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유은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마음이 힘들다면 몸부터 살피기

성경에 보면, 로뎀나무 밑에서 죽기를 간청했던 엘리야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죽고 싶다는 이야기는 당장 죽어야겠다는 충동이 아니라면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가 없다는 소진 상태를 말한다. 이때 천사가 나타나 가장 먼저 한 일은 그를 어루만지며 일어나서 먹으라는 것이었다.

천사는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하냐고 재촉하거나 좀 더 참고 견디다 보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헛된 희망의 밀을 하지 않았다. 그가 먼저 한 일은 오히려 몸을 어루만지어 신체 감각을 일깨우고 마음이 내키지 않더라도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켜 움직이고 음식을 먹으라는 것이었다. 

 

마음이 힘든 분들은 대부분 이처럼 촛불이 꺼지기 직전의 소진 상태로 내원한다. 그분들에게 어떤 조언이나 분석보다는 몸부터 살펴드려야 한다. 대다수가 생체 리듬이 다 무너진 상태로 잠도 잘못 자고 식사도 불규칙하다. 몸의 소리에 그동안 귀 기울일 틈 없이 자신의 욕구를 무시한 채 살아온 결과다.

이삼십 대 젊고 건강한 몸이라도 해도 쉽게 피곤해하는 저질체력을 많이 본다. 경고의 신호를 무시하고 지내다 보면 몸은 가장 먼저 희생되어 뭘 해도 피곤한 상태가 된다. 이러한 시간들이 누적된 분들에게 “힘든 지 오래되셨는데 그동안 잘 참으셨네요.”라고 한마디 말을 건네면 눈물을 쏟기도 한다.

마음이 힘들다고 몸을 방치하지 마라. 마음이 힘들다면 몸부터 살펴봐주고 내 몸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잠은 잘 자고 있는지, 근육과 관절은 긴장되어 있지 않은지,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워서 참고 버티진 않았는지 살펴보자. 불면증이나 만성피로, 라운드 숄더나 거북목, 치질이나 방광염은 이러한 자신의 몸을 방치하고 욕구를 억누른 결과로 찾아온 만성질환이다. 

몸과 마음을 따로 구분할 수 없듯이 마음은 온몸에 다 있다. 우울증은 그래서 정신 질환이 아니라, 전신 질환이다.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아 병원 가기를 일삼는다면 우울증 검사를 꼭 해보기 바란다. 검사 결과에 이상이 없다면 대부분 심리적인 원인으로 찾아온 신체증상일 확률이 아주 높다. 
 

사진_픽사베이


먼저 몸부터 챙겨라. 체중감량은 이후 따라오는 보너스

비만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로서 지내오면서 이런 질문을 참 많이 받았다. 
“정신과 의사가 비만치료를 왜?”

우리는 기분이 좋아서도 먹고 기분이 나빠서도 먹게 되는데 음식이 마음을 달래주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먹고 나면 항상 후회하는 걸까?

식사문제를 겪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상담하면서 이들의 과식이나 폭식 뒤에 숨은 정서적 문제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다이어트나 식습관 개선을 위해 상담실을 찾았지만, 사실은 정서적인 문제를 다루어주어야 한다. 마음챙김 식사란 그런 거다.

마음챙김식사란 식탐에 충동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 머물면서 지금 내가 배가 고픈 것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해소하고 싶어서 음식을 입에 가져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거다. 

의도적으로 음식의 재료를 음미하고 풍부한 향과 아름다운 색깔의 조화를 음미해본다면 이미 포만감을 가져와서 적은 양을 먹게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정신을 집중하여 현재 먹는 음식을 음미하며 지금 드는 가정과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 그리고 내가 어떤 식사습관을 가지고 있는지 관찰하는 것이 마음챙김 식사의 기본이다.

결국 내가 무엇을 먹는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먹는지는 곧 나를 말한다.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은 엄마가 떠난 후에 엄마가 만들어주었던 추억의 음식을 준비하면서, 주변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같이 어울려 먹으면서 음식을 음미하는 가운데 외로움과 상처를 채워나간다. 외롭고 허전하다면 마음챙김식사를 꼭 권하고 싶다. 

 

세바시 강연에서도 말했지만, 체중을 빼러 온 분들에게 늘 이야기하는 말이다. 먼저 자신과의 사랑에 빠져라. 내 몸을 돌보고 친절을 베풀 때 몸은 더 이상 쾌락물질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고 불필요한 식탐은 사라지게 된다. 다이어트는 그 이후에 오는 보너스인 셈이다.

20여 년간 비만클리닉을 해오면서 느낀 점은 체중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다이어트 방법과 운동이 있어도 자기에게 적당한 체중만 있을 뿐이다.

