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영업 1부 김과장에게는 별명이 있다. 김꼼꼼, 김삼삼. 10년을 근속하는 동안 지각, 결근, 조퇴가 전혀 없었다. 철저한 FM으로 융통성이 없기로 유명해서 김답답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별명 부자이다.

김삼삼이란 별명은 왜 생겼을까? 모든 일을 3일 전부터, 3번 이상, 최소 3명이서 함께 확인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김과장은 후배, 동료, 상사 모두에게 인기가 없다.

얼핏 생각하면 상사들은 좋아하지 않을까? 일처리 하나는 똑 부러질 거 같은데, 왜 그럴까?
 

박 부장: 1부 김과장? 아... 김 답답? 그 친구는 일 시켜놓으면 한세월이야. 계속 확인을 해. 아니 ,영업일은 속도가 생명인데... 광고 심의 질의한다고 1주일, 식약청 인증 확인한다고 2주일, 그거 다 일일이 확인한 뒤에 홍보전략 세우면 아니 에어컨을 가을에 팔고, 호빵을 봄에 파나?

동기 오 과장: 그 친구요? 밥 먹을 때마다, 4명이서 5만1천원 나왔으니까, 머냐 그 만2천? 만3천원 정도씩 내면 되겠구먼... 매번 12750원을 현금으로 주거나 계좌이체를 해주겠대... 아니 그냥 만2천원만 내라고 해도 그건 또 싫대. 정도 없고... 융통성도 없고...

김대리: 김컨펌 과장님이요? 어우... 출근할 때부터 퇴근까지 컨펌했어? 소리를 백 번은 들어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백번입니다. 한 번은 세어봤어요. 오전에만 20번 가까이를 하시더라고요... 아니 그리고 대체 다른 사람 업무를 왜 3명이 같이 확인을 해야 하는 거죠? 자존심도 상하고... 이게 능률을 오히려 떨어뜨리는데... 왜 모르시는지...
 

사진_픽셀


<강박적 인격 성향의 증상들 >

1. 세밀한 규칙, 명단, 순서, 시간 표등에 무척 집착한다.
2. 엄격하고 지나친 완벽주의로 인해 일을 끝마치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3. 생산성, 효율성 등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 무척 경쟁적이다.
4. 도덕, 윤리적 문제에 지나치게 양심적이고 완고하다.
5. 아랫사람들에게 일을 잘 안 맡긴다. 실수하는 걸 보느니 피곤해도 직접 한다.
6. 지나치게 알뜰하며, 가난과 파산을 두려워한다. 쓸모없는 물건도 거의 버리질 못한다.

 

정작 본인은 말한다. 

“영업 1부에서 제출한 리포트는 오자나 탈자가 한 번도 없었어요. 확인하기 때문이죠. 회사원한테는 이게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해요. 아무리 조심해도요. 그렇기 때문에 3일 전부터, 각자 3번씩, 그걸 총 3명이 서로 확인하는 거지요. 그러면 실수가 비약적으로 줄게 됩니다.”

 

이렇게 말하는 김과장의 얼굴엔 뿌듯함까지 엿보인다. 여기까지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흔히 강박증을 연상할 수 있다. 하지만 강박증과 강박적 인격성향의 가장 큰 차이는, 강박증은 자아 이질적인데, 강박적 인격성향은 자아 동조적이란 점이다.

무슨 말이냐면 강박증 환자들은 자신의 이런 성격이나 증상이 스스로도 매우 불편하고 힘들다. 내가 왜 이러는지 짜증 나서 고치고 싶고 그만두길 원하는데, 반대로 강박적 인격성향인들은 자기가 좋아서 이러고 있는 것이다. 고쳐야 한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흔히 ‘성공한 사람 치고 OCPD가 아닌 사람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OCPD(obsessive compulsive personality disorder : 강박적 인격장애)는 강박적 인격성향이 좀 더 심한 경우를 지칭하는 것인데, 병원이나 일부 회사에서는 ‘완벽주의가 심하고 꼼꼼하다’를 뜻하는 관용구로 쓰이기도 한다. ‘옵쎄하다’라고 쓰이기도 한다.

이는 얼핏 칭찬처럼 들리기도 한다. 실제로 내가 일하던 세브란스에서도 전공의가 나르시스틱하다거나 보더라인(경계성 인격성향)끼가 있다고 하면 부정적인 평가였지만, “쟤 OCPD잖아?”라고 주위에서 부르면 ‘일을 펑크 안 내고 잘한다, 실수가 없다’라는 식의 은근한 칭찬으로 생각하고는 했다.

실제로 일에 대한, 특히 성과에 대한 세밀하고 고집스러운 집착이 있는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다. 특히 꼼꼼한 확인이 요구되는 일, 경제학자, 애널리스트, 투자 전문가, 의료 종사자 등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들의 성공은 그만한 대가를 치른다. 이들이 수없이 일과 성과에 집착하고 확인하는 시간 동안 주변의 인간관계는 그만큼 소홀해지고 가족과 연인, 친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정신분석적으로 이 강박성 인격성향을 해석하면 오이디푸스적인 거세불안으로부터 항문기로 퇴행된 결과라고 본다. 배변훈련이라는 부모가 나에게 내준 첫 번째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 혼나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불안이 생겨 자꾸 확인하려는 습관이 생기는 것이다. 만 3~5세 소변이나 대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한 탓에 부모에게 지나치게 혼나고 체벌받은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이에 집착하고 불안해한다. '수업시간에 오줌을 싸면 어쩌지? 대변을 보러 가다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생리현상을 부끄러워하고 억압하는 것이다. 여기서 생긴 불안은 수치심이 되고 아이의 학창 시절을 내내 따라다니게 된다. 

