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선임이 신입 여직원에게 일을 가르쳐준다는 핑계로 개인적인 만남을 요구하거나 늦은 시간 사적인 카톡을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중하게 불편감을 표시하거나 남자 친구가 있다고 명확히 거절해도 계속 호감을 표시하기도 합니다. 법의 기준에 걸릴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언어적인, 혹은 시선으로 성희롱을 하는 경우, 딱 고발당하기 직전에서 멈춥니다. 정색하고 화내면 ‘예민한 신입’ ‘사회생활 못하는 직원’이 돼버립니다.

허울뿐인 성희롱 담당부서에 도움을 요청해봤자 “웬만하면 그냥 좋게 좋게 넘어가지.”라거나 자체 징계나 주의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예 이런 부서조차 없는 회사가 너무 많습니다. 사실 민감할 수 있는 주제를 언급하는 이유는 이러한 사례가 유감스럽지만 너무나,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자 상사가 남자 직원을 상대로 성희롱하는 경우도 있지만 현재까진 소수입니다.)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교육이나 강연을 여러 차례 했었는데 질문으로 꼭 나오는 것이 있습니다.

“농담으로 한 말인데 상대방이 너무 민감하게 구는 상황엔 어떡하나요?”

농담이 당신의 아내나 여자 친구, 여동생, 엄마가 들어도 되는 말이라면 농담이고 아니면 성희롱입니다. 

몇몇 사람들은 직장 내 성희롱을 젠더이슈로 치부하고 매도하여 흐지부지시키려 합니다. 단호하게 말하지만 직장 내 성희롱은 젠더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입니다. 당신이 너무나 사랑하는 딸, 첫사랑, 아내도 직장을 다닙니다. 그들이 얼마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세요.

 

직장 내 성희롱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특히 심각성을 띱니다.

1. 위계의 의한 갑질, 강제성의 성격을 띤다.
2. 가해자를 매일 그것도 오랜 시간 마주하고 대화해야 한다.
3. 재발과 악화 가능성이 무척 높다.
 

직장을 옮기면 해결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은 청년지원금, 실업급여, 취업난에 대해 정말 하나도 관심 없는 것을 인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기업에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 대학병원, 대기업, 외국계 은행, 심지어 검찰에서도 있었습니다. 성희롱하는 상사나 동료를 피해서 옮긴 새 직장에 똑같은 사람이 없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최소 1년을 버틸 수밖에 없는 경우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성희롱은 불안장애, 공황장애,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을 다양하게 유발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하루 8시간 동안 앉아서 버틸 직장이란 공간을 숨쉬기조차 어려운 동굴로 늪으로, 또 지옥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직장에서의 능률과 효율, 일에 대한 동기를 한없이 저하시킵니다.

얼굴 평가, 몸매 평가, 시선 추행. 직장에 출근하는 많은 여성들이 매일같이 마주하고 감당해야 하는 불쾌함입니다. 인사랍시고 던지는 “얼~ 김대리 오늘 예쁜데? 남자 친구 만나나?” “김대리 다리 이쁜 거 처음 알았네, 치마 좀 자주 입고 다녀.”라는 말이 성추행이란 것을 언제쯤 인지하고 수용하게 될까요.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두가 이 단어의 뜻은 대충 알고 있지만, 유독 어떤 사람들은 자신에게 불필요한 과목인 양 배울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들이 세상에서 최고인지 아는 엄마로부터, 혹은 대학교 단톡방의 허세 가득한 남자 선배들에게서 성인지 감수성을 배우고 학습합니다. 복학생들은 신입생을 외모 순으로 평가하고 어린 후배와 사귈수록 위너라며 치켜세웁니다. 원나잇 횟수, 사귄 여자들의 숫자가 자랑이며 주OO나 정OO 사건들을 보며 남자면 저럴 수도 있지, 부럽다며 키득댑니다.

