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용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남편도 처음엔 부모처럼 저를 받아주고 잘해줘서 좋았는데, 어느 순간 자기도 지쳤는지 데면데면하게 되었어요. 권태기를 겪으며 깨달았어요. 남편은 제 부모도 아니고 부모님의 사랑을 줄 수도 없다는 걸요.

그 와중에 또다시 부모님과 비슷한 사람을 만났는데 이 사람이 너무 좋습니다. 이 사람도 제 부모가 될 수 없는데도 자꾸 이 사람의 아이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부모님께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해서일까요... 왜 자꾸 전 부모님의 사랑을 타인에게 구하는 걸까요? 결국 아무도 제 마음을 채워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저를 아이처럼 받아줄 사람을 찾게 돼요. 그게 더 이상 남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까 마음도 식었어요. 애정결핍인가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용진입니다.

남편에게서 애정이 식고 타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시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갈등이 깊은 상황이라 생각되어 안타깝군요. 사랑의 감정이 변하는 것은 여러 원인과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글쓴이님은 그 원인을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생각해보셨나 봅니다.

 

어린 시절의 부모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애정과 사랑의 결핍감,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공허감과 외로움은 원천적이고도 깊어, 말씀하셨듯 성인기 이후의 인간관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대체로 그런 경우, 그 결핍감을 타인을 통하여 채우려 하기 쉽고 또 그 근원이 어린 시절의 부모에게 바랬던 마음과 닿아있어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상대방의 사랑과 이해를 바라는 형태를 띠게 되죠. 하지만 상대방은 거의 항상 내가 어린 시절에 부모님께 기대했던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줄 수 없기에 관계는 지쳐가고, 쉽게 단절되고 식어버리는 패턴을 보이기도 합니다.

 

몇 가지 인지해야 할 사실들이 있습니다.

우선은 나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고 성인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바라는 것은 성인으로서의 이해와 사랑이지, 아이가 부모에게 바라는 그런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사실, 어린 시절의 결핍감을 현재에서 채워줄 수 있는 타인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부분은 어린 시절부터의 공허감이나 결핍감을 타인을 통하여 채우려고 하면 항상 실패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설령, 현재 살아계시는 부모님이 과거에 못주었던 사랑과 이해를 준다고 하여도 과거 어린 시절에 느꼈던 결핍감은 채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리고 약했던 절대적인 보호가 필요했던 아이 시절 느꼈던 감정이기에, 성인이 된 지금 타인이 채워주기에는 너무 유아적이거나 원초적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결핍감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자신뿐입니다. 스스로의 성취와 발전,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과 자존감 등으로 채워서 서서히 내 마음속의 어린아이와 결별해야 하는 것이죠.

 

다소 추상적인 글이 된 것 같습니다. 만약 현재의 문제가 반복되는 인간관계의 패턴처럼 느껴지고 그로 인하여 지속적으로 고통받아오셨다면 꼭 상담을 받아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친밀한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괴로움과 상실감은 생각보다 많이 힘들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도움이 되셨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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