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20대 중반의 여성입니다. 요즘 자꾸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혹시 이것도 병인지 궁금해 여기에 찾아오게 되었어요.

좀 우습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어두운 곳이나 으슥한 곳만 가면 누가 절 공격할 거 같아요. 골목길이나, 한밤중에 가게의 불이 다 꺼진 거리 같은 곳이요. 실은 제가 <그것이 알고 싶다> 애청자이기도 하거든요. 거기에 보면 불가항력의 살인 사건이나, 납치, 강간 등의 사건들이 너무 많이 나오잖아요. 특히 살인에 관한 내용을 본 이후엔 뭔가 더 자세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지난주에는 둔기로 뒤통수를 맞아 죽은 여자의 이야기를 봤어요. 그럼 그날부터 누군가 둔기로 제 뒤통수를 때릴 것만 같아요. 정말 근거가 없고 황당한 이야기인 걸 알아요. 친구들한테 이야기해도 농담으로만 받아들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집에 있을 때나 (낮에는 당연히 안 그러고요) 밤에 밖에 혼자 있을 때, 으슥한 곳을 지날 때 그런 생각이 반복적으로 들어요. 머리에 잔상이 남는 것처럼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원래는 제가 안 이랬던 거 같거든요. 근데 어느 날부터 밤만 되면 밖에 못 나가는 저를 보고 이게 병인가 싶더라고요. 

실은 매일 어떤 승합차가 저희 집 앞에 차를 세우는데, 그것만으로도 되게 무섭게 느껴져요. 그 차 주인이 거기다 차를 세워 두고 집으로 안 들어가고 좀 앉아있다 들어가고 그러더라고요. 왠지 누군가를 찾는 것 같다는 이상한 생각도 올라오고. 처음엔 몰랐는데 나중에 그거 알고 나서 그 차가 지날 때마다 무섭더라고요. 그 차 지날 때면 온갖 범죄 수법 같은 게 떠오르기도 하고요. 이렇게 두려움에 꽂히면 이런 기분이 한 달은 가는 거 같아요. 이 상황뿐 아니라, 조금만 생활하다 두려운 부분이 생겨버리면 지장이 너무나 많네요.

이것도 병인가요? 제가 왜 이런 걸까요. 병원에 가야 할까요?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신림평온정신과 원장 전형진입니다.

참 불편한 마음이 크시겠습니다. 친구들은 농담으로 받아치는 고민이지만, 실은 작성자님과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이 꽤 많아요.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흔히 ‘예민하다.’ ‘과민하다.’라고 치부하며 ‘편히 마음먹어라.’라고 조언하지만, 당사자에게는 큰 불편감과 공포일 수 있습니다.

 

작성자님의 사연에서 일차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불안감입니다. 나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으며, 나는 거기에 대처할 만한 능력이 없다. 이런 믿음이 지속되면 나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과장하고, 대처능력을 평가절하하는 경향을 보이게 됩니다. 보통 이런 식으로 걱정을 많이 하는 유형에는 건강, 가난, 위험, 통제 능력을 상실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흔합니다. 작성자님은 나에게 위험한 일이 일어나 안전에 문제가 생기는 상황에 대해 우려하는 모습을 보이시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는 현재 상황에서만 나타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아마 오래된 습관일 테지요. 이를 스키마 치료 이론에서는 <취약성 vulnerability>의 스키마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매사를 걱정, 염려의 필터로 걸러 받아들이는 셈입니다.

실제적인 위험 수준 이상으로 안전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지니고 지내면서, 수상해 보이거나 위험해 보이는 사람에게 지나칠 정도로 민감해져 있으시네요. 밤에 외출하다가 나쁜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며 걱정을 하는 상황이라면 일상생활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런 식으로 민감해져 있는 사람들은 대개 두려운 사건이 일어날 확률을 과장해서 생각하거나, 그 결과를 파국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불안감을 더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불안감을 피하기 위하여 일상생활 속에서 회피하거나 과잉보상하는 방식으로 대처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불안이 불안을, 걱정이 걱정을 불러일으킨다는 말이지요.

 

이러한 악순환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재난적인 사건 발생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평가하고, 자신의 대처능력에 대한 평가를 올바르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포와 두려움의 순간들에 대해 기록하고, 이에 대해서 내가 가진 생각을 찾아보며, 또 이 생각에 대한 생각(=메타인지적인)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가 이 상황을 굳이 이렇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지, 그리고 이렇게 두려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될지를 고민하면서 말이죠. 불안이라는 감정에 치우친 상황에는 의도적으로 이성적인 행동, 그러니까 기록하고, 분석하고, 고민하는 것이 감정과 이성의 밸런스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겁니다.

물론 모든 과정을 혼자의 힘으로 해내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또 제가 언급한 내용은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에서 환자분들이 호소하시는 어려움에 대한 내용이라 작성자분의 실제 생활수준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 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고, 삶의 질을 떨어뜨릴 정도의 상황이라면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해서 불안감에 대해 상담을 받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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