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전문의로서 약을 처방하는 마음.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어릴 적 직업 적성검사를 하면 항상 첫 번째로 추천받은 직업이 언어학자, 두 번째가 변호사였다. 집안 어른들 앞에서는 장래 희망을 변호사라 말하고 다녔지만 (더 이상 추가 질문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당히 편했다.) 남몰래 가지고 있던 꿈은 고고학자였다. 백과사전의 세계 7대 불가사의 내용을 스무 번은 읽었다. 연한 갈색 반바지와 모험가 모자를 쓰고 피라미드와 정글을 헤치고 다니며, 맨손으로 흙을 쓸어내리고 숨겨진 고대 문물을 발견하고 싶었다.

연애 한번 안 해본 어린 나이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며 사랑을 배우고는 작가를 지망했다. 연습장에 다음에 써먹을 만한 의미 없는 문장들을 수없이 쓰고 지웠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온 믹스견, 깐순이가 삶을 흔들어 놓았다. 강아지가 너무 좋아서 강아지에 둘러 쌓여 살 수 있다면 그저 행복할 것 같았다. 수의사를 꿈꿨는데, 문제는 수의사가 되려면 이과에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과를 가기로 했다. 모자랄 것도 자랑할 것도 없이 스스로 밥벌이는 해야 했던 가정형편상, ‘이과 가야 취직된다’는 모 선생님의 이야기도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객관적인 검사 결과나 주관적인 취향 모두 문과임을 주인에게 끊임없이 피력해왔던 나의 뇌는 물리 문제 앞에서는 작동을 거부했다. 화학, 생물 공부에는 그리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지만 세 종류 이상의 과학 교과 과목을 보는 대학이 많았던 터라 함부로 물리를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친구의 추천으로 인강을 청취하게 되었다. 강사는 흥미를 위해 여러 학문 외적 지식, 야사, 에피소드들을 들려주었다. 뼈다귀 같은 숫자와 그래프로만 가득했던 내 머릿속 물리에 수많은 인문학적 이야기들이 살이 붙기 시작했다. E=MC2을 사서 읽고 운동량 보존을 공부할 땐 공식 대신 갈릴레이의 사고 실험을 떠올렸다. 거짓말처럼 성적이 올랐다. 쉽기로 유명한 사설 모의고사에서도 물리I은 50점 만점에 20점대 였는데, 나름 불수능이었던 실전에서는 하나만 틀렸다. 

 

정신과 약물 이야기를 한다며 왜 뜬금없이 자기 자랑 같기도 한 물리 공부 이야기를 하는 걸까. 불현듯 환자에게 처방하는 약이, 내게 너무나도 큰 도움이 되었던 인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아프면 병원에 온다. 의사는 적절한 진단과 치료로 병을 치유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역시 비슷한 도식으로 간주하는 이들이 많다. 마음이 힘든 것은 마음에 병이 생겼기 때문이고, 그 병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적절한 약으로 치료를 하면 마음의 아픔, 삶의 고민도 사라질 것이란 생각이 그것이다.

그런데 마음의 아픔은 단순히 이러한 도식으로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바로 삶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는 측면이다. 생물학적인 변화, 뇌의 생리적 불균형으로 인해 우울이 유발될 수도 있지만, 버텨내기 힘든 일을 경험할 때도 우울해질 수 있다. 아니, 앞서의 두 가지 경우는 무 자르듯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삶이 지나치게 고되면, 마음의 인식과 뇌의 생리적 작용은 우울을 향하게 된다.
 

사진_픽셀


정신건강의학과적 약물 치료는 뇌 속에서 일어난 신경생리학적 불균형, 생물학적 불균형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조현병, 양극성 장애, 강박 장애 등 뇌 내의 생물학적인 변화가 주요한 병의 원인임이 밝혀진 질환 군에서는 약물 치료가 치료의 주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울, 불안, 공황 등, 흔히 신경증이라 표현하는 질환들은 어떨까. 우울을 예로 들면, 많은 우울한 환자들에게서 우울이 지속될 만한 삶의 패턴이 관찰된다. 즉, 무력감으로 인해 운동, 만남, 직무 같은 내게 행복을 주고 의미가 있는 일들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든지, 삶과 사람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부정적으로 변해간다든지(인지의 왜곡), 일상생활의 소소한 감동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든지 하는 양상이 그것이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기 힘든 것처럼, 이러한 경향이 있어 우울증이 발생한 것인지, 우울증의 결과로 이러한 삶의 방식이 형성된 것인지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명확한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쉽게 우울이나 불안을 만들 수 있는 삶의 패턴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부분을 다루는 것이 내가 원하는 삶, 행복으로 나아가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약물 치료가 효과적인 이유인 동시에, 약물 치료만으로는 충분한 정신건강의학과적 치료가 완성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약물은 뇌의 생리적 불균형을 교정함으로써, 의지나 노력만으로는 쉽게 개선하기 힘든 현재의 증상을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당면한 생물학적인 변화만을 개선하여 우울이 호전되더라도, 쉽게 우울해질 수 있는 삶의 패턴, 생각의 방식, 대인관계의 양상이 지속된다면 원활한 치료의 진행이 어려울 수 있고, 설사 증상이 많이 호전되었더라도 언제든 재발할 소지가 있다. 정신치료, 인지행동치료, 수용전념치료, 마음챙김, 사회기술훈련, 대인관계치료 등 수많은 정신건강의학과적 면담과 개입은 우울, 불안과 같은 증상으로 이어지기 쉬운 삶의 방향을 행복을 향하도록 도움을 준다. 

 

정신건강의학과적 치료는, 단순히 생리적, 심리적 불편함을 개선하는 것을 넘어 근본적으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을 함께 고찰한다. 물리 공부의 예를 빌리자면, 인강의 효과는 영상을 얼마나 오래 틀어두었냐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 아무리 명강의라도 의미가 있으려면 이를 활용하여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가 중요하다. 인강은 약물이고, 공부는 삶이다. 약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약을 먹는 것만큼이나, 먹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아갈지이다.

우리는 우울하지 않기 위해, 불안하지 않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나만의 의미를 추구하기 위해 살아간다. 우울하지 않기 위해 삶을 바꾸자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원하는 삶으로 나아가며 살아가다 보면, 슬픔과도 멀어진다. 제목에 대한 답을 하자면 정신과 약은 물론 마법의 가루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데 꽤 유용한 도구다. 

살고 싶은 삶으로 나아가며 만나는 수많은 허들을 넘을 때 우울, 불안과 같은 마음의 증상은 불편할 수 있다. 정신과 약은 이러한 불편을 줄여주는 마음의 조미료다. 하지만 조미료만으로 완성되는 요리는 없다. 진료실에서 흔히 오고 가는 문답으로 글을 맺을까 한다.
 

‘선생님, 약만 먹으면 마음이 편해지나요?’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되실 거예요. 그런데, 마음이 편해지시면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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