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외국에서 오랜 시간 동안 음악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학업 중간에 우울증이 심해져 현지에서 병원을 다니며 1년 반 가량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정기 상담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예전 정신과 선생님께 상담을 받을 때, 음악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나(사생활)와 나의 음악(일)을 각자 분리시켜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다른 직업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울증에 노출되기 쉽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둘 사이에 자신만의 밸런스를 찾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요. 당시 처방받은 약을 잘 먹고 선생님께 상담을 받으며 건강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전보다 더 잘하고 싶어서 다시 욕심을 내면 낼 수록, 더 악을 쓰고 음악에 달려들수록 다시 우울증에 빠졌던 예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듭니다. 연습을 하며 머리를 뜯거나 뺨을 때리고, 분에 못 이겨 울부짖지 않으면 연습을 한 것 같지가 않습니다. 적당히 기분 좋게 끝내서는 원하는 수준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칠 때까지 악을 쓰고 오늘은 만족하더라도 내일 또다시 반복합니다. 이 일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일이고, 내가 원해서 선택했고, 나의 정체성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 일로는 나 자신이 행복해질 수가 없는 건지, 영원히 이렇게 불행하게만 살아야 하는 건지 너무 겁이 납니다.

일찍 생을 마감한 내 동료들의 마음이 너무나 이해가 됩니다. 내가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나라는 인간이 세상 가장 쓸모없이 느껴집니다. 이 마음은 실제 연주까지 이어져서, 무대 위에서 이 고통을 보상받고 싶고 또 그런 상태에서 연주를 하다 보면 결국 분노가 치밀어 올라 나 자신을 컨트롤할 수 없을 정도로 흥분하게 됩니다. 그래서 연주가 끝난 후에는 다시 내가 쓸모없이 느껴지고, 그래서 연습하다 화를 내고, 악 쓰고 울고... 그 악순환을 끊기가 너무 힘듭니다.

이 모든 게 제 욕심에서 비롯된 걸까요? 욕심이란 건 정말 나쁜 건가요? 잘하고 싶고, 그런 마음을 원동력 삼아 더 멀리 가고 싶은데, 저한테는 그게 왜 이리 힘든 건가요? 제 마음이 약해서 저를 이기지 못하는 건가요? 제 연인은 좀 더 욕심을 버리고 근처에서 또 다른 행복을 찾으라고 말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기가 싫습니다. 자존심이 너무 상하고, 음악에 만족하지 못하면 다른 그 어디에서도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입니다. 예전에 예술가 한 분을 면담할 때가 기억이 납니다. 그분은, 삶의 어떠한 행복이나 평안보다도 자신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고, 비록 저의 가치관은 이와 같지 않더라도 그분에게 깊이 공감하였고 때론 감명받기도 하였습니다. 저의 답변이 그러한 예술적인 가치관에 부합하지 않는 면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크게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이어나갈까 합니다.

첫 번째로, 글쓴이님께 음악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행복을 위한 수단, 혹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수단일까요, 아니면 삶의 목적 그 자체일까요?

두 번째로, 음악을 잘하고자 하는 글쓴이님의 마음이 '실제로' 음악을 잘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간단한 비유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제가 조난을 당해 3일간 물을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목이 찢어질 것처럼 마른데, 우연히 생수 한 병을 발견하였습니다. 저는 물병을 '어떻게' 들어야 할까요? 열심히 들어야 할까요? 물병을 최대한 꽉 쥐는 게 맞을까요? '그냥' 들어서 어서 물을 마시면 될 것입니다.

잘하려는 것이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원래 잘하려 했던 목적에 그러한 '너무 잘하려는' 생각이 방해가 될 수는 있습니다. 감히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저도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곡을 연습하다 보면 홀로 즐길 때 가장 듣기 좋은 연주가 나오고, 누군가 앞에서 연주를 하거나 아직 숙달되지 않은 테크닉을 무리해서 치려 하면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고 가슴이 뛰어 곡을 망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예술을 하며 더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마음은 당연하겠지요. 다만 잘하려는 그 마음이 실제로 내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역설적으로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더 내가 추구하는 결과에 부합하는 것은 아닌지를 되짚어보면 어떨까 합니다. 목이 심하게 마르다고 해서 물이 든 물병을 '최선을 다해, 최대한 꽉' 쥘 필요는 없겠지요. 그저 병을 들어 물을 마시듯, 잘하고자 하는 마음과 함께 '그저' 음악을 이어가시면 어떨까 합니다.

 

그리고 음악 작업에 지나친 의미가 투영된 것은 아닌지를 돌아보고, 원치 않는 결과가 나의 무가치함과 연결되는 지점을 짚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는 행위들은 나를 표현하고 내가 원하는 가치를 추구하는 수단이지만, 그 자체로 나 자신은 아닙니다. 음악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내가 행하는 행위 중 하나이고, 또한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때로는 잘할 수도 있고 때로는 흡족하게 하지 못할 수도 있는 현상 중 하나입니다. 음악 작업이 흡족하지 못할 때 그때그때마다, 그 부족함이 나 자신의 부족함으로 자동적으로 이어지고,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촉발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노력은 대개 힘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곧잘 더 노력한다는 의미를 나를 '괴롭히는' 것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내 개인 여가를 최대한 줄이고, 조금 더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붙이고, 행복감이 느껴질 때는 이를 외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삶, 나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세우며 노력하고 있음을 확인하려는 마음이 혹시 있는 건 아닌지도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해외에서 오래도록 공부하시고 큰 무대에 오르실 정도라면 아마 이미 상당한 인정을 받으셨을 것이라 상상해 봅니다. 아무쪼록 원하시는 예술의 아름다움, 그리고 일상의 평안과 행복이 삶에 깃드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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