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30대 남성입니다. 

성격장애(인격장애)는 정말 치료가 가능한가요? 말 그대로 성격(인격)의 문제인데 이게 정말 바뀔 수 있는지 의문이네요. 11년 전에 회피성 인격장애로 입원 치료도 받았었고 4~5년 약물 치료하다가 자의로 약물 끊고 나서 최근 너무 우울하고 불면증 탓에 다시 병원 다니고 있어요.

 

옛날에는 눈 맞춤 같은 게 안됐었고 모르는 사람이랑 처음 대화하는 것도 굉장히 힘들어했는데 이제는 사회생활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고쳐졌는데요. 그래도 다른 증세들은 안 고쳐졌어요. 사람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신경 쓰이고 심지어 의사 선생님이랑 상담할 때 의사 선생님이 의자를 잠깐 뒤로 젖히는 거까지 신경 쓰여서 집에 와서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지금도 생각나네요. 도대체 왜 그랬을까?)

사람들에게 미움받을까 봐, 저 사람이 날 싫어할까 봐 그냥 말을 짧게 하고 필요한 말만 해요. 차라리 말을 안 하면 미움받지는 않잖아요. 솔직히 좋아해 줘도 싫어요. 그 마음이 굉장히 부담스럽고 압박감을 받아서 기대에 부응을 못 해줄까 봐 무서워요. 그래서 친구들도 다 떠났고 가족들이랑도 대화도 거의 안 하고 아주 필요한 대화만 해요.

이런 게 정말 약물 치료로 고쳐질 수 있을까요? 역시 정신분석치료 같은 상담 치료 기법이 효과적인 거 같아서 상담 치료도 받아봤는데 도저히 치료동맹이 이루어질 수가 없어요. 사람을 믿을 수가 없어요. ‘이 사람이 날 정말로 치료해줄 사람일까?’ 의심되고 그냥 날 돈벌이로만 보는 거 같아요. 그리고 자꾸 말을 해야 하고 들어야 하니 무척 피로함을 느껴서 중간에 포기했어요.

 

도대체 어떡하면 좋을까요? 이렇게 살다가 일 잘리면 다른 일 못 할 것 같아요. 지금 하는 일은 혼자서 하는 일이라서 잘 해낼 수 있어서 오랫동안 유지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이 일 잘리면 정말 히키코모리처럼 은둔생활만 할 거 같아서 무서워요.

지금 치료받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한테는 전이가 생기는 거 같은데요. 근데 이게 또 싫어요. 왜, 내가 이 사람한테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하지? 스트레스받고 자존심이 무척 상해요.

일하고 있을 때는 의사 선생님 생각이 안 나는데 쉬고 있을 때는 생각이 날 때가 많아서 스트레스받아요. 이런 자신이 화가 나고 멍청한 거 같아요. 대인관계 폭이 넓은 사람들이라면 이런 거 신경 쓸 여력도 없겠죠? 왜냐하면 다른 사람 생각도 나니까 말이죠. 난 사람들과 관계도 하나도 없으니까.

의사 선생님이 생각나니 또 자신에게 화가 나는 거 같네요. 어쩌면 좋을까요. 예전보다 분명히 좋아진 것도 있지만 나빠진 부분도 있는 거 같고, 잘 모르겠어요. 역시 정신분석 치료 같은 요법이 필요할까요? 약물치료가 도움이 될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강남푸른정신건강의학과 대표원장 신재현입니다. 

회피성 성격장애(인격장애)에 대한 질문을 주셨네요. 성격장애로 진단받았다는 건 꽤나 오랜 기간 동안 힘든 마음을 짊어지고 살아왔다는 이야기일 겁니다. 글에서도 질문자님의 절박함이 느껴져 참 안타깝네요. 부디 힘을 내시길 바랍니다.

