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사연) 

안녕하세요. 이십 대 후반 직장인입니다. 애정관계 속에서도 안정되고 행복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첫 연애 전까지는 하루가 즐거운 일로 가득 차 있었고 즐길 거리가 없으면 휴식을 취하며 행복했어요. 저희 부모님도 제가 늘 즐거운 아이였다고 말씀하시고요.

 

그러다가 첫 남자 친구를 사귀게 되고 그 친구에게 집착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모든 일상을 공유하길 원했고, 남자 친구가 부모님이나 친구들이라도 만나러 가면 화를 냈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가 다른 사람과 약속을 잡는 걸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선택했다.'라고 받아들이며 배신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방학이 되어 볼 수 있는 날이 줄어들고 그 친구를 못 보는 날에는 바닥에 누워 엉엉 울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게 무색하게 시간이 흐르니 마음도 식어 제가 이별을 통보했고, 그 이후로는 공백 기간 없이 줄곧 연애를 했습니다.

첫 연애 이후로 남자 친구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려 들거나, 모든 순간을 함께 하려 하는 게 연인으로서 좋은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소위 '쿨한 척'을 하며 연애를 해왔어요. 하지만 아직도 남자 친구의 이성친구는 물론 동성친구도 싫고 남자 친구의 가족들마저 싫습니다. 남자 친구 주변의 모든 사람이 애정을 뺏어가는 존재들로 느껴져서요. 

남자 친구의 애정 한 조각에 목을 매는 제 모습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서 일부러 남자 친구라는 개념은 내 인생에서 큰 의미가 없는 척을 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가식일 뿐 속으로는 언제나 공허하고 외로워요.

전 남자 친구가 이별을 통보한 후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어요.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벗어날 수가 없더라고요. 정신과도 다녀보고 상담 치료도 반년 정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큰 변화는 느끼기 어려웠어요.

 

그러던 중 이렇게 타인에게 내 행복을 맡겨놓고 괴로워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2년 전 마지막 연애를 끝내고 나 자신과 잘 지내는 기간을 가져보려 노력했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일기를 쓰고, 명상을 하는 등 스스로를 살펴보고 소중히 대하며 약 1년 동안 여유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제가 그토록 안정적이고 긍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스스로가 안정적이니 이제는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과 함께 작년부터 자연스럽게 교제를 시작했어요. 새로 만난 남자 친구는 저를 보고 '긍정적이고 건강한 사람이라 닮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연애를 시작하고 두어 달 후부터 예전 모습이 다시 나타나고 있어요. 남자 친구의 한마디에 불안해하고 우울해하며 혼자 시간 보내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게 될까 봐 애를 쓰며 일부러 남자 친구를 적게 보려고 하고, 혼자 여행하거나 학원에 다니면서 스스로를 바쁘게 만들고 있어요.

하지만 전혀 소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여행을 가서도 피곤할 뿐이고 배우는 건 짐처럼 느껴져서 점점 부담스러워요. 이런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남자 친구에게는 일부러 더 무심한 척을 하고, 그 친구는 제가 자신에게 선을 긋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하네요.

 

저는 혼자 있는 시간보다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 더 에너지를 얻는 편이에요. 하지만 다소 낯을 가리고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을 잘 하지 않는 편이라 연애는 저의 주요한 에너지원입니다. 관계 속에서도 편안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지낼 방법은 없을까요?

저를 불안하고 우울하게 만드는 게 연애인 것 같아요. 연인에게 감정적으로 너무 의지하지 않고 싶어요. 마인드 컨트롤을 하려 노력하고, 스스로에게 규칙을 만드는 식으로 감정적 의존을 다스려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럴수록 점점 제가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고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도 들어요. 도움 부탁드립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의학신문 정희주입니다. 

연애를 할 때면 ‘상대방이 나를 버릴 거야’, ‘금방 떠나갈지 몰라’하며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운 느낌을 받으시는 것이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자살시도도 있었고, 정신과 치료를 받으셨다는 것에서 미루어 볼 때 일반적인 사람들이 느끼는 이별에 대한 불안이나 고통보다 더 크게 그러한 감정들을 경험하고 느끼고 있으십니다. 

 

우리 마음에는 '대상 항상성'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상대방이 눈앞에 없어도, 혹은 잠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도 안정적으로 상대방이 나를 지지하고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 대상 항상성의 개념이 약하면 글쓴이분처럼 상대방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실망을 하고 나에게서 애정을 거둘 것이라는 생각에 극심한 불안감을 겪기도 합니다. 아마도 글쓴이분께서 연애를 하면서 겪는 어려움의 상당수는 대상 항상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상 항상성은 어린 시절 부모와의 애착관계에서 처음 형성됩니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애착을 경험하게 되면, 부모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아이의 내면에 형성되면서 지나친 의심, 불안, 두려움 없이 부모와 안정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부모와의 관계는 하나의 틀로 작용하면서 이후 타인과 인간관계를 맺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현재의 이별은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이별을 떠오르게 합니다. 당시의 경험이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나를 떠날 것 같이 느껴질 때 극심한 불안과 고통을 다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글쓴이분이 쓰신 글로 미루어 볼 때 현재의 연애관계에서의 문제점과 해결책들을 나름대로 생각하고 적용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와 동시에 과거에 내가 어떤 이별을 경험했는지, 처음으로 현재와 같은 강렬한 불안과 슬픔을 느낀 적이 언제였는지를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되짚어보고 현재의 내가 과거의 상처 입은 나를 보듬어 줄 수 있을 때 조금씩 변화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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