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상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사는 게 힘들어요. 왜 사는지를 정말 모르겠어요. 열심히 사는데도, 저만 잘 안되네요. 몇 달째 걱정만 하고, 제자리인 자신이 한심스러워요.

A: 살다 보면 인생의 쓴맛을 볼 때가 있는데, 그때는 마음이 아프고, 몸과 마음이 같이 아픕니다. 그런 때는 그냥 사는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세요. 기적처럼 그냥 살아주는 거죠.

Q: 누구는 부모 잘 만나서 꽂아주는 자리에 가는데, 저는 꽂아줄 사람도 없어요. 이렇게 정신과에서 우울증약이나 먹고 있는 제가 싫습니다.

A: 공감은 되지만, 마지막 그 표현은 동의하기 어렵네요. 인생의 고민을 제대로 하시는 분이 찾는 곳이 정신과입니다. 정신과 전문의에게 고민상담도 받으면서 ‘한 번뿐인 인생을 제대로 살려는 괜찮은 사람이구나. 한 해 동안 기적처럼 버티며 살아왔구나.’ 힘든 자신을 격려해주세요. 정신과란 낙인을 스스로 지우기 어려우시면 ‘고민튀김상담소’에 마음떡볶이 드시러 왔다고 생각해주세요.

(링크) 우울증 극복을 위한 마음떡볶이 매운맛

 

사진_픽사베이

 

고통의 의미의 순(順), 진(眞), 선(善), 미(美)화 

연말입니다. 연말에 특히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네요.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고통스러워하시는 분에게는 정신과 치료도 아픈 낙인인 것처럼 느껴져 안타깝습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마음의 고통을 덜어주는 마음떡볶이, 달콤한 맛을 준비해보았습니다.

내가 나를 더 아프게 할 때는, 자신을 바라보는 내면의 시선을 점검하고, 나는 나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가를 자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나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왜 나는 나 자신을 좋아하지 못하는가?’
‘혹시 행복하려면 이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다는 내면의 기준에 따른 자책 때문일까요? 남들보다 열등한 조건으로 인해 나를 좋아할 수 없다고 받아들인 것은 아닐까요?’

이런 질문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할 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남들이 나를 보는 시선보다 스스로 바라보는 시선을 점검하고 고치는 것이 먼저인 것 잘 아시죠. 조건적 자존감과 미학적 자존감은 다르다고 말씀드렸었죠.

(링크) 미학적 자존감을 높이는 삶을 선택하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좋아할 수 있도록 내면의 시선을 고친다면, 자아는 가혹한 초자아의 악플에서부터 벗어나 안전감을 느끼며, 진정한 자기로 살아가는 활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 우리는 자신에게 닥친 불운한 사건으로 인해 자신을 끔찍하게 바라볼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에게 벌어진 그 일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일에 처한 우리의 해석은 다르게 내릴 수 있습니다. 불운한 일로 인해 ‘나는 완전히 망했다. 나는 실패자다. 나는 무언가 잘못했다.’라고 믿는다면, 두려움, 걱정, 후회, 죄책감, 우울, 불안 등의 부정적 감정이 우리의 삶을 압도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해석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절망하게 되는 마음의 심한 통증을 일으킵니다.

반면, ‘어차피 우리 인생에서 불행한 일은 벌어지기 마련이다. 어쩔 수 없지만, 불행한 일이 올수록 잘 넘겨야 덜 아프니 일단 잘 넘길 수 있도록 집중해보자.’라고 넘긴다면 어떨까요?

원래대로 회복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다 보면, 문제는 점점 작아지고, ‘나는 문제를 통해서 성숙할 것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면 우리의 감정반응은 분명 달라질 것입니다.

이런 것이야말로 근본적으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신에 대한 시선을 변화시켜, 문제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하고, 대안적 해석의 틀을 마련해주는 가성비 높은 마음의 통증 시술일 겁니다. 고통의 순간에도 자신을 소중한 존재로 여겨줄 때, 문제를 다른 생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길 수 있습니다. 고통의 순간에는 자기 자신을 더 아프게 하지 않게 자신을 돌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쉽지는 않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고통의 의미를 순, 진, 선, 미화시키는 마음떡볶이 달콤한 맛입니다.

현재의 문제에 고군분투하는 나 자신을 미래의 성숙한 성인 자아의 시선에서 볼 때, 힘든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게 되며, 자신을 힘들게 하는 문제가 담고 있는 의미에 대해 적절한 순, 진, 선, 미화가 가능해집니다. 다시 말해, 고통의 의미를 적절하게 순화시킬 수 있고, 문제가 주는 아픔을 통해 내면의 숨은 잠재력을 진화, 선화, 미화하여 해석할 수 있다면, 불행한 일이 벌어진 순간에도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을 찾아낼 수 있는 미적 역량이 생깁니다.

(링크) 일상의 아름다움을 바꾸는 심미안 기르기 

 

가령, 문제를 겪고 나서 정말 모든 게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진 것 같은 순간에 ‘괜찮아, 저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끝은 아니었지.’ ‘이번에도 숨 한 번 길게 내쉬고, 문제를 풀어나가도록 견뎌보자.’라고 하는 것은 고통의 의미를 순화시킨 것입니다.

