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위험한 본능

수십만 년 전으로 돌아가서 내가 백 명 남짓의 어떤 작은 초원 부족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자. 평생 보아온 내 주위의 사람들은 나와 같이 토끼를 먹고, 나와 같이 가죽으로 아랫도리를 가린다. 나와 같이 짚으로 지은 움막에 살고, 나와 같이 철마다 이동하며 생활한다.

그런데 어느 날 토끼 사냥을 나갔다가 평소보다 조금 멀리 떨어진 벌판까지 나가게 되었다.  거기서 우연히 난생처음 보는 어떤 무리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그들은 나와 달리 머리에 커다란 깃털을 꽂았고, 토끼가 아닌 개구리를 구워 먹고 있다. 나와 달리 온몸을 나뭇잎으로 두르고 있고, 나와 달리 통나무로 만든 집에 살고 있다. 

나와 다른, 평생 보아온 사람들과는 너무나 다른 이 존재들을 맞닥뜨린 수십만 년 전의 나는 과연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분명 직감적으로 경계하고 긴장했을 것이다.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실제로 수렵채집 사회에서 다른 부족 사람들과 조우하는 것은 그리 유쾌한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다. 인근 부족끼리는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였고,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다른 존재'를 빨리 판단하고 그들을 '위험한 존재'로 분류하는 본능은 생존에 필수적이었다. 

 

#경계의 본능

인류학자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수렵채집 사회에서 현대사회로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이뤄낸 쾌거 중 하나가 '통합'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과거에는 부족만 달라도 '나와 다른 존재'였다. 교류의 폭이 커지고 공감의 폭이 커지며 호모 사피엔스는 국가가 다른 존재, 인종이 다른 존재들을 하나씩 하나씩 '나와 같은 존재'에 포함시켜왔다. 인류가 모두 동등하고 같은 존재라는 인식의 대규모 통합을 이뤄왔다.

심지어 현대 사회에는 그 폭이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다른 동물들에게까지 넓혀지고 있다. 반려동물과 가축, 야생동물들까지, [나와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느끼는 존재들]의 카테고리가 포함하는 영역은 분명 점점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수십만 년간 우리의 DNA에 각인된 본능은 순식간에 사라질 수 없다. 우리는 여전히 다른 사람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판단한다. 나와 같은 존재인지, 경계해야 할 위험한 존재는 아닐지 분류한다. 
 

사진_픽셀


문제는 한번 ‘다른 존재‘로 분류된 사람들은 '위험한 존재', '잘못된 존재'로 낙인찍히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와 똑같이 생각하고 나와 똑같이 행동하지 않으면, 그래서 도저히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없게 되면 우리는 무심코 '열등하고 위험한 존재'라는 이름표를 붙여 버린다.

그렇게 한번 이름표가 붙은 사람들은, 하는 행동 하나하나 모든 것이 위험하고 이상해 보인다. 낯선 부족을 마주할 때의 경계심이 발동된다. 토끼가 아닌 개구리를 구워 먹는 그들의 행동이 역겨워 보인다. 구멍이 숭숭 뚫린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는 행위는 미개해 보인다. 머리에 꽂은 깃털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나서 가까이만 가도 무슨 저주라도 옮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박쥐를 먹는 사람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처음 동정되고 난 뒤, 그 진원지가 우한의 수산시장으로 지목되었었다. 우한의 수산시장의 뒤편에서는 불법 야생동물 거래가 오래도록 이루어지고 있었고, 위생관리가 전무한 상태에서 익히지 않은 야생동물 고기가 식용으로 소비되고 있었다. 연구진들은 이 과정에서 일상적인 코로나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켰고 인간에게 감염되었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이러한 사실이 전해지자 우리나라에서는 중국 식문화를 비난하는 네티즌들의 의견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박쥐와 라쿤을 잡아먹는 중국인들의 미개한 식문화 때문에 전 세계가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과거 SARS 역시 사향고양이에서 감염되었다고 보도된 바 있었기 때문에 그 분노와 혐오는 더욱 극에 달했다. 중국의 '민폐 문화'를 욕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중국인들이 원숭이나 뱀, 쥐나 동물의 태아 등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엽기적인 동영상이 계속해서 재생산되어 혐오를 키워나갔다.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은, 이것은 단지 식문화 자체에 대한 혐오가 아니라 비위생적인 유통 시스템에 대한 지적이라며 스스로를 변호했다.

