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20대 남자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스워 보이는 이야기일 줄 모르지만 제겐 좀 심각한 일이라서 상담드립니다.

지난밤에 잠자려고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습니다. 근데 갑자기 5년 전의 어떤 기억이 떠올랐는데요. 좀 우습지만 제가 군 복무 시절 어떤 사람이 줬던 (세탁해놓은) 팬티를 입었던 듯한 찜찜한 생각이었습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군대에서 다른 사람의 팬티를 입지는 않았습니다. 결벽증은 아니지만 깔끔하고 예민한 성격이라 더더욱 그렇습니다.

근데 입지도 않은 남의 팬티 입은 찜찜한 생각이 갑자기 든 게 너무 이상한 겁니다. 안 입었다면 이런 생각이 났을 리 없는데, 왜 이런 생각이 들지? 혹시 입은 적이 있었나? 하며 온갖 찝찝한 생각이 다 들더군요. 그러면서 혼자 ‘이렇게 이렇게 해서 이 사람이 나한테 자신의 속옷을 주었고 나는 이렇게 해서 입게 됐다’라고 스토리를 지어내며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또 저 스스로 ‘아니야. 팬티가 아니고 혹시 다른 것으로 착각하고 혼동한 것일 거야’라며 또 다른 반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찜찜한 것에 대한 기억이 명확치 않다 보니 자꾸 강박적으로 이거일 거야, 아니 이거일 거야, 라며 생각하게 되고, 혼자 잠도 못 이루고 별의별 생각을 다 합니다.

더 나아가서 만일 다른 사람의 속옷을 입은 것이 사실이면 어떡하나, 생각하면서 내 몸이 더럽혀진 것과 같은 느낌이 들며 자괴감까지 듭니다. 그리고 현재 제 성기 주변에 무언가 난 것이 있는데 이게 혹시 군대에서 다른 사람 팬티를 입어서 난 게 아닌가 하며 의심도 하고 있습니다.

또 저한테 속옷을 준 것으로 생각 (상상하는) 특정 인물에 대한 원망 같은 감정도 생깁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사람이 나한테 속옷 준 거 아니야? 왜 나한테 이걸 준 거야?”라며 피해 의식까지 생겨나며 마음이 괴로워집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군 생활 당시엔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이런 찜찜한 생각을 한 적도 없었고, 군 전역 후에도 이러한 것과 관련하여 아무런 찜찜한 생각 없이 잘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이상한 생각 때문에 너무 답답하여 제가 상상하는 찜찜한 사건의 당사자(군대 옛 선임)한테 한번 사실 확인차 물어보려고 까지 생각 중입니다. 연락처를 파악해 혹시 “군생활할 때 나한테 팬티 준 적 있었냐.”하며 말이죠. 정말 황당할 것 같지만, 저는 너무나 절실합니다.

대뜸 연락해 이것을 물어보면 저를 이상한 사람으로 볼 거 같아 걱정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 생각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해보면 속이라도 시원할 거 같아 물어보고도 싶어요. 참고로 그 당사자와는 군생활할 때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었습니다. 악의도 없었고요. 전역하고 몸이 멀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졌지만 말입니다.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정말 요즘 이 생각 때문에 잠 못 이루고 생활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조언 좀 부탁드립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강남푸른정신건강의학과 대표원장 신재현입니다. 불현듯 떠오른 과거의 생각이 질문자님을 괴롭히고 있네요. 참 안타깝습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머리 안에 떠오르게 되면, 우리는 그 이유를 찾거나, 그 생각에 필요 이상의 의미부여를 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정말 그 생각은 우리가 평소 하는 생각들과 너무나 동떨어진 생각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런 생각들이 살아가는 내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면, 그런 생각이 떠오르는 자체는 결코 이상한 게 아닙니다. 정신의학에서는 이를 내가 평소 하지 않는 생각인데 머리에 침투하듯이 떠오르는 생각이라 해서 ‘침투사고(intrusive thought)’라 합니다.

침투사고의 유형은 굉장히 다양합니다. 과거 많은 수의 대학생을 모아놓고 이러한 침투사고에 관해 조사했던 연구가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마음이 건강한, 평범한 이들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경험합니다. 예를 들어, 요리하다 앞에 놓인 칼을 보면 ‘이 칼로 누군가를 찌르면 어떨까?’ 하는 생각, 눈앞의 예쁜 유리그릇을 보고는 집어던져 산산조각 내는 상상, 평안한 상태에서 친한 누군가가 큰 사고를 당해서 괴로워하고 있는 장면 등이 아무런 이유 없이도 떠오른다는 겁니다. 이 모든 생각이 큰 문제없이 살아가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또, 이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질문자님께서 말씀하신 기억도 침투사고의 한 유형으로 보입니다. 다만, 평범한 이들과 질문자님의 차이는 생각 자체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성향의 차이인 것 같아요.

 

생각은 기차와 같습니다. 우리 마음이 기차역이라면, 기차(생각)가 우리 마음에 들어왔을 때 우리는 그런 생각을 인식하게 됩니다. 중요한 건, 기차가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겁니다. 생각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다양한 자극으로 인해 무의식적인 영역에서 올라오는 경우가 많아, 생각 자체가 떠오르는 것을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질문자님의 생각처럼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생각들도 떠오르는 것 자체를 통제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결국,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기차역에 들어온 기차(생각)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룰지에 대한 것이지요. 평범한 이들은 괴상하고 이상한 생각이 떠올라도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내가 왜 이러지?’ 하고 흘려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그러면 기차는 역에 잠시 머물러 있다가 떠나가게 됩니다. 어젯밤 떠올랐던 생각이나 감정이 내 마음에 오늘까지 남아있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게 바로 생각이나 감정이라는 기차가 가진 본연의 성질이지요.

 

하지만, 생각 자체에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하거나, 생각 자체를 공포스럽게 바라보거나, 끔찍하게 여겨 이를 없애려 하는 노력을 하게 되면, 기차가 머물러 있는 시간은 더 길어집니다. 백곰효과(white bear effect)라고 들어 보셨을 거예요. (참고 : 정신의학신문 유튜브 - 마음을 내려놓는 법, 마음을 비우는 법) 머리에 떠오른 하얀 곰을 없애거나 지우려 하는 노력을 오히려 그 생각을 더욱 커지게 만듭니다. 오히려 그 생각 자체에 감정과 의미부여를 하게 되고, 초점을 더 많이 맞추게 되기 때문이에요. 과거의 일에 대한 의문이 생겨도 ‘정답’을 찾으려 하는 노력이 생각 자체를 더욱 생생하게 떠오르게 만듭니다. 지금 질문자님처럼요.

그러니, 결국 그런 생각에 대한 바른 마음가짐은 ‘지금은 불편하지만, 곧 흘러갈 것이니, 눈앞의 해야 할 것에 집중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할 게 없다면 나가서 친구들과 만나며 부대끼거나, 해야 할 목록들을 적고 하루를 바쁘게 보내는 게 도움이 됩니다. 일상에 집중하다 보면, 기차는 천천히 떠나갈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강박적인 성향입니다. 글에서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강박증적 성향이 강한 이들은 한 가지 사고에 소위 ‘꽂혀버리면’ 과도하게 그 생각과 상황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불안한 부분에 대해 답을 찾으려 하고, 안도를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으려 하는 행동이 이어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각을 멈출 수가 없게 되기도 하고요. 만약 그러하다면 생각과 거리를 두고 보려 하는 연습, 그리고 그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스러지는 이미지를 상상하며 생각 그 자체에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 연습도 필요합니다.

부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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