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이제 20대 중반이 된 여성입니다.

저는 우울증에 걸린 것을 중학생 때 알게 되었습니다. 상담사분이 우울증이라고 얘기해주셨어요. 이유는 가정불화였습니다.

저에게 많은 치료 권유가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습니다. 처음엔 믿어 볼까 싶었지만, 가족도 못 믿는 제가 다른 사람을 믿는 것은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점차 제 증상은 심해졌고 성인이 될 무렵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전 자해를 일주일에 한 번은 해야 뭔가 후련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는 스스로가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에 갓 20살 때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병원을 찾아가는 자신이 참 한심했습니다. 병원을 가는 날마다 환청이 들렸습니다. '너는 정신병자야' '너는 왜 그런 식이냐' '네가 문제야'라는 비하하는 소리였죠. 그럴 때마다 눈물이 났습니다. 정말 제가 정신병자로 느껴졌거든요. 그래도 약을 먹으면서 점차 줄어들 것이라 믿었습니다.

 

저에겐 환경변화가 필수라고 하셨고, 운이 좋게 독립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허락받지 않은 독립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환경이 달라져도 저는 달라지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상황은 더 나빠졌습니다. 하루에 한 번은 꼭 자해하는 버릇이 들었습니다. 독립했지만 압박은 더 가해지며 성인이 되어 저에게 바라는 게 더 많아진 가족들 때문인지, 아니면 주위에 오래된 사람들이 한두 명씩 떠나가서 그런 건지 스스로 자책하는 시간이 더 늘어났습니다. 이제 다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다 제 탓으로 느껴집니다. ‘내가 미리 알아둘걸’, ‘미리 어떻게 해둘걸’이라며 머리로는 제 탓이 아닌 걸 알지만 마음으로는 제 탓을 하고 있습니다.

 

독립하면서 다른 병원을 알아보고 더 좋은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은 좋으신 분이었지만 저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약은 갈수록 늘어나면서 선생님도 같이 걱정하셨죠. 이 버릇을 버리라고 선생님이 그러셨지만 몇 년 동안 한 버릇이 한 번에 고치기는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아직도 저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젠 길거리 사람들만 봐도 어지럽고 울렁거리며 사람 만나는 게 힘들어졌습니다. 그래도 전 주변에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하며 사람 만나는 날도 늘려보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지치기 시작하네요.

이젠 모두 다 놓고 싶습니다. 제가 정작 너무 힘들고 아플 때 주변은 어둡더라고요. 그때 느꼈습니다. 이제 죽어도 되겠다고 말이죠. 이제 주변 사람들도 놓고 가족도 다 놓고 싶습니다. 유서도 자주 내용을 바꾸어 쓰고 있습니다. 저는 어떻게 죽어야 할지, 언제 죽어야 할지에 대한 생각으로 하루를 살아갑니다. 이런 저 어떻게 놓아야 할까요?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의학신문 김재옥입니다. 

현재 우울증을 치료받고 있지만, 치료도 삶도 모두 포기하고 싶으신 것 같네요. 또, 적어주신 내용에 가족도 믿지 못한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와 더 가슴이 아프네요. 

 

우울증은 가벼운 감기 같은 우울증부터, 심각한 폐렴 같은 우울증까지 그 심한 정도가 굉장히 다양합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가족과 갈등이 있었던 경우는 우울증도 심하게 오곤 하죠. 한 번 우울증이 시작되면 증상의 정도도 심하며, 자해나 음주, 약물 남용 같은 다른 문제들도 함께 잘 생기곤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약물치료뿐 아니라 병원에서 정신치료를 같이 받아야 훨씬 더 빠르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약이 아픈 기억을 치료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가족들에게서 독립하라는 권고를 받으셨던 것 같습니다. 아픈 기억이 계속 더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전의 아픈 기억을 치료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프네요. 본인이 들으셨다는 ‘너는 정신병자야’라는 말들도 본인이 스스로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지시겠지만, 사실은 이전에 가까운 주변 누군가가 질문자분에게 했던 말이나 태도였겠죠. 이런 증상은 자해하면서 더 악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신적 고통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자해를 하지만, 자해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것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으신데, 과거 질문자분을 비난했던 기억들이 거기에 붙어서 스스로를 더 심하게 비난하실 테니까요. 

 

아마 권고를 이미 받으셨을 것 같습니다만, 현재는 입원치료가 필요한 상황으로 보입니다. 항간에는 입원치료에 대한 단점들이 워낙 알려져 있지만, 입원치료를 하게 되면 질문자분을 힘들게 하는 상황들에서 피할 수 있으며, 내가 나를 조절하지 못할 때 의료진이 즉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자해만 예를 들어 생각하더라도, 입원하면 자해 횟수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스스로를 비난하는 횟수가 줄어들고, 결국 우울 증상에서 빠져나오는 데 도움이 되니까요. 

만약 입원치료를 하고 싶으시다면, 가장 좋은 병원은 질문자분이 평소에 다니던 병원입니다. 주치의 선생님이 이미 질문자분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장 안정적인 치료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만약 다니시던 병원이 입원 시설이 없다면, 주치의 선생님께 추천을 받으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보통은 그 지역에서 입원 가능한 병원과 담당 전문의를 잘 알고 있고, 질문자분에게 도움이 되는 전문의도 가장 잘 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자살은 우울증 환자분들이 입원하게 되는 주요 이유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퇴원할 때는 보통 더 이상 자살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시죠. 왜냐하면, 우울증은 삶의 부정적인 기억들만 떠올리게 하며 미래를 부정적으로만 예측하게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죽고 싶을 수밖에 없죠. 하지만 치료를 받게 되면서 행복한 삶의 기억들이 떠오르고,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면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살보다는 한 번 더 살아보자고 힘을 내시게 되죠. 

그러니 스스로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기를 원하신다면, 입원치료를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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