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회사에서 일하던 동료 두 명이 죽었습니다. 한 명은 얼굴만 아는 정도였고 다른 한 명은 회식자리에서 계속 만났던 그런 사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그렇게 죽었는데 아무런 기분이 안 듭니다. 슬프다던가 그런 게 전혀 없습니다. 그냥 원래대로 평범하게 일상을 지내고 있습니다. 죄책감도 안 들고요.

회사는 초상 분위기인데 저는 너무 불편합니다. 그러다가도 그렇게 느끼는 저 자신한테 짜증이 나고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한 명은 그냥 안면만 있어서 그러려니 해도, 개인적으로 같이 술까지 마셨던 사람의 죽음조차 저한텐 그냥 '아, 그래? 죽었어? 안됐네'라고 말은 해도 마음속에서는 안 됐단 마음 하나도 들지 않습니다. 불쌍하다거나 슬프다거나, 그 가족에 대한 동정심 하나 들지 않습니다. 저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전형진입니다.

우선 사연을 주신 분이 생각하는 ‘공감’이란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회사 동료가 잘못된 일을 겪어서 표면적으로는 ‘슬픈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침울한 분위기에 있다고 해서 그들 모두가 가족처럼 슬퍼한다고 말할 수는 없죠.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데, 사연 주신 분은 ‘공감’에 대해 어떤 개념을 가지고 있기에 이렇게 사연을 쓰셨을까 했어요.

만약 평소에 장례식장에서 혼자 웃고 다니거나 유튜브라도 틀어놓는 등의 행동을 하고 다녔다면 기본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 정도로 공감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진 않아요. 반대로 회사 동료가 죽었는데 가족이 죽은 것처럼 일상생활이 안 될 정도로 슬퍼해야 한다는 당위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사연 주신 분은 이 상황이 누군가 죽어서 슬프다는 것은 인지를 하지만 어디까지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스스로 확신하는 선이 명확하지 않아 보입니다.

 

아마 공감과 동정을 혼동해서 그러시지 않을까 추측해보는데요. 동정이라는 것은 ‘안됐다, 상황이 안 좋구나’ 정도의 감정이지만 공감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말해요. 현실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매 순간마다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하면서 생활하기는 어려울 수 있어요. 공감은 적극적인 감정의 이입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일정 거리가 있고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기가 어려워요.

또 다른 측면이 추측해본다면 자기애 성향이 있을 가능성도 있어요. 자기애가 클수록 다른 사람에게 공감을 할 여력이 희미하다고 봐요. 예를 들어 ‘자기애성 성격장애’라고 한다면 자신 이외에 타인에게 공감할 능력이 결여돼 있어요.

그리고 다른 가능성을 예측해본다면 공감능력이 애초에 결여돼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아스퍼거 증후군이라고 하면 자폐에 일종인데 공감능력, 자폐특성은 있지만 지능, 언어에 문제가 없기 때문에 일상생활은 할 수 있긴 해요.

 

회식자리에 여러 번 오가고 술자리도 개인적으로 만들 정도면 사회생활을 짧게 하신 분 같지는 않아요. 공감이 중요한 척도가 되는 것은 일정 공감능력이 결여돼 있다면 분명 사회생활의 한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에요. 공감이라는 것은 상대방에서 입장을 생각하는 대인관계의 능력이에요. 예를 들면 화가 난다는 것은 내 기준으로 생각해서 상대를 판단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이해되기 때문에 화 날 것이 덜하게 되죠.

공감능력이 없다면 문제의식도 느끼지 않아요. 이 문제의식의 출발은 본인에게 시작이 되겠죠. 그래서 직접 여쭤보고 싶어요. “얼마나 슬픔을 느껴야 적당할까요?”라고요. 사회적 기준이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절대적으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힘들어지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질문을 반대로 할 필요가 있어요. ‘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해서 내가 불편한 것이 무엇인가’라고요.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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