지녔다 해도 허무에 빠지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실하게 된다. 삶의 목적성은 점차 흐려지고, 자살사고는 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자살을 시도하는 것조차 극심한 피로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쯤 되면 삶은 그 사람에게 ‘숨이 붙어 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는다.

알베르 까뮈는 ‘And never have I felt so deeply at one and the same time so detached from myself and so present in the world(지금까지 어느 것에서도 이러한 깊이를 느껴보지 못했고, 그와 동시에 나 자신으로부터도 격리되어 존재하는 느낌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까뮈는 이 말을 ‘부조리’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데 사용했지만, 우울증을 겪는 한 사람으로서 이 문장은 우울증 환자가 느끼는 모든 복잡다단한 감정들을 한 번에 설명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우울증과 함께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고, 병원을 찾기 6~7개월 전부터는 일주일에 두 번, 많으면 서너 번까지 공황발작을 경험했다. 내가 공황장애를 겪는다는 것은 인지하지 못했지만, 진단을 받기 이전부터 나는 사람이 많은 장소를 가는 것을 본능적으로 꺼리고 있었다.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면 짜증이 치밀고 갑자기 멍해지며 불안했으며, 때로는 머리가 한기와 열기가 갑작스레 오가고, 땀이 나고, 기절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의식이 끈 떨어진 연처럼 팔랑거리며 내게서 멀어져 버릴 때조차도 ‘제발 돌아와, 넌 안전해, 괜찮을 거야’란 말을 주문처럼 되뇌며 버텼다. 하지만 공황발작을 여러 번 겪다 보니 이상감각과 건강염려가 생겼고, 결국에는 신체형 증상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그 와중에 우울함은 점점 더 심해졌다. 하지만 내가 병원에 가기를 결심한 건 우울증도, 공황장애도 아닌 신체형 증상이 동반한 극심한 통증 때문이었다. 다리의 통증 때문에 간단한 일상생활을 하는 것도 극도로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언제 통증이 찾아와 내 일상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겪었다. 일상은 통증과 불안, 우울로 점철되어 사회생활은 물론이고 일상생활도 영위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사회생활을 이어나갔다. 통증 때문에 포기하는 것이 많아지면 나를 더 미워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버텼던 것이지, 그땐 모든 것을 다 놓고 싶다는 생각만이 간절했다.

통증이 아니었다면 나는 병원을 찾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통증에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 통증은 예의 없는 손님과 같다. 갑작스레 찾아와서 원하는 것을 달라며 집 문을 쾅쾅 두들겨대면 나는 그를 들여보내 주지 않을 수 없다. 간혹 운이 좋으면 잠깐 앉았다가 돌아갈 수도 있지만, 대체로 오랜 시간이 지나야 돌아간다. 그래도 효과는 있었다. 통증을 손님이라고 생각하니 그나마 견딜만한 것이 되었다. 손님은 언젠가는 본인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니까.

 

나는 왜 빨리 병원에 가지 않았을까. 아마 내 우울과 불안을 드러내면 모든 사람이 나를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우울과 불안이 자기에게도 있다는 걸 알지만, 정작 우울과 불안을 병으로 가진 환자에게는 관대하지 않다. 무엇보다 나는 모든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나의 증상을 치료해 줄 거라고 믿었다. 다들 그렇게 삶을 버티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노력했다. 일하지 않던 때에도 규칙적으로 일어났고, 도저히 집중할 수 없던 때에도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끊임없이 책을 보고, 글을 썼고, 취미생활과 운동을 병행했다. 회사에 취직해서는 어떻게 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우울과 불안은 신체적, 심리적 기능 자체를 완전히 저하시켰고, 나는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가 내 무덤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매일 초조해하고 슬퍼했다. 몸은 나아질 기미 없이 아팠고, 계속된 실수로 상사는 내 업무역량을 의심하고 있었다. 인격 모독에 가까운 질책이 실수를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될 거란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하는 상사와의 갈등으로 회사생활은 늘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 주말에는 나를 걱정해주는 엄마에게 모든 화를 풀었고, 일방적인 화풀이는 쌍방의 고성과 울음으로 막을 내리곤 했다. 모든 상황이 기를 쓰고 나를 삶의 반대편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내가 나에게 적대적인 상황이었기에 어떠한 노력도 통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이렇게 사느니 죽어서 편한 게 낫겠다 싶은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러서야 나는 치료받기를 결심했다.

 

* 환자로서의 삶 (2)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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