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화병은 한국의 고부갈등과 같은 문화적 맥락에서 출발한다. 화병은 컬처 바운드 신드롬(culture bound syndrome)이라 해서 특정 문화권에서 보이는 병리현상 중 하나다. 예민한 감정 기복, 수면문제, 저하된 기력이 문제가 되어 일반적으로 우울증 증세와 비슷하다. 최근에는 직장에서 화병이 나는 경우가 많아 직장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다.
 

사진 셔터스톡


화병의 근원은 감정조절이 되지 않는 데에 있다. 분노가 가득 차다 보면 객관적인 시각을 잃는다. 별일 아닌 일에도 확대해서 해석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실체와 달리 크고 버겁다고 느낀다. 건강할 때는 지나쳤을 작은 말 한마디조차 비수에 꽂히는 것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직장에 대한 좌절감과 두려움 때문에 직장생활에 지장이 생기게 되면 우울증 내지 사회불안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월요병’ 정도의 가벼운 거부반응 정도가 아니라 직장을 불안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출근에 늦거나 출근을 피하게 되는 적응 문제로 번지게 된다. 불안은 상황을 일반화하는 속성이 있어 점차 다른 대상으로 불안이 옮겨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직장에서 화병을 앓고 있다면 먼저 자신이 정말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불안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생각, 신념은 대개 상황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직장에 가면 따돌림을 당할 것이다’ 또는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 거야’와 같은 식의 생각들이다.

이를 '자동적 사고(automatic thought)'라고 하는데, 작은 불안의 기운만 보더라도 강하게 받아들이고 합리적인 사고체계를 거치지 않고 성급한 결론으로 치닫게 되는 과정을 말한다. 이렇게 만성화가 되면 PTSD, 즉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와 같은 트라우마를 입을 수 있다. 직장인들의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한 관건은 직장인들이 겪는 스트레스성 상황이 지속적인 문제가 아니라 일시적인 어려움에 그치도록 해야 한다. 스트레스를 반복적으로 겪고 이를 방치하면 만성화가 된다.

 

최근 7월에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되어 면접을 비롯해 사업장에서 고의적인 모욕감이나 차별적 행동을 보이면 처벌하도록 법이 바뀌었다. 회사 내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마찰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인 입장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적 제도는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노동자로서, 동료로서 직장인이 받는 스트레스는 높다. 스트레스를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거나 실생활에서 문제가 생길 정도로 심각하다면 정신건강의학과에 문을 두드려 보는 것이 대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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