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염태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한 20대 여자입니다.

제목에 쓴 것처럼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못하겠어요.

원래 어릴 때부터 성격이 소심하고, 다소 모나고, 남한테 관심 없고, 사람의 필요성을 잘 못 느끼긴 했지만 이렇게 모든 게 두렵진 않았는데, 고등학교 졸업 후 타지에서 몇 년간 사람들과 대화를 안 하고 살아서 그런 건지 우울증이 심해져서 그런 건지 대화하는 것이 힘들어요. (저는 만성 우울증이 있고, 이것 때문에 몇 년 동안 정신과 약을 먹다가 의사를 향한 불신과 부작용이 지겨워서 재작년에 끊었어요.)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 몇 년째 사귀고 있고 동거 중인데, 밖에 나가면 극도로 소심해져서 타인에게는 거의 말을 못 해요. 예전에는 제 성격이 이상하다는 자각을 못해서 별생각 없이 말 걸곤 했는데, 서서히 지인이 줄어드는 걸 보고 고민하다 보니 제가 민폐 덩어리 같고, 대화하면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고 피해 줄까 봐 말하기가 두려워요. 이 관념이 생긴 뒤로는 대화가 불편한 걸 넘어 남이 절 이상하게 보는 것 같고, 남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대학생 때는 인간관계에 예민하고 스트레스를 잘 받아서 단절하고 아웃사이더로 살았어요. 대화는 가끔 만나는 가족이나 애인이랑만 하고요. (이제는 애인도 제 우울을 지겨워하는 것 같아서 말을 별로 안 해요.)

이제 사회생활도 하고 돈 벌고 뭐라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밖에서 사람을 만나고 잘 대해야 하잖아요. 그걸 못하겠어요. 사람들이 저 때문에 불쾌해지고 절 싫어할 것만 같아요. 실제로는 사람들이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자꾸 '저 사람도 분명 내가 싫어질 거야. 그러니까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마. 기분 나쁜 사람보다는 없는 사람이 되는 게 나아.'라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에는 SNS 활동도 안 해요. 피해 줄까 봐요. 제가 타인과 너무 대화를 안 해서 이상해진 건가요? 겨울이라 우울이 심해져서 예민해진 건가요?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나요?? 억지로라도 일하고 사람 만나고 말을 하다 보면 나아질까요? 다른 사람들 SNS를 보니까 다른 동기는 교수님한테서 취업 관련 연락이 왔었다는데 저한테는 아무 연락도 없었어요. 어쩌면 저는 실력도 없고 성격도 이상해서 사람들이 정말로 저를 미워하는 것 아닐까요? 제발 도와주세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광화문숲 정신과 염태성입니다.

‘타인과의 관계형성이 힘들고 남들이 나에 대해 나쁜 생각을 할 것 같다’는 호소는 아마 정신과에서 가장 흔하게 이야기하시는 증상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인구가 많아지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어떤 일을 하든지 타인과의 관계형성이 필수가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것이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이러한 호소는 증상의 심한 정도에 따라 매우 다양한 질환들에서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긴장을 유발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기저불안이 높거나 대인관계에서 민감성을 가진 사람은 타인에 비해 과도한 불안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비교적 단순한 형태의 증상은 선천적으로 관계형성에 어려움을 가지는 회피성 성격장애나, 후천적으로 비슷한 문제를 가지게 되는 사회불안장애에서 흔히 보이는 증상입니다. 물론 우울증에서 흔히 동반되는 자존감 저하도 유사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남이 나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을 갖는다는 믿음이 큰 것을 관계사고라 하고, 이게 더 심해지면 관계망상이라고 부릅니다. 관계망상이 생기면 뚜렷한 근거가 없어도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나쁜 생각을 한다는 것을 무조건 믿게 됩니다. 관계사고나 망상은 정신과에서 상대적으로 중한 편에 속하는 질환인 조현병, 조울증, 심한 단계의 우울증에서 주로 생기는 문제입니다. 이 경우 단순한 단계에서 생기는 증상과는 다른 기전의 투약치료가 필요합니다.

다행인 것은 단순한 단계의 증상이 점차 심해진다고 해서 일반적으로 관계사고나 망상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둘은 발생기전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우울증, 불안장애, 회피성 성격장애만으로 인해 망상이 생기는 경우는 드뭅니다. 또한 써 주신 내용으로 파악해보건대 글쓴이 분께서도 비교적 단순한 단계의 관계불안을 가지고 계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신뢰를 가질 수 있는 전문가를 통해 우선 증상에 대한 평가를 받으시고, 이후 적절한 약물치료나 상담치료를 지속하시면 힘들어하시는 문제의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