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걱정은 사는 데 도움이 된다. 미래를 계획하고 행동을 준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걱정 때문에 괴롭다고 말하는 이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걱정을 즐기고 있다. ‘미리 걱정하고 있어야, 미래를 대비할 수 있고, 그래야 안심할 수 있거든’이라며.

불안하더라도, 걱정하는 동안은 일시적으로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마치 걱정하는 것이 자신을 지켜줄 것처럼 믿는 것이다. 걱정하는 것 자체가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고민 때문에 괴로워하는 찰나에 누군가가 “모든 일이 잘될 테니 안심해”라고 위로라도 해주면, 걱정은 괴로운 것이 아니라 위안을 이끌어내는 수단이 된다. 이렇게 되면, 걱정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나름의 긍정적 보상 작용을 한다. 이것이 걱정이 중독으로 이어지게 되는 원리다.

걱정 중독에 빠지면, 아무리 생각을 그만하려고 해도 멈춰지지 않는다. “그나마 내가 지금 걱정을 하니까, 나쁜 일이 안 생기는 거야”라는 왜곡된 믿음에 발목이 잡힌 거다. 걱정에 중독되면, 사소한 스트레스조차 불안이 된다. 일상의 모든 것이 걱정거리가 된다.

 

사진_픽사베이

 

“걱정시간(worry time)”을 갖는 것이 걱정 중독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 걱정시간은 주로 퇴근 이후 저녁 시간에 잡는다. 낮 동안에 걱정이 생기면, 걱정시간까지 걱정을 미뤄두어야 한다. “그때 걱정하겠다”라고 마음먹고, “지금 중요한 일에 집중하자”라고 주의를 현재로 맞춘다.

걱정시간에는 걱정을 글로 적어본다. 걱정과 관련된 생각이나 느낌을 모두 적어야 한다. 걱정을 남김없이 다 쏟아낸다. 막상 걱정을 모두 적어보라고 하면, 별 것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몇 가지 생각이 반복되고, 또다시 생각나서 걱정이 많은 것처럼 여겨질 뿐 실제 걱정은 별것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걱정시간에 꾸준히 걱정하다 보면 걱정하는 것이 지루하게 느껴진다. 걱정시간도 시간 낭비처럼 여겨진다. 이것이 바로 걱정시간의 치료 효과다.

걱정을 글로 적어 보면, 그 아래 숨겨진 생각의 흐름이 드러난다. 자기 생각의 근원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자기 생각에 대한 통제감을 갖게 된다. 걱정시간은 하루의 나머지 시간 동안은 걱정을 미뤄두니까,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 지금 현재 목표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걱정 노출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다. 걱정하는 내용을 말로 반복한다. 걱정하는 것을 말로 계속하면 처음에는 불안을 느끼지만, 점점 반복할수록 불안이 줄어들고 "내가 왜 이런 불안을 느끼고 있지?”라며 자기 생각에 회의감이 든다. 자신의 감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하게 된다.

불안이 느껴지는 이미지가 있으면, 그것을 활용해도 좋다. 걱정을 일으키는 이미지를 마음속에 떠올린다. 이미지가 사라지려고 하면, 다시 붙잡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서, 걱정과 불안 이미지를 찬찬히 관찰한다. 불안 이미지에 자신을 노출시키다 보면, 불안도가 점점 약해진다. 감정에 압도되지 않고, 감정을 관찰하게 된다. 감정이 쏙 빠진 이미지 껍데기만 남는다. 공포 영화를 반복해서 보면, 처음에는 무섭다가 점점 지루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걱정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직면하면 오히려 불안이 줄어든다. “그게 뭐 대수라고. 이런 상황에 대해 이미 마음속에서 그려 보았어. 나는 그것에 대해 불안해할 필요 없어.”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한다.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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