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박지웅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질환을 가진 가족을 돌보는 것은 일상의 큰 변화입니다. 투병과 재활 과정을 함께 하면서 삶의 우선순위도 크게 바뀔 수 있죠. 또 치료가 끝나더라도 재발의 위험은 가족에게 큰 부담입니다. 그러다 보니 환자는 물론이고 가족들도 병과 싸워나가는 것은 기나긴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중증 정신질환이 아닌 상대적으로 경한 우울증이라 하더라도 주변인들은 당혹스러울 수 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라 답답할 수도,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무력감은 보호자를 더욱 힘들게 만듭니다.

너무나 답답해서 우울한 사람을 설득하고 싶고, 채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순 있지만, 환자의 평소와 다른 모습을 존중해줘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 입장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상태에서 그 사람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고 관심 갖고 있음을 계속해서 알려줘야 합니다. 참으로 어려운 과정이죠.
 


그래서 우리는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돌볼 때 필연적으로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어렵고 잘 모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나의 잣대로 환자를 재단하고 개입하는 것이 도움이 아니라 아픔을 주는 행위일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왜 우울한 거니’, ‘뭐가 문제인 거니’, ‘내가 뭘 잘 못한 거니’처럼 이유를 찾는 것은 사실 아픈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마땅한 이유가 있을 때만 우리가 아프란 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유는 나중에 찾아도 되지만 많이 힘들고 아프다는 것은 지금 당장 괴롭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불에 덴 사람에게는 다친 이유보다는 지금 당장 아픈 화상부위를 식혀주는 게 더 중요한 것처럼요.

그리고 ‘좋은 책을 읽어라’, ‘운동해라’, ‘뭐라도 해라’처럼 누구나 머리로 다 아는 내용을 가르치려 드는 말도 자제해야 합니다. 왜냐면 아픈 그들도 알고 있거든요. 다만 그렇게 하기 힘든 상태인 것입니다. 마치 늪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얼른 나오라고 훈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죠. 

 

우울증 환자를 돕는 방법은 상대가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자신의 동굴에서 나올 수 있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우울의 바닷속 깊이 침몰해가는 사람을 수면 밖으로 한 번에 끄집어내는 것은 정신과적으로는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실제 해상구조에서도 이런 식으로 섣불리 구조하다간 갑작스러운 수압의 변화로 인한 잠수병으로 목숨을 잃기도 하죠.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울의 바닷속에 침몰해있는 사람보다 딱 1미터 위에서 그들이 손을 내밀 때 잡아당겨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침몰하는 그들과 같이 내려가 줘야 합니다. 답답한 마음에 소리 지르는 것도, 끄집어내는 것도 아니고 인내심을 가지고 그들보다 1미터 위에서 1미터만큼 잡아당겨줄 준비를 하는 역할. 답답하고 지리하지만 그렇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우울증 경험자들은 가장 많은 고마움을 느낄 것입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