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지난 14일 국립정신건강센터는 ‘2019년 국민 정신건강지식 및 태도 조사 결과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수일간 지속되는 우울감, 생활에 불편을 줄 정도의 기분변화, 자제할 수 없는 분노 표출 등의 정서적인 문제부터 알코올, 약물, 도박, 게임과 같은 중독과 관련한 문제들까지 13개 유형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지난 1년을 기준으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사람이 37.6%로 가장 많았습니다. 수일간 지속되는 우울감은 30.3%, 생활에 불편을 줄 정도의 기분변화는 30.2%의 사람들이 경험했습니다. 수일간 지속되는 불안은 27.9%, 수일간 지속되는 불면은 24.9%, 건망증으로 인한 일상생활의 장애는 22.5%가 겪었습니다.

 

현대인에게 정신적 고통이 많은 것은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적절히 대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조사에서 정신건강문제를 가지고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 문제를 상담한 경우는 가족, 친구까지 포함해도 겨우 22.0%였습니다. 5명 중 1명만이 도움을 구하는 시도를 한 것입니다. 심지어 문제를 알게 된 후에도 6개월 내에 치료를 받은 사람은 46.7%로 절반도 안됐습니다.

이 조사의 결과들을 종합하면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힘들 때 상담을 받고 싶어 하지만, 정작 그 상황에 처해서는 어디서 도움을 받을지 모르고, 그 도움이 별로 효과가 없거나 나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것 같습니다. 도움을 받아 쉽게 극복하고, 그 과정에서 더 건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와 닿지 않다 보니 도움의 효과를 기대하지 못하고, 스스로 극복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과기원의 똑똑한 학생들도 정신건강에 대한 지식은 보통사람과 비슷합니다. 언제 도움이 필요한지 판단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심리상담으로 충분할지, 약물치료까지 필요할지 결정하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슬픔이라는 것은 잘 알지만, 이것이 치료를 필요한 수준인지, 어떤 치료가 필요할지 스스로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혼자 고민하며 아픈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전문가와 상의를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암 유전자 연구자라도 암의 검사와 치료는 임상 전문가에게 맡길 것입니다. 또 이제는 모두가 암의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정신건강의 문제도 조기에 치료를 받아야 힘든 시간도 짧아지고 치료 결과도 좋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그럼 언제 정신건강 전문가를 만나야 할까요?

앞의 설문에 나온 질문들이 힌트가 됩니다. ‘수일간 지속되는’, ‘생활에 불편을 줄 정도의’, ‘자제할 수 없는’과 같은 설명들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학교나 직장에서 일을 하는 것에 영향을 주거나(일과 학교), 친구들을 만나고 여가생활을 할 때 문제가 되거나(사회생활), 집에서 홀로 혹은 가족과 지내기 어려워지면(가정생활 및 가사 일) 도움이 필요한 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변화로 평소에 하던 일을 해내지 못하거나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느끼면 이때가 바로 도움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런 기준으로 주위의 사람들을 챙길 수도 있습니다. 평소보다 힘들어할 때 혹시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면 좋습니다.

독감에 걸렸거나 다리를 다쳐서 그렇다면 정신건강의 문제가 주범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유 없이 기운이 떨어지고, 통증이 느껴지고, 감각이 이상해지는 경우에도 정신건강문제일 수 있습니다. 과거에 신경성, 심인성이라고 불렸던 것들일 수도 있고, 신체질환에 동반된 정신과적 증상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문제의 여러 원인을 찾다가 신체질환을 정확히 찾아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면 몸이 안 좋아서 동네 의원을 갔다가 큰 병원에 의뢰되는 것처럼 정신건강문제는 어디서 시작하면 좋을까요?

