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지난해 12월 31일 환자를 위해 헌신하셨던 임세원 교수님이 칼을 휘두르는 환자로부터 다른 사람들을 지키려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교수님은 우울증과 자살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본인이 경험한 우울증과 자살 생각을 책에 직접 공개하셨습니다.

저는 과학기술원에서 정신건강 예방 활동 및 초기진료를 제공하는 사람으로서 제 개인적 경험이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될까 싶어 이 글을 작성합니다. 제가 치료하는 환자의 이야기를 쓸 수는 없기에 저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려서 썼습니다(주변 사람도 쉽게 알 수 없거나 유튜브 등으로 질환에 대해 공개한 사람들입니다).

 

제가 다녔던 90년대 후반 과기원은 정신건강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살 소문만 돌았을 뿐이죠. 저는 졸업 후 다시 의대를 다녔는데, 동물행동 유전자 연구 경험을 떠올리며 막연히 뇌 관련 전공을 상상했습니다. 학생실습과 인턴을 마치고 나서야 정신과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여기에는 본과 때 여자 친구와의 일도 영향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똑똑하고 예쁜 ‘오래 아는 동생’과 연애는 즐거웠습니다. 해가 지날 즈음 그녀는 갑자기 미안하다는 문자와 함께 사라졌습니다. 이해할 수 없으니 화도 나고 슬펐습니다. 몇 년 뒤 만나 우리 병원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학생 때 엄마 손에 이끌려 정신과에 한 번 가본 적이 있다고 말한 기억도 났습니다. 몇 달 지나 응급실 사고구역에서 인턴과 환자로 마주치게 됩니다. 어머니를 위로하며 왜 더 일찍 알아내지 못했을까 자책했습니다.

인턴 마지막 날도 드라마 같았습니다. 인턴 근무가 끝나고 전공의 당직을 하러 이동하던 중에 한때 룸메이트였던 옛 친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자신이 이상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조증 같았습니다. 치료를 권하니 괜찮을 거 같다며 거부했지만 결국 두 달 뒤 저희 병동에 입원했습니다. 최우수 성적장학금도 받았던 녀석인데... 두 경우 모두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까지 10년 가까이 걸린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전공의가 된 후로 적어도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고는 막고 싶었습니다.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친구에게는 적극적인 치료를 권했습니다. 저 자신도 포함됩니다. 3년차에 결혼을 준비하며 갈등이 심해져 부부치료를 교육해주시는 선생님을 미리 찾아가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스트레스로 불면이나 무기력이 심해질 때는 동기끼리 약물치료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전문의가 되고 암 환자 연구를 하면서 누구나 힘든 상황에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습니다. 서울대 관악캠퍼스에 진료 지원을 가서는 여러 어려운 단계를 이겨낸 학생들도 스트레스가 많은 것을 직접 느꼈습니다. 좀 더 일찍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면 이들이 사회에 좋은 일을 더 많이 하지 않을까 싶어 3년 전에 유니스트에 와서 캠퍼스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병원을 떠난 그해 가족들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누이가 삼십 대에 말기 암에 걸립니다. 막내가 겨우 두 살이었죠. 바로 정신과 자문 진료를 받도록 했습니다. 종교활동을 시작하고 3년을 잘 버텨왔습니다.

같은 해 네 살인 제 아이가 말이 늦어 소아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2년 뒤 더 정확한 평가를 해보니 자폐증 경계에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 보면 차이를 잘 못 느낍니다. 많을 때는 주 5회 치료를 받아왔는데 만약 치료를 늦췄어도 같은 결과를 얻었을까요?

아이도 신경이 쓰이고 스트레스가 심한 로스쿨 공부를 하는 아내에게도 진료를 권했습니다. 많이 도움이 되어 후배들에게도 권유했는데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신과에 대한 편견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저도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고자 분석적 정신치료를 5개월째 받고 있습니다.