이런 사람들이 존재하는 동안은 직장 내 성희롱은 아마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은 10대, 20대부터 차곡차곡 지식을 쌓으며 성희롱 유망주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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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는 직장 내 성희롱으로부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1. 적극적인 신고와 고발.

성희롱이 이뤄진 바로 그 순간, 즉시 사내 성희롱 담당 부서나 노동청에 신고해야 합니다. 사내에서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을 시 → 노동청 신고 → 가해자 민, 형사 고발의 과정을 진행해야 합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고민하는 게 ‘문제를 너무 크게 만드는 건 아닐까’ ‘인사 고과에 악영향이나 불리함을 주지 않을까’ 하며 주저합니다. 하지만 2020년 지금 이 시점에 성희롱 가해자를 감싸고 피해자에게 페널티를 주는 마인드가 루틴인 회사라면 이 회사의 미래는 매우 부정적인 것이며 남아있어 봤자 내 능력과 헌신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해줄 리 만무합니다. 따라서 그런 고민은 절대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2. 증거 수집은 미리미리 하자. 

예고 없이 나오는 성희롱에 대한 녹취는 실질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평소에 나눈 카톡, 이메일만 해도 좋은 증거가 됩니다. 또한 가해자로부터 야간에 전화가 걸려올 때는 항상 녹음기능을 켜고 받아야 합니다. 성희롱이라 의심되는 말이 나왔을 때, 타인과 같이 있을 때는 이렇게 합니다.

“A 부장님 요새는 그렇게 말씀하시면 성희롱에 해당되는 거 아세요? B 대리님 생각은 어떠세요? 제가 녹음 어플을 켜도 괜찮을까요?”

둘만 있는 상황, 특히 회식 후 술에 취한 경우가 위험하고 곤란한 순간인데(이런 상황은 당연히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도 "녹음 어플을 켜도 되겠습니까?" 하고 대처하면 대부분은 투덜대거나 정색할 겁니다. 

성희롱 발언을 지속하거나, 욕설, 전화기를 빼앗으려 하는 등 폭력으로까지 이어진다면 112 혹은 119로 신고합니다. (119가 훨씬 빨리 도착합니다. 112의 경우 상황이 어떤지, 아주 번거롭고 꼬치꼬치 묻지만, 119의 경우 '여기 사람이 다쳤다, 도와주세요, 휴대폰 GPS 위치 확인에 동의합니다'라고만 하면 됩니다.)

또한 비상 신고 어플을 통해 원클릭이나 음성인식만을 통해 신고가 구조요청이 가능하도록 미리 준비해둘 필요도 있습니다. 
 

3. 선처나 타협은 재발을 부를 뿐이다.

많은 이들이 피해를 본 이후에도 흐지부지 넘어가는 이유가 많은 이유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거나, 회사 생활에서 눈에 보이지 않은 피해나 불이익을 두려워해서입니다.

하지만 가해자들에게 관용과 이해를 보일 경우, 반드시 재발이 뒤따릅니다. 이들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강력한 처벌뿐입니다. 성희롱은 이래도 어찌어찌 그냥 넘어가지는구나 하는 경험을 하면 조건화학습을 통해 반복, 강화됩니다. 피해를 보고도 함구하는 묵시적 합의가 일반화되면 가해자들은 더욱 활개를 칩니다. 
 

4.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대처가 아니라, 가해자의 근절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성희롱을 하면서도 인정하지 않거나 인지조차 못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성희롱에 대한 강력한 대처와 예방이 오히려 직장동료 간의 긴장을 야기하고, 가벼운 대화도 불편해지고 의사소통도 비효율적이 되기에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고.

그들이 생각하는 편하고 친근한 농담이 그들의 딸에게도 할 수 있는 말인지, 누군가 자신의 아내에게 해도 괜찮은 말인지 꼭 생각해보세요.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신촌세브란스병원 전공의
전) 서울대병원 본원 임상강사, 삼성전자 부속의원 정신과 전문의
현) 신촌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외래교수, 연세대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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