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박지웅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지난주 병원에 갔더니 우울증 치료제를 처방받았어요. 약을 먹고 다음 날 일어났더니 오후 2시더라고요. 다시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용량이 과했던 것 같다고 하시면서 감량해주셨는데 며칠째 기운이 없어서 낮에 너무 힘듭니다. 항우울제가 원래 이런가요?

저는 항우울제를 먹으면 우울감이 싹 사라질 줄 알았거든요. 아니면 부작용 때문일까요? 궁금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박지웅입니다.

항우울제를 처음 복용하시는 상황이라 놀라셨겠습니다. 낮에 졸린 것은 항우울제의 일반적인 부작용입니다. 일부 히스타민이나 아세틸콜린을 차단하거나 저하시키는 약물을 쓸 경우 졸린 경우가 있습니다. 간혹 입이 마르거나 살이 찌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이것은 잠을 많이 자고 많이 먹게 되어 회복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이기 때문에 우려할 일은 아닙니다. 항우울제는 계열도 다양하고 처방할 수 있는 종류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크게 걱정하실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정신과 약물 자체가 1950년에 들어서야 쓰이기 시작해서 정신과 약물의 역사가 짧은 편입니다. 말씀드린 히스타민, 아세틸콜린 차단 항우울제는 약물 개발 초기에 만들어진 약물이라 이러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1990년대 이후에 개발된 약물에는 부작용도 적고 효과가 뛰어난 약물들이 다양합니다.

 

다만, 항우울제는 말씀하신 대로 우울감이 일시에 사라지는 효과를 보는 약물은 아닙니다. 항우울제는 진통제나 수면제와 다른 원리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일정 효과를 보기 위해서 최소 3개월은 복용해야 차도가 있습니다. 마치 메마른 땅에 숲이 우거지려면 물과 햇빛이 필요한 것과 같습니다.

메마른 땅이라 물이 바로 스며들지 못하고 한 곳에서는 물이 흘러넘치는 일도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숲이 우거질 때까지 비가 필요하듯이 우리 몸에도 한동안 세로토닌이 공급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연을 보내주신 분께는 본인에게 맞는 약물과 복용량을 조절하라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간혹 우울증이 심각해도 약물 없이 치료가 가능한지 질문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울증 치료에는 약물치료를 적극적으로 권하는 편입니다. 우울증 때문에 힘든 상황을 길게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지금 당장의 어려움을 돌파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죠.

겨울에 매서운 눈보라가 치는 길을 나선다면 외투 하나라도 더 걸치고 나서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추위 속에서 두터운 외투를 걸치는 것은 꼭 필요한 행동인데, 외투에 의존한다면서 그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없듯이 항우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더 효율적이고 전략적으로 견뎌내는 방법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려운 시기를 지나치고 나면 꾸준히 일을 하고,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게 되는 수준의 삶을 회복했다고 느낄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지만 바로 항우울제를 중단하는 것은 아닙니다. 숲이 울창하다고 해서 비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뇌 속에 기능이 모두 돌아오기까지 세로토닌이 충분하게 안정화될 수 있도록 기다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1년 정도 약물을 투여하고 이후에도 재발이 있는지 경과를 봐야 합니다. 참고로 10년 이상 만성적인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우울증의 약 10% 정도 됩니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3개월 이내로 우울증을 회복하고 약물을 1년 정도 유지합니다.

제 답변이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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