‘실수나, 문제와 어려움은 다 나를 나답게 만들어가는 소중한 경험’이라고 고통의 진정한 가치와 참뜻을 찾아 의미부여하는 것이 의미의 진화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문제는 한 번에 해결할 수 없다.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고민으로 내게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조금씩 시도해보자’. ‘저 사람이 나에게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해준 좋은 일들을 생각하며, 고통을 극복하는 것도 대인관계에서 겪는 고통의 의미를 선화시킨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선한 의도를 인정해주지 않아 속상할 때, ‘타인이 아름다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미화적 해석일 겁니다.

이런 해석은 고통을 진정시키며, 그 순간을 가치 있게 극복하도록 돕습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적당한 문제와 스트레스는 언제든지 벌어지기 마련인데, ‘적당한 스트레스는 뇌를 자극해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되고, 이런 양념들이 우리 삶에 활력소가 될 수 있다.’라고 달콤하게 그 순간을 넘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대안적 해석은 고통스러운 삶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의미부여를 통해서 삶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고통을 순화, 진화, 선화, 미화할 수 있는 역량이 키워진다면, 우리 주변의 아름다움을 더 잘 느낄 수 있고, 우리 자신의 숨겨진 마음매력을 더 잘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진_픽셀

 

철학자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뿐이다.’ 그리고 ‘삶의 의미가 있다면 어떤 고통도 견딜 수 있다.’라고 말했죠. 평생을 신경통과 싸웠던 그에게 통증은 아주 친숙한 존재였죠. 니체는 ‘삶을 긍정하는 것은 삶을 가장 강렬하고 가장 창조적으로 살아내기 위해 고통을 자극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라고 고통을 받아들였죠. 니체는 고통을 자신의 인생의 독자성을 확보하기 위한 자극으로 받아들였고, 그럼으로써 자신에게 오는 고통의 영향력을 최소화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고통이 끝나도 행복은 바로 오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고통이 진정되는 평온한 순간은 분명 행복감과 가깝습니다. 삶에서 벌어지는 시련과 고통은 소소한 행복도 정말 값진 것임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살면서 절실하게 행복의 의미를 추구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본질적으로 고통은 유익하다고 보는 시선을 가진다면, 고통 속에서도 달콤한 의미를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쾌락을 느끼는 능력은 고통을 느끼는 능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둘은 하나를 가지고 다른 하나만을 만들 뿐이다. 그러므로 심오한 기쁨을 알기 위해서는 심오한 슬픔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다. 고통을 체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피상적 쾌락만을 얻을 뿐이다. 고통은 우리를 깊이 있게 만들고 우리가 내면의 원동력을 인식하도록 가르치며, 그 반대의 것을 더 잘 수용하도록 만든다. 고통을 겪는 사람의 기쁨은 정의상으로나 뉘앙스 면에서나 차원의 측면에서나 그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풍요롭고 가장 생기 있는 기쁨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즐거운 학문’ 중에서)

 

가장 어두운 순간이 가장 빛나는 것처럼, 당신에게도 이 고통의 순간은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될 수 있다고 여기고 견디시면 어떨까요? 행복은 한순간에 짠하고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조금씩 느끼고 유지해 나가며, 결국 삶 속에서 다양한 의미로 새록새록 발견해나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인간은 과정을 통해 이뤄가는 행복을 추구할 때 그 행복감을 비교적 쉽게 다양하고, 깊게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죽을 것 같은 고통에서도 그 의미를 알 수 있다면, 어떤 고통도 견딜 수 있다는 니체의 말도 진행형인 삶에서 얼마든지 반전을 이뤄낼 수 있다는 통통 튀기는 회복탄력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런 진행형인 삶의 관점에서, 흙수저로 태어났어도 이뤄가고 성취할 수 있는 조건이 많기에 행복하다고 의미 부여할 수 있겠습니다. 이른바 다이아몬드수저로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더 많이 타고났어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과정에 있다면, 자신이 이뤄낸 것이 없다는 진짜가 되지 못한 공허감에 시달릴 수 있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고통의 경험에 달콤한 의미만을 남길 수 있다면, 인생은 해볼 만한 모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우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본다는 것은 나의 조건을 패배자로서 체념하듯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이 조건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찾아내서 뭔가를 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불리하고 결핍된 조건은 나를 성장시키는 동기를 부여하는 자극으로 보아주고, 현재의 내가 기울이는 소소한 노력을 의미 있게 믿으며 자신을 격려하며 앞으로 한 발짝 전진한다면, 우리는 고통을 넘어서 더 나은 지점에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 삶의 한계와 문제와 그것이 주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괜찮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삶의 문제 속에서도 그 의미를 순화, 진화, 선화, 미화시키는 적절한 의미부여 요소를 찾아낸다면, 문제를 보는 관점과 삶의 태도가 변할 뿐 아니라, 문제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잊지 마세요. 2019년 가장 힘든 순간에도 당신은 더욱 빛났습니다. 그리고 말해주세요. ‘이렇게 살아낸 것이 기적이다. 더할 나위 없었다.’고요. 청력을 잃고도 음악적으로 자신의 고통을 예술적으로 승화한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8번 비창 2악장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마음떡볶이와 함께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언제나 열심히 살아가는 당신의 지친 마음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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