글쎄요, 개인적으로는 회피성 성격장애를 비롯한 모든 정신과 질환, 성격장애를 치료하는 데 있어 정답은 없을 것 같아요. 성격은 습관 혹은 패턴과 같아요. 오랜 기간 특정 환경에서 꾸준히 오랫동안 다듬어지고, 내 몸과 마음에 체화된 탓에 쉽게 바뀌진 않죠. 하지만 습관이 바꾸긴 어렵지만, 바꾸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많은 시간과 노력이 꼭 필요하겠죠.

다만 어떤 치료 방법이든 꾸준히 유지하는 것, 그리고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거라 생각을 합니다. 모든 상담 치료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목표와 방향은 ‘이 순간에 감정이나 과거의 기억들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행동의 기저에 깔린 역기능적인 생각을 건강한 생각으로 바꾸게 되는 것이나, 정신분석을 통해 자신에 대한 통찰이 생겨나면서 자신이 가진 패턴의 숨은 의미를 알고, 이를 점차 다르게 바꿔나가는 과정이나 둘 모두 치료의 유형은 달라져도 치료 방향은 동일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질문자님이 말씀하신 걸 들여다보면 ‘관계’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편함이 있어요. 타인과의 관계로 인한 불안, 우울, 회피 등의 증상이 표면적으로 가장 불편하게 보입니다. 지속적인 약물치료가 안정적인 감정과 규칙적인 생활 리듬을 만들어가는 데 도움을 줄 겁니다. 불안정한 감정은 시야를 좁아지게 만들고, 또 필요 이상의 자기 비난을 만들어내거든요.

하지만 약물치료 못지않게 상담 치료의 비중도 당연히 중요합니다.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불편함의 뿌리를 잘 헤아려가는 과정이 꼭 필요해요. 그러니까, 관계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상황의 기저에서 작동하고 있는 습관적이고 자동적인 생각들 말이죠.

질문자님께 엿보이는 사회불안증, 회피성 성격장애 양상 모두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대한 두려움, ‘저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보고, 나쁘게 볼 것’이라는 습관적인 생각이 반영된 것입니다. 그러니 불신이 생기고, 타인을 멀리하려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불신의 이면에는 사랑과 애정에 관한 갈급함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어요. 질문자님께서 치료자에게 전이를 느끼는 것처럼 말이죠. 얼핏 보면 굉장히 양가적이고 이상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충분히 이해할만한 감정입니다. 

아마 이런 습관이 단순히 최근 몇 년 동안 일어난 일은 아닐 거예요. 성장 과정의 경험, 그리고 중요한 타인들(부모님, 친구들, 선생님과 같은)과의 관계 속에서 ‘나’라는 존재에 대한 감각이 생겨나니까요.

치료 과정에서는 이런 과거의 일들과 현재의 경험들을 연결 짓고, 관계에서 나타나는 패턴을 찾고, 그 패턴이 자신에게 끼치는 영향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래서 현재의 자신이 밉고, 싫고, 문제가 되는 존재라는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자신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생겨납니다.

자신에 대한 이해가 점차 자라나면서, 본인이 겪어가는 관계 속에서 이전과 같은 습관적인 패턴을 반복하기보다, 그 상황에서 ‘내가 굳이 이렇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까?’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나에게 과연 도움이 될까?’ ‘좀 더 건강한 선택은 뭐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기회가 많아질 거예요. 의도적으로 이전과 다른 ‘건강한’ 선택을 해나가는 것이 가능해지겠죠.

 

질문자님의 말씀을 보면, 현재까지 한 치료가 효과가 없다고 볼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바라보고 계시니까요. 또, 사회적 상황에서의 불편감이 직장생활하면서 좋아지셨다는 부분 또한 희망의 증거가 될 수 있겠네요.

다만 어떤 치료든 꾸준히 방향을 설정해 부지런히 걸어 나가시는 게 가장 중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먼길을 지치지 않고 걸어가기 위해서는 지지가 될 수 있는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긴 여정에서 소소한 즐거움과 보이지 않았던 행복을 찾아내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부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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