물론 실제로 그러한 지적은 필요하다. 불법 야생동물 유통 과정에서 바이러스 변종이 발생했을 수 있고,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사람 간 전파가 빠르게 이루어졌을 수 있다. 앞으로의 공중 보건을 위해서 그런 점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적과 시정 요구가 필요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 그 수많은 비난의 말들은 단지 시스템 교정과 문제 해결을 위한 지적만이 아니었다. 그 비난과 욕설들 뒤에는 분명 '나와 다른 존재‘로 분류된 이들에 대한 경계가 있었다. 열등하고 미개한 존재에 대한 분노와 혐오,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중국의 식문화에 보내는 혐오 섞인 손가락질 밑에는 분명 그들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어떻게 아직도 그런 미개한 사람들이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라는 인식에서 출력된 이름표, ‘나와는 다른 나쁜 부족’이라는 이름표가 이미 우한에 붙어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행위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그 행위가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어떤 피해를 끼치고 있을 때라면 상황이 조금 더 복잡해진다. 민폐 끼치는 사람을 욕하는 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코로나19 사태도 마찬가지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판데믹(Pandemic-세계 대유행)으로 번지며 그 피해가 모두의 실생활로 다가와 있다.

실제로 나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다면 나의 비난은 당위를 얻을 수 있다. 혐오는 정당성을 얻고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받을 수 있다. 나와 다른 저 이상한 존재들을 ‘악의 축’ '나쁜 놈' '빌런'으로 이름 붙일 수 있게 된다.

 

#악당 찾기

스웨덴의 공중보건 전문가 한스 로슬링은 우리를 종종 몰이해에 빠뜨리는 잘못된 습관 중 하나로 '악당 찾기'를 이야기했다. 우리들에게는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에, 그 책임을 물을 범인을 찾는 본능, 이른바 '비난의 본능'이 있다. 문제의 단일 원인, 악당이 있다면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던 거대하고 복잡한 문제가 명쾌해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를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혼란과 분노를 투사하기 용이해진다.

한스 로슬링이 든 하나의 예가 있다. 매독 이야기이다. 중세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은 전염병 중에는 성매개 감염병인 매독이 있었다. 백신이나 치료제도 없고, 위생관념 또한 발달하지 못했던 그때에, 매독은 삽시간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매독에 걸린 환자들은 피부의 종기와 부스럼이 썩어 들어갔기 때문에 그 악취와 외양이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 무시무시한 병을 일컫는 이름이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러시아에서는 매독을 폴란드 질병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폴란드에서는 독일 질병이라고 했고, 독일에서는 프랑스 질병,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 질병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매독을 프랑스 질병이라고 불렀다.

매독이 유행하던 근대 이전 유럽에서는 '다른 나라 사람'이 곧 원시사회의 '다른 부족 사람'과 같았다. '나와 다른 존재'이자 '위험한 존재', '경계해야 하는 존재'라는 이름표를 붙여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사회악의 주범으로, 악당으로 표적하기 좋은 존재들이었다.


'악당 찾기'를 잘못된 습관이라고 역설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전 세계적 문제가 사실 어느 단일 원인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를 아우르는 문제들은 대부분 다양하고 복잡한 사정이 얽혀있다. 사악한 의도를 가진 악당 하나 때문에 생기는 거대한 사고는 많지 않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악당을 색출하고 비난하는 행위 자체가 문제 해결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문제의 발단과 원인, 경로를 명확히 파악해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단순히 범인을 찾아 힐난하기만 하는 것은 사실을 명확히 들여다보는 데에도, 사실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데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분노와 반목만을 키울 따름이다. 감정적인 집단 선택에 따른 혼란만 가중시킬 따름이다.

 

'3부, 진짜로 막아내야 할 것들'로 이어집니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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