학교에는 대개 학생상담실이 있습니다. 복지가 좋은 직장에도 상담실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관마다 상담사에 대한 처우가 다르니 상담의 수준은 천차만별이겠지만 무료고 가까우니 가볍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다만 체계가 잘 잡힌 대학상담실은 수요가 많다 보니 대기가 수개월에서 반년에 이르기도 합니다. 상담 중에 의학적 치료를 권유받아 정신과를 방문하기도 합니다. 상담 경력이 쌓인 상담사는 이 부분을 더 잘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나의 상담이 진전이 없다면 의학적 치료를 함께 하는 것이 좋을지 상담사와 논의를 해봐도 좋을 것입니다. 유니스트는 이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상담심리사뿐 아니라 임상심리사와 정신과의사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합니다. 혹시 의학적 도움이 필요할지 바로 옆에서 상의하고 도움을 받도록 하는 것이죠. 

학교나 직장의 상담실에 기록이 남는 것이 싫다면(물론 정보 보호의 윤리가 강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동네 정신과의원을 방문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부모님이나 본인이 낸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있어 저렴하게 의학적 지식을 포함한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2018년에 건강보험 지원이 늘어 50분짜리 상담의 경우도 동네 의원이라면 저렴하게 만원이 조금 넘는 비용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환자가 많은 시간에는 긴 상담이 어려울 테니 전화로 문의하거나 예약제로 운영되는 곳을 찾아도 됩니다. 자신을 돌봐줄 사람에게 자세히 묻는 것이 불편하다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의원에서 전화로 응대해주는 분은 내 주치의가 아닌 간호사님이고, 이런 질문에 익숙하기 때문에 친절하게 알려주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걱정하는 부분은 취업과 사보험입니다. 자신이 청와대 경호원이나 국정원 요원 같은 특수 직업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개인의 의료기록을 요구하지 못합니다. 대기업, 국가연구소, 대학교수와 같이 과기원 학생들이 주로 진출하는 분야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정신건강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해서 일을 못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치료를 받은 기록 때문에 직장에서 차별을 받지 않습니다. 

사보험 가입의 경우 정신과 질병코드(F코드)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미 가입된 보험의 경우는 상관이 없고 새로 보험에 들 경우 문제가 됩니다. 국가 건강보험으로 진료를 받은 경우 F코드가 남게 됩니다. 다행히 약물치료가 필요 없는 상담의 경우 F코드가 아닌 상담용 Z코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F코드가 있다는 이유로 보험 가입을 거절할 수 없기에 감독기관에 진정을 할 수도 있지만 보통은 복잡한 상황을 피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험 가입 시 의료기록 조회는 최대 5년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도 있습니다. 새로 보험에 가입할 시기가 한참 뒤라면 충분히 5년이 지나게 됩니다. 20대 초반의 경우 시간이 한참 흘러 결혼 후에 보험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치료 종료 후 5년이 지나게 되니 머리가 복잡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울증, 조울증, 조현병, 강박증, 공황장애... 정신질환은 너무나 다양해서 타과 의사도 잘 모릅니다. 내 생활에 지장을 주는 문제가 있는데 다리를 다친 것과 같은 명확한 신체의 문제가 아니라면, 혹은 신체질환이 있더라도 이와 관련된 불안과 걱정에 휩싸이거나, 의욕과 재미가 감소하거나, 집중하고 기억하지 못하거나, 사람들과 예전처럼 어울리지 못하거나, 수면 패턴이나 입맛 등 신체 에너지 유지에 문제가 있다면 더 나은 삶을 위해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추천합니다. 혹시 주위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적기에 도움을 받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 사람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정두영 UNIST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교수(헬스케어센터장)

필자는 과기원을 졸업한 정신과의사로서 학생들의 정신적 어려움을 공감하고, 진료와 더불어 인간을 직접 돕는 새로운 기술들을 정신의학에 적용하고자 인간공학과에서 연구합니다.
 

<본 칼럼의 일부는 2020년 12월 16일 경상일보 ‘[정두영의 마음건강(1)]너무 늦지 않게 정신건강 전문가를 만나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저서 <마음은 단단하게 인생은 유연하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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