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삶이 불안한 당신에게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영화 기생충 中)

영화 기생충의 수많은 명대사 중에서도 유독 이 대사가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대사다. 일견 아들을 대견해하는 아버지의 따뜻한 말 한마디처럼 보였던 장면이, 실은 계획대로 되는 것 하나 없는 삶에 대한 무력함과 냉소의 표현임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깨닫게 된다. 우리는 늘 계획을 하지만 삶은 이와 상관없이, 아니 오히려 비웃듯이 제멋대로 흐른다. 

 

중요한 시험일수록, 다른 시험에서는 절대 하지 않을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늘 내가 산 주식은 떨어지고 사려 했던 집값은 고민하는 사이에 살 수 없는 가격이 된다. 모든 직장은 다녀보기 전엔 그 실체를 알 수 없고, 모든 이별의 상대는 결코 헤어질 리 없을 것이라 생각하던 사람이다.

이렇듯 삶은 불확실하며, 원하는 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 방학 숙제로 하루 시간표를 그릴 때부터 우리는, 삶에는 계획이 필요하고 그것대로 이루어질 때 행복이 찾아온다고 배웠다. 그러나 실제 방학 생활 동안 내가 깨달은 것은, 계획이란 그대로 지키기 힘들다는 것, 진심으로 노력해도 계획을 방해하는 돌발변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 계획을 달성할 때의 기쁨보다는 계획을 지키지 못해 느끼는 불안감을 더 자주 만났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방학 시간표보다 지키기 어려운 것이 시험공부 계획이고, 그보다 어려운 것이 취업, 결혼, 재테크 계획이다. 나이가 들수록 예측할 수 없는 변수는 늘어나고, 나의 노력이 계획을 이루는 데 미치는 영향은 줄어든다. 생각했던 대로 이루어지는 미래보다는 낯선 내일을 마주하는 날들이 늘어난다. 

 

어린 시절 배웠던 대로, 예상한 대로의 삶이 이어지는 것이 행복이라면 우리는 언제 행복해질 수 있을까.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확실한 미래보다는 예상을 벗어나는 불확실한 내일이 더 잦다면, 우리는 대부분의 순간 동안 불안해하고 가끔 행복할 수밖에는 없는 것일까.

그런데, 간과하기 쉬운 중요한 한 가지 생각이 우리 마음속에 숨어 있다. 그것은 '불확실함'과 '두려움'이 자동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좋은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만이 정답이자 옳은 것이라 가르치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확실한 미래만이 행복이며 불확실함은 위험하고 피해야 하는 것, 당연히 불안한 것이라 믿는다.

 

도박이 성행하던 근대에, 다음 주사위의 눈을 과학적으로 파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물론 실패로 돌아갔다. 주사위의 크기, 무게, 던지는 손의 힘, 각도부터 바람, 온도, 습도, 주변 지형지물, 주사위에 관계된 모든 만유인력, 그리고... 도저히 모두 파악할 수 없는, 무한대에 가까운 변수들이 주사위의 눈을 결정하고 있음을 수학자들은 깨달았다. 그리고 결국 다음 주사위의 눈을 완벽히 예측할 방법은 없으며 확률로만 따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쩌면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내일 하루의 일상부터 나의 커리어, 배우자, 자녀... 수많은 삶의 과정이 어떻게 펼쳐질지를 미리 예상할 수 없다. 고작 한 시간 뒤의 내 기분도 완벽히 예측하지 못하는 우리다. 그럼에도 10년 후, 30년 후의 삶을 설계하고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그렇게 되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초조해한다. 

 

사진_픽사베이

 

살아가며 누구나 느끼듯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삶의 요소는 극히 일부이기에, 우리의 생각대로만 인생이 흐르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쩌면 삶에 대한 지나치게 무리한 요구일지도 모른다.

삶을 미리 준비하고 그에 맞게 노력하는 태도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것만이 확실하고 안전하며 긍정적인 것으로, 예상을 벗어나는 불확실성은 불안하고 위험하며 이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려는 것이다. 