자신의 생리현상, 1차원적인 욕구와 본능에 대해 수치스러운 것이라는 인식이 형성되면 다른 욕구들도 부끄럽고 부정한 것이라 착각하게 된다. 숨기고 억압하고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자아는 초자아의 엄격한 처벌로부터 감정을 분리하고 취소하고 전치하는 방어기전을 통해 수치심의 불안으로부터 도망치려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에 대한 역반응, 보상심리는 인정에 대한 욕구이다. 수치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역으로 지나치게 청결에 집착하게 되고, 결벽증이 생긴다. 

 

사실 김과장에게는 비밀이 있었는데 초등학교 시절 소풍 가는 버스 안에서 실수로 큰 것을 사버린 것이다. 그것도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보는 앞에서. 전학을 두 번이나 갔지만 똥쟁이란 별명은 사라지지 않았다. 트라우마를 지우고 극복해보려는 그의 노력은 눈물겨웠지만 전교 1등을 하건, 명문대에 가건 초등학교 동창들은 항상 그를 똥쟁이로 기억했다. 

김과장은 자신이 트라우마에 대한 반동으로 결벽증이 생겼고 이것이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는 걸 대학교 1학년 때 깨달았다. 친구들과 음식이나 과자를 나눠먹지 못했고, 특히 남이 입을 댄 소주잔을 넘겨받는걸 심각하게 힘들어했다. 

“귀하게 컸네, 유난 떤다”라는 정도의 핀잔은 참을 수 있었지만, 강의실 책상과 의자에 앉을 때마다 물티슈로 몇 번씩 닦고서야 앉는 사실 때문에 과전체에 결벽증 환자라는 소문이 퍼지자 김과장은 이 오염강박을 성과에 대한 집착으로 방향을 틀었다. 수치심에 대한 두려움은 뒤에서 비난하고 수군거리는 이들에 대한 분노의 감정으로 바뀌었고 이러한 공격성은 김과장의 내면에 숨어있었던 어린 시절의 수치스러운 기억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부모에게 의존하고 싶었지만 거절당했던 그 갈망과 결핍을 보상받기 위해 1등과 학점, 대기업 사원증 같은 것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인정받기 위해, 실수하지 않기 위해 확인하고 또 하는 새로운 강박이 생기게 된 것이다.

회사의 모두가 인정할만한 성과를 내어야만 사랑과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무의식적 불안과 확신이 김과장을 김삼삼으로 만든 것이다. 즉 김과장 본인이 스스로 원해서 만든 강박성향이라 할지라도 즐거워서가 아니라 고통과 수치심을 주는 트라우마, 초자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간절한 노력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완벽하지 못하면 사랑받을 수 없다니, 이 얼마나 나약하고 슬픈 일인가.

 

개인적으로 김과장에게 이러한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
 

1. 본인이 지금 집착하고 생각하는 것을 말해본다.

강박성향은 강박사고와 강박행위로 이뤄져 있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김으로써 자신을 괴롭히는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인데, 실제 행동을 하기 전에 말로 해보면 이를 간접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손에 지저분한 것이 묻어서 손을 20번 씻어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손을 씻는다.” “나는 손을 또 씻는다, 20번 씻는다.”라는 내용을 반복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언어로 우리의 생각이 표현될 때 우리는 그것을 미리 경험하고 예상할 수 있다. 

'20번이나 씻는 것은 지나친 거 같은데?'라고 불안에 억눌려 있던 이성이 다시 고개를 들어서 제 역할을 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2. 강박적인 행동을 하고 싶을 때마다 바를 정(正)자를 쓴다.

손을 씻고 싶거나, 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이메일이 제대로 갔는지 확인하고 싶을 때마다, 실제로 행동을 취하지 말고 포스트잇에 선을 하나씩 긋는다. 이렇게 바를 정자를 쓰고 개수를 확인하면 ‘내가 오늘 강박사고에 얼마나 사로잡혀 있었는지’를 수치화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자기 객관성과 인사이트를 획득할 기회를 얻게 된다.
 

3. 인정하고 싶으면 확인이 아니라 배려를 해야 한다.

불안은 또 다른 불안을 낳을 뿐이다, 실제 김과장의 3번씩, 3명이 확인하는 방식으로 영업 1부의 생산성이 증가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누가 봐도 지나친 꼼꼼함은 불만과 평가절하를 낳았다. 답답하고 비효율적인 방식을 고집한다는 이미지가 생긴 것이다. 인정과 존중을 위해서는 물론 성과가 필요하다. 하지만 개인이 아닌 조직의 성과와 효율성 측면에서 강박적인 분위기는 자율성과 생산성을 심각하게 저하시킨다는 것을 꼭 인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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