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전문의, 신림 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사연) 

안녕하세요. 2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려고 하는 여성 직장인입니다. 지금 제 마음이, 감정이 우울증인지 모르겠어서 이렇게 글 남겨봅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너무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까지 할 정도로요. 그래도 어떻게든 관심사를 찾아보려 애썼고 관심 있던 분야의 시험을 여러 차례 도전했지만 연달아 낙방하고 또다시 미래에 대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또 다른 진로를 찾아 자격증 공부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게 맞게 살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공부하려 해도 자꾸 딴생각이 들고 집중 시간이 1시간이 넘을까 말까입니다. 이런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성격이 워낙 덜렁대서 기계도 잘 고장내고, 물건을 망가뜨리는 일도 잦습니다. 현재 함께 살고 있는 남자 친구에게도 덜렁댄다는 말을 많이 듣고, 가족에게도 많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하려고 해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직장에서 질문을 할 때도 내가 원하는 질문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려 해도 항상 의도가 다르게 전달되어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그러다 제가 답답해서 벌컥 화까지 내버립니다. 내가 실수한 건데도 화가 나는 상황이 최근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데 짜증이 나고, 상대방이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말에 화가 납니다. 이런 게 분노조절장애일까요?

 

그냥 요즘 제 자신이 너무 싫어져요. 세상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도 하나도 모르겠어요. 차라리 잘하는 게 있다면 그걸 직업으로 삼아도 될 텐데, 잘하는 것도 없고, 뭘 좋아하나 생각해 봐도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그냥 자존감이 계속 축축 쳐지고 있어요.

이런 내 상황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도움을 받고 싶어도 또 지금 내 심정을 제대로 말하지 못해 도리어 상대방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지게 해요. 고민을 탁 터놓고 말하고 싶어도 내가 그 사람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들어 버릴까 봐 말도 못 하고 속으로 '그래 그냥 넘기자.'라고 생각해 버립니다.

그렇게 넘기면 한동안은 괜찮아요. 기억력이 나빠서인지 안 좋았던 기분도 조금만 혼자 삭히면 금방 또 웃어집니다. 그런데 똑같은 상황이 되면 또 기분이 나빠져요. 제 기분을 컨트롤하고 싶은데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요새는 웃는 날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요. 남자 친구와의 대화도 예전엔 항상 즐거웠던 것 같은데 지금은 같이 관심 있던 주제도 몇 번 대화를 나누고 나면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예능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볼 때 잠깐 웃고 평소엔 웃음이 나오질 않아요.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 계속 불안합니다. 버스를 타면 내가 타고 있는 버스가 사고가 나는 상상을 하고, 퇴근하고 어두운 거리를 걸으면 누군가 나에게 접근할 것만 같습니다. 이게 우울증인지, 공황장애인지, 불안장애인지, 감정조절장애인지 모르겠어요.

그냥... 요새 내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진_픽셀


답변)

올려주신 내용을 보면 지금 많은 어려움을 겪고 계신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주의력, 의사소통, 감정조절, 자기 비하하는 태도, 막연한 불안감으로 인한 문제 상황이 구체적으로 보입니다.

 

제목에 올려주신 대로 우울증이 맞다면 위에서 얘기한 양상의 어려움을 경험하실 수 있고, 그 문제에 대해 진료를 보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우울증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면 주의력이 떨어지고, 실수가 많아지면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정조절이 안 되는 상황에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빈도가 높아질 수 있습니다. 또한 우울증을 겪는 과정에서는 지나친 자기 비하나 자책이 동반될 수 있고, 감정적인 어려움과 동반된 불안으로 인한 여러 가지 증상들을 경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른 경우로는 성인 ADHD에 대해 고려해볼 수 있겠습니다. 성인 ADHD는 안정적인 다른 성인에 비해 산만하고 부주의한 증상과 충동성으로 인해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해야 할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집중력에서 문제를 보일 가능성이 큽니다. 주의력에 어려움이 있으니 학업에도 어려움을 보이고, 일상생활이나 직장생활에서도 부주의한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주의력 문제는 의사소통에도 영향을 미쳐, 대인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그리고 좌절을 감내하지 못하고 충동적이며 다혈질적인 모습을 보여 안정적인 생활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언급된 어려움들로 일상에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다 보면, 좌절감이나 자기 비하가 많아지고, 자존감의 저하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로 인해 우울이나 불안 같은 공존질환도 성인 ADHD에서는 흔하게 진단될 수 있습니다.

 

사연의 뒷부분에 언급되어 있는 불안과 관련된 증상은 우울감이 악화되어 나타난 증상일 가능성도 있고, 자체로 불안장애의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내용만으로 어떤 종류의 불안장애인지 진단을 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위험에 대한 과장된 지각으로 인한 어려움으로 판단됩니다. 재난적이고 끔찍한 사건의 발생 가능성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고 사연 주신 분의 대처 가능성을 지나치게 낮게 평가하기 때문에 불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두려움이 과장된 것이고, 내가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야 불안에서 견디는 것이 가능해지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그러한 부분에 어려움을 경험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현재로써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모두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 어떠한 개인의 노력만으로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 한번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여, 상담 혹은 적절한 약물치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부족한 답변이지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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