불확실에 대한 두려움은 인생을 통제하려는 욕구로 이어진다. 확실하지 않은 내일은 예상보다 더 불행할 수도 있지만, 요행히 미리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기쁠 수도 있다. 그러나 ‘일어날지도 모르는 문제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지나친 나머지 결정되지 않은 것, 확실하지 않은 모든 것을 꺼리고 회피하려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 심지어 매력적이지만 불확실한 행복 대신, 예상이 가능하고 감내할 수 있을 정도의 확실한 불행을 택하기도 한다. 

 

불확실함이란 일어나서는 안 되는 돌발적인 문제가 아니라, 삶이 이루어지는 근본적인 원리이다. ‘불확실하니 살아가 볼 가치가 있다’라는 식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애초에 삶이 모든 것이 결정된 채로 짜여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필연적인 불확실을 이질적인, 그리고 존재해서는 안 되는 오류로 간주하고 매번 이에 대해 '한 번 더' 불안하고 초조해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이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삶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불안해하는 것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불확실함을 '통제하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는 것이다. 삶이란 온전히 나의 통제 아래 둘 수 없음을 알아차리고 또 받아들이면, 역설적으로 마음은 한결 편해진다. 원치 않은 결과, 어쩔 수 없는 불행이 일어나는 이유가 미리 제대로 삶을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본디 삶이 불확실하기 때문임을 인식하면 내일이 확실하지 않다는 사실만으로는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과거 이야기를 돌아보자면,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취직을 위해 이과를 택했다. 강아지가 좋아 수의사를 꿈꿨으나 현실의 여러 논리에 따라 의대에 왔다. 전공 공부는 생각보다 마음에 잘 맞지 않아 힘들기도 했다. 정신의학을 공부하며 인문학적인 갈증이 해소됨을 느꼈으나, 막상 실제의 진료 환경이 이상과 다를 땐 좌절하기도 했다. 생각대로만은 흐르지 않았던 삶의 길을 걸어 나름대로 꾸려낸 지금의 자리에 닿았고, 돌고 돌아 어린 시절 꿈에도 아주 살짝, 닿았다. 여기서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만나고 글을 쓴다. 

변수가 있다고 해서 행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행복에 다가가는 길은 변수를 하나하나 지워가는 것이 아니라, 삶에는 본디 변수가 있음을 깨닫고 이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데 있다. 잘못 든 옆길에서 잊을 수 없는 여행의 추억을 발견하듯, 때로 길을 잃어도 행복을 향해 걷다 보면, 미리 생각하지 못한 행복을 발견하는 것이 삶이다.

20년, 10년, 고작 1년 전의 나는 오늘의 나를 상상할 수 없었다. 지금의 내 모습뿐 아니라, 어떤 과정으로 삶이 어떻게 흐를지는 한 치 앞조차 내다볼 수 없었다. 그동안 글로 적을 수 있는 일 외에도, 결코 예상할 수 없었던 아픔에 깊이 절망하고 울었던 적도 많다. 어쨌든, 그때마다 내일은 다시금 이어졌다. 낯설고 소박한 지금 이 순간의 작은 행복은, 그동안의 삶이 뜻대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은 아니었다.

 

만약 당신이 예상하지 못한 아픔이 다가올까 지나치게 불안하다면, 원래 사는 게 그런 것이라 담담히 되뇌어 보기를 바란다. 내일이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미리 고민하는 대신, 그 두려움을 정말로 대처가 필요한 일들을 위해 아껴 두길 권한다. 원하는 것들이 그 모습 그대로 이루어질 때만을 행복이라 생각하고, 그렇지 못할 때마다 좌절하는 대신, 꿈꾸고 바라는 것들을 이루기 위해 그저 오늘 하루만큼만 할 수 있는 걸음을 걷기를, 그리고 그다음에는 그저 지켜보기를 권한다. 

내일도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거나, 기대하던 혹은 기대하지 않았던 행복, 또는 불행이 올 것이다. 그리고 마치 파도가 들고 나듯, 그다음 삶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삶에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불확실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단지 삶이 이어지는 원리이다. 본디 그렇게 정해진 불확실함,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만으로 하루를 채우기엔 오늘이 아깝고도 소중하다. 확실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차지하고 있던 당신의 마음에 그 대신, 지금 이 순간의 따뜻함, 앞으로 내디딜 한걸음에 대한 기대가 깃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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