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정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춘기라 그러려니 하고 넘기려고 했는데, 갈수록 심해지니 정말 힘들어요. 이러려고 고생해서 키웠나 눈물만 나요.” 

사랑하는 아이의 사춘기를 겪어나가는 부모의 걱정과 아우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엄마를 잘 따르고 순종적이었던 아이들이 갑자기 싸늘한 태도로 변하는 당혹감이란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다들 다 노는데 왜 나만 빨리 들어와야 해요?”
“친구들은 폰을 마음대로 쓰는데 왜 우리 집만 제한을 하나요?”
“그 학원은 안 갈래요. 저한테 도움이 안 된다고요.”
“나도 내 맘대로 할 권리가 있어요.”
“왜 욕하면 안 되나요?”
“낳았으면 당연히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속사포같이 쏟아지는 아이의 요구에 놀란 부모들은 설득해보려 하지만 결국 말다툼 끝에 감정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너 그 행동이 뭐야? 어디서 부모한테 눈을 흘기고 대드는 거야? 내가 그렇게 가르쳤니?”

이렇게 옥신각신하다 보면 애초 갈등의 쟁점이 되었던 내용 자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대화는 단절되게 마련이다. 서로에게 실망한 부모와 아이 사이의 틈은 점점 벌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아이들의 요구는 끈질기고 점점 거세지며, 부모들도 쉽게 양보를 하지 않는다. 화목하던 가정에는 냉랭한 기운이 맴돌고, 부모는 변해버린 아이를 원망하며 분노하고 있는 사이, 지독한 '사춘기'라는 한랭전선이 가정을 접수해버린다. 그야말로 매일이 살얼음판이다.

 

진료하다 보면 이런 힘든 가운데 내원한 부모-자녀를 종종 만나게 된다. 

“우리 엄마 아빠는 너무 제멋대로예요. 제 얘기를 하나도 들어주지 않아요. 본인들만 옳은 줄 알아요. 집에 오면 말하기 싫어서 그냥 방으로 들어가서 안 나와요. 빨리 커서 독립해버리고 싶어요.” 

아이의 말은 '하고 싶은 것도 많아졌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졌고, 몸도 부쩍 자라고 있는데, 초등학생 때 하던 틀에서만 나를 보는 부모가 답답하고, 좀 풀어줬으면. 내 인생도 이제는 내 마음대로 좀 해보고 싶고, 친구들과도 좀 실컷 놀고 싶은데, 자꾸 이래라저래라 하는 부모님이 힘들게 느껴진다, 나를 못 믿고 볼 때마다 눈 흘기고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수시로 참견을 하려는 부모님이 밉다'는 것이다.

부모 또한 답답한 건 마찬가지다. 

“방에 들어가서는 나오지도 않아요. 도대체 뭘 하는지 문을 걸어 잠그고 들어가지도 못하게 해요. 어쩌다 말하는 건 자기 필요할 때만이에요. 너무 당당하게 요구하는 모습에 배신감도 느껴요. 우리를 부모로 생각이나 하는 건지.” 
 

사진_픽사베이


누구의 잘못일까? 단연코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상황이 달라졌을 뿐이다. 부모, 자녀 모두 달라진 것에 적응하기 어려워 겪는 현상일 뿐이다. 그러나 그냥 두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이때 부모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이 지독한 사춘기를 끝낼 열쇠를 든 것이 아이가 아니라 바로 '부모님'이라는 얘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부모가 사춘기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어떤 프레임으로 바라보는지에 따라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법이다. 

 

​사춘기를 “분갈이”를 해줘야 할 시기로 생각해보자. 

부모라는 화분 속에 아이라는 씨를 뿌렸고, 정성 들여 키운 덕에 무럭무럭 자라 이제는 화분이 비좁아진 것이다. 

“분갈이해주세요! 더 쑥 크고 싶어요.” 라고 화초가 외치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무슨 요구가 그리 많아? 잔말 말고 거기 그냥 있어!” 라고 할 것인가? 

분갈이를 해주지 않으면 아무리 정성을 쏟아도 더 이상 크지 않고 결국에는 양분이 모자라 죽어버릴 것이다. 

오히려 “그래. 비좁은 화분에서 얼마나 힘들었니? 벌써 이렇게 크다니 자랑스럽다. 앞으로도 잘 커 주렴.” 격려하면서 분갈이를 잘해주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분갈이를 해 준다는 것은 아이에게 부여한 틀, 규칙 등을 유연하게 바꾸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또, 아이와의 관계가 "연인과의 관계"라고 생각해보자. 

연애를 처음 시작할 때는 상대의 좋은 점만 보고 이상화하는 시기가 있다. 대개 초기 3개월 정도가 여기에 해당하며, 이때는 누가 뭐래도 눈에 쓰인 콩깍지 때문에 무조건 상대를 좋아한다. 그러나 이 시기가 지나면 어느덧 상대의 단점이 보이고, 내 주장이 커지고 상대가 ‘나’에 맞추기를 원하여 갈등이 슬슬 생긴다.

아이와의 관계도 똑같다. 사춘기 전까지는 부모님을 이상화하며, 순종적으로 지내려고 노력하지만, 사춘기가 되면 부모님의 단점이 보이고, 나를 구속하는 것 같아 답답하게 느껴진다. 연인들이 서로의 불만을 경청하고 절충안을 찾으면서 극복해 가듯이 사춘기도 똑같다. 이때 적절한 밀당(밀고 당기기), 상대에 대한 예의와 소통, 노력은 당연히 필요하다. 

연애라면 기꺼이 수용할 밀당, 설득, 적절한 이벤트를 동반한 회유 등등을 우리의 아이에게는 얼마나 해왔는지? 나에게 맞추라고, 내가 옳다고 강요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자.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