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클립 한 개를 가지고 물물교환을 거듭해 정확히 1년 만에 캐나다 키플링에서 자가 소유의 집을 마련한 청년이 있습니다. 2005년 25세 청년 카일 맥도널드(Kyle MacDonald)는 ‘비거 앤드 베터(Bigger & Better)’라는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말 그대로 더 크고 더 좋은 것으로 바꾸기 놀이를 계획한 것인데, 당시 그는 이력서를 돌리고 있는 무직생활을 1년 간 이어나가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을 조금 더 설명하자면 카일은 물물교환을 거듭해 클립을 캠핑 스토브, 여행 티켓 등을 거쳐 12번째 거래에서 앨리스 쿠퍼(미국의 쇼크 록 싱어송라이터)와의 미팅을 ‘스노 글로브’와 교환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전 물건에 비해 터무니없는 거래라고 말했지만 이 스노 글로브는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 미국의 전설적 록그룹 키스가 소장했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스노 글로브였습니다. 때마침 영화배우 코빈 번슨이 취미로 스노 글로브를 수집하고 있던 차 그에게 영화 출연을 조건으로 거래를 제안했고, 그 길로 카일은 주택 마련에 결정적인 터닝 포인트의 기회를 잡습니다.

카일은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룬 인물이기도 하지만 ‘만약’의 힘이 얼마나 큰지 스스로 증명한 증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카일은 본인이 가진 클립 하나에 주목하고 본인이 가진 사교성과 인터넷 활용능력을 이용해 자신의 계획을 널리 알리고 프로젝트에 사람들을 참여하게 합니다. 카일이 스스로 ‘무능력한 실업자’나 ‘클립 한 개 가진 가난뱅이’라고 평가했다면 과연 이 기발한 착상이 현실로 일어났을지 생각해봅니다. 또 반대로 한 때 청년백수였던 카일이 2020년 한국에서 취업에 고군분투하고 있었다면 경제난에 맞물린 일자리 문제에서 홀로 생존해내기 위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시도했을지 모릅니다.

 

‘혼밥족’이 늘어간다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1인가구가 늘어가고 공동체 와해 현상이 일어난 배경에는 만혼과 비혼 등 사회적 요인도 있지만 분명 경제성장의 저조함은 많은 취준생을 양산하고 사람들의 지갑을 얇아진 만큼 남들에게 나누는 여유를 메마르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2019년 12월 서울시에서는 ‘은둔형 외톨이를 위한 선도적으로 지원하는 마스터플랜을 만들어 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은둔형 외톨이가 한국에서 사회적 문제로 두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가 발족되면서부터 본격화됐습니다. 사회와 고립돼 외부활동을 하지 않는 자녀를 둔 국민은 현재 30~40만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사진_픽셀


사회분위기가 우울하다 보니 사람들과 눈도 마주치기 어렵고 같이 지내는 것이 어려운 사회불안은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사회불안의 경우 타인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경험이 적어지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할 것이다’, ‘나를 좋지 않게 볼 것이다’라는 식의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이어질 거라는 생각이 대신 자리 잡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경우 자신의 성격 문제가 아닐지 고민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회불안은 오래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나중에는 성격, 성향처럼 만성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런 만성적인 증상을 ‘회피성 성격장애’라 합니다.

스스로 ‘사회 부적응자’, ‘실패자’라는 식의 꼬리표를 붙이고 현실에서 도피하려고 한다면 자신이 가진 장점들, 가능성도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사람은 다면적인 존재고, 장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부분으로만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만약 가진 것이 없고, 손 잡아줄 사람도 없다는 이유로 자신을 습관적으로 비하하고 있다면, ‘내가 정말 쓸모없는 사람이구나’란 생각과 ‘내가 스스로 쓸모없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이 두 생각을 비교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하찮고 부족한 사람으로 보는 시각은 학습된 겁니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낮게 보는 시각을 성장 과정의 여러 환경에서 배우게 된 결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재 사회불안이 너무 극심하다면 약물치료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도움이 된다면 일시적으로 약물의 힘으로 헤쳐 나가는 것은 권하고 싶습니다. 도움을 받을 부분에 대해 적절한 외부의 개입을 선택하는 것은 이미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입니다. 스트레스가 과중한 상황이고, 우울감이 심하면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에 고립감은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필자는 고립감에서 나오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종종 질문을 받습니다. 고립된 상황에서 나오려면 일단 자신의 강점을 파악해야 합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무기가 있다면 환경을 극복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뭘 잘하는지는 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는 겁니다. 직접 부딪쳐봐야 ‘내가 이런 강점이 있구나’ , ‘내가 해냈구나’라는 성취감이 자존감으로 돌아옵니다.

오랜 좌절을 경험하셨다면 이런 과정이 쉽지는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껏 해 왔던 실패 뒤에 작은 성공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청년 카일이 클립 하나로 목표를 이루기까지 14번의 교환 과정을 거쳤다는 것은 성공을 이루려면 단계별로 밟아나가야 하는 작은 성공들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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