누구에게나 보이기 좋은 몸을 가지려고 애쓰면서 내 몸을 학대하지 마라. 인스타 포스팅을 위해서, 루프탑 수영장에서 입을 비키니를 위해서, 닭가슴살과 프로틴 쉐이크로 연명하다 보면 뇌는 쾌락물질을 언젠가는 다시 찾게 되고 그 식탐은 의지로 눌러질 수 없다.

폭식증으로 치료를 받으러 온 분들이 의지가 약해서 폭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체중을 자기 마음대로 줄이려고 자기 몸을 학대하다가 온 후유증이 폭식증으로 찾아온다. 다이어트와 폭식으로 체중이 고무줄처럼 왔다 갔다 한다면 자기 몸은 좀 가만히 두고 마음을 스캔해보기 바란다.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마음에 들지 않는 하체를 가리기 위해 평생 치마를 입어본 적 없는 한 여성은 어렸을 때부터 몸 때문에 놀림을 당한 경험이 많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거울 앞에서 나체로 전신을 살펴볼 기회가 있다면 우리 시선은 마음에 안 드는 곳에만 꼭 머문다. 그녀에게도 매력포인트를 찾아보려는 목적으로 다시 거울을 보라고 했다. 단점이라 여겼던 부분들을 이제는 좀 다시 바라봐주라는 이야기이다.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에 편안함을 느껴야 하는데 대부분 자신보다 더 날씬하고 멋있는 모델 같은 모습을 상상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몸이 권력이 되는 순간, 우리 몸과는 친해질 수 없게 된다. 몸은 그 순간 착취의 대상이 되어버리며,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자기 모습에 만족을 하는 법이 없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분들 중에 특히 헬스 트레이너, 런어웨이 모델, 온라인 피팅 모델들이 완벽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아도 늘 부족하다고 여긴다. 

팔은 나에게 민소매를 입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팔은 나에게 많은 일들을 해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자신의 몸을 구박한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사과해야 한다. 잡지에 등장하는 모델들부터 SNS에 등장하는 지인들까지, 사실은 보정사진인데 그 사진 속 모습과 현실의 나를 비교하면서 내 모습을 구박했다면 그것은 불공평한 일이다.

외모 비하는 남자와 여자에게 모두 나타난다. 십 대든지 오십 대든지 마찬가지이다. 내 몸에 장점을 찾아서 어필하고 나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바디 포지티브'이다. 나를 잘 알고 내 몸과 마음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만 그것이 가능해진다. 볼수록 매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외모 지상주의보다 더 중요하다. 독특한 매력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끝없는 상상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그의 외모뿐 아니라, 내면세계, 그리고 가치관, 삶의 방식까지 궁금하게 만든다. 

 

늙어감의 기술

자신이 너무 나이 든 것 같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이 몇 살일 것 같은가? “저 너무 늙은 것 같아요.”라고 말했던 20살.

항노화를 전공하는 의사들은 나이 20세부터 우리 몸에 노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고 이야기한다. 본인이 나이 들었다고 말하는 20살 여대생의 말이 의학적으로 맞는 말인 셈이다. 그렇다면 늙음은 죄가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유를 얻게 되고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게 된다. 늙은 몸은 버려야 하는 몸이 아니라, 과거 성취를 이루어냈던 성공의 몸뿐 아니라, 존재 자체가 아트가 되는 성숙의 몸이기도 하다. 인생은 50부터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탱탱한 덜 익은 땡감보다는 터질 듯이 익어버린 홍시가 그 맛을 더하는 것처럼. 성숙한 사람들에게는 와인이 주는 듯한 향기와 깊은 고유의 맛과 색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우울해지는 3040 여성들을 상담하다 보면, 나이 어린 여성의 풋풋함에 기가 죽는다고 한다. 나이에 맞는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살아간다. 주변에서 던지는 왜곡된 미적 기준으로 자신의 몸을 억압하는 셈이다. 남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남자 환자분들이 얼마나 흰머리와 탈모, 그리고 점점 나오는 배 때문에 우울해하는지 모른다.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 몸에 갇혀버려서 주어진 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늙은 몸은 버려야만 하는 대상이 된다. 남과 비교하는 문화 속에서 우리는 일종의 소속감과 우월감을 얻기 위해 몸을 치장한다. 상담한 시간과 노력, 그리고 비용을 지불하지만, 결국 있는 그대로의 내 몸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가장 자연스러운 내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법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내 나이보다 한 3-5살 어려 보인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사는 게 가장 행복한 것 같다. 내가 나 스스로를 나이보다 건강하고 어려 보인다고 여기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나를 그렇게 보지 않을 것이다. 나이가 주는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스스로에게 쏘는 비난과 부정의 화살을 멈추어라. 고통은 타인에게 맞는 첫 번째 화살로도 충분하다. 

 

유은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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