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광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남자 친구가 저를 비롯한 가족에게만 때리고 물건을 던지는 행동을 합니다. 욕설과 폭언은 일상이고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차에 받힌 경험이 두 번이나 됩니다. 어느 날에는 말로 설득하려는데 밀쳐서 저를 넘어뜨렸어요. 그런데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토록 거칠어도 밖에서는 밥도 잘 사주고, 일도 친절하게 잘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이게 병일까요? 병이라면 사람을 가려가면서 증상이 나타난다는 게 믿어지지 않네요. 치료가 가능할까요?

 

 

답변)

안녕하세요. 이광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입니다.

남자 친구에 대해서 문의를 하셨는데, 저는 이 사연을 보내주신 분이 더 걱정됩니다. 무엇보다도 질문자분의 안전에 대해서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네요. 차에 치일 뻔한 적이 두 번이나 있다면 신체적으로 큰 위협입니다. 이점에 대해서 안전 확보가 가장 먼저 필요합니다.

이런 본인의 안전에 대한 위험을 감수하면서 계속해서 만남을 이어가야 할지도 의문입니다. 가족이나 여자 친구에게 가혹하다면 사회에서 친절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거나 대외 관계에서도 진짜 친절하기보다는 친절한 가면을 쓰고 지내는 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느 쪽이든 계속 만나는 게 사연 보내주신 분에게 바람직한지 의문입니다.

 

남자 친구분의 특징은 바깥 일상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는 대인관계가 좋은데 가까운 사람에게만 이런 폭력을 보인다는 겁니다. 더구나 밖에서는 일도 잘하고 사람들에게 자상하다는 평판도 있죠. 이분은 가까운 사람에게만 이런 선택적 모습, 우발적이고 폭력적인 면에서 왜 그런지에 대한 진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남자분을 직접 만나 보진 못했지만, 상황적으로만 봤을 때, 자존심, 자아상이 높아 보입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와 같이 어느 정도 자부심이 있는 태도가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는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힘을 다 짜냅니다. 관계가 좋은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가까운 사람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의 자존감을, 나의 힘을 마음대로 하는 경향이 생기는 것이라고 보입니다. 그들은 편하니까, 존중해주지 않아도 될 것 같으니까, 가까운 사람에게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죠.

 

정신의학에 분노조절장애라는 진단명은 없습니다. 정신의학에서는 분노조절장애와 가장 유사한 진단으로는 간헐성 폭발장애를 이야기합니다.

간헐성 폭발장애는 폭발적인 충동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충동성이 너무 강해서 조절을 못 하고 폭력적인 행동이 튀어나올 때 이를 간헐성 폭발장애라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경찰이 총을 들고 있는 상황에서도 충동 조절이 안 되어 폭력적인 행동을 할 때, 이런 충동성을 병적이라고 판단합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충동성에 조금 관대한 편이 아닐까 싶고요.

 

이 사례에서 남자분이 제어가 안 될 정도로 폭력적이고 우발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대외적인 활동에서 대인관계가 문제가 없다는 것은 곧 자신이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만 폭력을 휘두르는 상황이라면 분노조절장애는 아니지만 치료가 개입되면 나아질 수 있습니다.

주변인들은 ‘적어도 이 선은 넘지 말아야 한다.’, ‘이것만은 용납이 안 된다.’라는 것을 당사자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아까 언급한 대로 주변 사람들의 신변에 위협이 될 정도라면 치료가 시급합니다.

 

이광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마인드랩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경북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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