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내가 구원자라면 믿으시겠습니까

재림 예수, 구원자 운운하는 신흥종교의 이야기가 뉴스를 장식할 때마다 주변의 친구들에게 종종 농담처럼 던지는 질문이 있다. 

"만약 자금을 무제한 지원해준다고 한다면, 너는 다른 사람들이 너를 신이라고 믿게 만들 수 있겠어?"

대부분 처음에는 헛웃음을 짓거나 흘려 넘기지만, 한번 더 진지한 눈빛으로 물어보면 그래도 이런저런 시나리오들을 골똘히 생각해본다. 하지만 열에 아홉은 결국 고개를 가로젓고 만다. 

"어후, 난 못할 것 같다 야. 그러고 보면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참 대단한 거야."


우리나라엔 예로부터 재림 예수가 참 많았다. 물론 구원자, 신, 예수를 자처하는 사이비 교주의 이야기들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며,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유례없이 빠른 근대화를 거치며, 사이비 종교 또한 폭발적으로 증가해왔다. 정말 많은 자칭 예수들이 단기간에 여기저기서 재림했다. 마치 전국시대를 보는 듯하기도 했다. 2천 년 전 아랍에 등장했다는 메시아의 재림이 하필 극동아시아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우후죽순 나타난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이야기들은 매번 나름의 추종자들을 불러 모아 왔다. 군대를 조직했던 단체도 있고, 세계로 뻗어나가며 한류(?)의 문을 연 단체도 있다. 2020년 대한민국을 역병으로 몰고 간 악의 축이라며 손가락질받게 된 단체도 있다.

 

#자아중심성(Ego-Centrism)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신이라고 믿게 만들 수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한다. 왜냐하면 본인 스스로부터가 다른 사람을 신이라고 믿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 어떤 이야기를 듣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나 스스로도 절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면, 다른 사람들을 믿게 만들기도 어렵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생각할 때에 '나의 마음'을 바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A를 보고 B를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도 A를 보았을 때, 그렇게 판단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 앞에서 이야기하는 구원자의 재림'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무의식 중에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판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진_픽사베이


이렇게 나의 위치와 시선, 나의 지식과 사고방식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도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은 자아중심성(Egocentrism)이라고 부를 수 있다.

자아중심성은 인지발달단계를 연구한 피아제(J. Piaget)가 이야기한 개념이다. 어린아이들이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한 채 본인 중심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해석하는 모습을 피아제는 자아중심성이라고 기술했다. 아이들은 자아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머리만 쏙 커튼 뒤로 숨겨서 엄마를 볼 수 없게 되면, 엄마도 나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아제는 보통 7세를 전후해서 자아중심성이 극복되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할 수 있는 능력-Theory of mind가 발달한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도 자아중심성의 흔적은 무의식에 남아 있다.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할지를 헤아려 보는 작업은,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시뮬레이션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사람을 보면서, 마치 자신이 그 상황에 있는 것처럼 상상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거울신경(mirror neuron)과도 관련이 있다. 거울신경 네트워크의 시뮬레이션 작업은, 본인 뇌 내의 자원을 활용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근본적으로는 우리 모두 '나'의 경험과 사고체계 안에서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추론해볼 수 있다.


한 교회의 노회한 목사가 인류의 구원자라는 말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신이 내린 영생의 존재라는 말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나 자신이 그들과 똑같은 상황이라고 한다면, 나는 과연 그들과 같은 믿음을 가지게 될 수 있을까? 그렇게 판단하고 따르게 될 수 있을까? 만약 스스로 생각하기에, 절대로 그런 믿음이 생기지 않을 것 같다면, 그것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그럴 수도 있겠지'라며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그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기란 정말 어렵다.

 

#이해할 수 없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환자들과 면담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많이 듣게 된다. 특히 정신증 환자와의 면담에서 그런 경우를 많이 만나게 된다. '이해할 수 없는 사고의 흐름',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관찰하고 분석해야 할 때가 있다.

심각한 수준의 정신증 환자들은 단순히 환청과 망상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기본적인 사고과정의 정상적인 흐름이 깨져 있다. 대표적인 예로 전논리적(Paleologic) 사고를 들 수 있다. 전논리적 사고란 논리와 추론이 배제된 사고를 말한다. 마치 이런 흐름이다.

"성모마리아는 여성이다" → "나는 여성이다" → "나는 성모마리아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사실 직접 정신증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전논리적 사고가 가능하다는 것을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우리는 모두 '나의 마음'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추론하기 때문이다. '나의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되지 않는 행동과 이야기는 이해되지 않는다. 

 

#나와는 다른 존재

심한 정신증 환자들이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받는 시선들을 볼 때면 항상 느끼는 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나 행동'을 마주할 때 사람들이 대체로 비슷한 반응을 보이곤 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경험과 논리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행동과 사고방식을 만날 때, 이해하려고 열심히 시뮬레이션하고 노력하지만 결국 이해에 도달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사람들을 대체로 비슷한 결론을 내린다. 

그럴 때 사람들은 그들을 '나와 다른 존재'라고 분류한다. 나와 같은 종류의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와 비슷한 존재,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저렇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정신의학이 발달하고, 정신증이라는 병이 충분히 연구되고 있는 현대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정신증 환자들을 ‘정상인’과는 다른 존재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저 '정신병자' '미친 사람'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흔하다. 단지 '질병'에 걸린,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지 않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이 계속되는 이유도 어쩌면, '이해할 수 없음'을 그냥 '다른 존재'로 분류해버리는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행태 때문일지 모른다.

 

'2부, 막아야 할 위험한 사람들'로 이어집니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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