좋지 않았던 경험이 편견을 만듭니다. 누이의 첫째가 우울해 보인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엄마도 아프고 사춘기까지 왔으니까요. 동네에 명문대 출신의 소아정신과가 있길래 권했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처음에 기본으로 수십만원 검사를 하고 바로 좋아져서 끝났다네요. ‘엄마가 나한테 이렇게 큰돈을 썼다니 정신 차려야지.’하고는 다시 친구들과 잘 놀고 활발해졌다고 합니다. 검사가 초반에 필요한 경우도 물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진행되는지 알려줄 필요도 있습니다.

 

사진_픽셀

 

정신과 진료는 대개 후기를 남기는 사람이 없습니다. 좋은 경험인 경우도요. 요즘 저희 학생들은 대개 고민을 나눈 선배로부터 권유받아서 옵니다. 입소문으로 경험이 공유되어서죠. 도시라면 동네에 나를 잘 치료해줄 정신과는 많습니다.

만약 후기가 없어 어렵다면 약간의 힌트를 드립니다. 병원에 전화를 걸어 상담 시간과 비용을 먼저 알아보고 예약을 하고 가세요. 내게 맞지 않으면 옮겨도 됩니다. 한 번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우니 몇 번은 경험해보세요. 미용실처럼 바로 결과를 알 수 없으니까요.

제가 받는 정신치료의 경우 건강보험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약 15~25만원의 비용이 듭니다. 지역 임대료나 치료자의 경력에 따라서 차이가 나고요. 저는 일상생활을 잘 유지하고 있어 약물치료나 일반 상담으로는 더 나아질 부분이 크지 않아 이 치료를 선택했습니다. 인격적 성숙 외에도 의사로서 환자치료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분석가 선생님께 정신치료를 받는 중입니다. 꼭 정신치료가 아니더라도 정신과 의사로부터 충분한 시간의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아시면 좋겠습니다.

작년에 개편된 상담수가로 인해 정신과 의원에서 40분의 상담을 받는 경우 개인의 부담은 2/3로 감소했습니다. 2만원이 안 되는 돈으로 긴 상담을 받을 수 있게 되었죠. 국민의 요구를 반영한 결과입니다.

다만 이 같은 긍정적인 변화도 현실에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실제 개인 의원에서는 기존의 짧은 약물치료가 더 수익이 난다고 합니다. 만약 긴 상담을 원한다면 미리 전화로 확인을 하고 방문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특히 환자가 몰리지 않는 시간을 활용하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얼마 전 로스쿨 학생의 자살에 대해 신문기사가 났습니다. 경비원이 첫 시도에서 구해냈는데도 지키지 못한 학교의 매뉴얼 부재를 지적한 기사입니다. 댓글에는 어차피 죽는 사람은 말리지 못한다는 글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경험한 것은 다릅니다. 죽음밖에 떠올리지 못했던 사람이 회복하고 사회와 가정으로 잘 복귀하기도 합니다. 물론 항상 완벽하게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한 치료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기원에서 진료하다 보니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의 아픔에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다만 이것이 편애는 아니길 바랍니다. 누구나 좋은 진료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과기원에서 학생을 아끼는 시도가 성공 사례가 되어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고 다른 곳에 있는 청년들에게도 치료의 기회가 제공되도록 사회 전반에서 정신건강에 대한 지원이 강화되길 바랍니다.

 

* 정두영 UNIST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교수(헬스케어센터장)

필자는 과기원을 졸업한 정신과의사로서 학생들의 정신적 어려움을 공감하고, 진료와 더불어 인간을 직접 돕는 새로운 기술들을 정신의학에 적용하고자 인간공학과에서 연구합니다.

<본 칼럼의 전반부는 2019년 11월 11일 경상일보 ‘[경상시론]정신과의사가 쓴 정신과 후기’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

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저서 <마음은 단단하게 인생은 유연하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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