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마인드랩 공간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이광민] 

 

영화 거짓말 (2013), 화려하게 꾸며진 거짓 이면의 비참한 현실 

피부과의원에서 피부관리사로 일하는 아영, 피부관리사라고는 하지만 막상 하는 일은 여드름을 짜는 일이다. 겉으로는 밝게 웃으며 예쁜 옷을 입고 번듯해 보이지만, 집으로 돌아온 그녀에게는 알코올 중독자인 언니와 가출을 일삼는 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고단한 삶이 있다. 아버지는 사업이 망하고 도망가 연락조차 되지 않고 어머니는 가족을 버리고 재혼해 연락을 피한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그녀의 삶에 낙이란 자신을 거짓으로 꾸미는 일이다. 화려한 옷을 입고 부동산을 돌며 고급 펜트하우스를 살 것처럼 구경하고 값비싼 가전제품을 구매한 뒤 취소한다. 자신을 때로는 전문직 여성으로, 유력한 가문의 딸로, 재력가의 아내로 거짓 포장했을 때, 자신의 비위를 맞추며 대접하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위안을 얻는다. 직장 동료에게 자신이 중학교 선생님과 연애를 하며 곧 결혼할 거라 이야기 꾸며내며 대인관계의 주도권을 이끌고 부러움의 시선을 즐긴다. 하지만 거짓 포장되는 자신이 많아질수록 더욱 커지는 건 현실의 비참함이다.
 

사진_픽사베이


다양한 거짓말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하루 중에 1.65번의 거짓말을 한다. 물론 이 거짓말은 대부분 하얀 거짓말이다. 상대방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사소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단순한 예의로 우리는 가벼운 거짓말을 하며 산다. 그냥 그런 음식을 아주 맛있다고 칭찬하고, 일반적인 호의에 정중한 감사 인사를 하고, 자신의 게으름에 교통체증 핑계를 대고, 갑자기 잡힌 회식에 아이가 아프다고 둘러대며 나온다. 괜히 있어 보이려 가짜 명품을 하고는 진짜인 척하기도 한다. 이런 거짓말은 상대방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아도 개의치 않는다. 악의적이지 않고 영향도 없기 때문이다.

반면 허언증, 병적 거짓말은 다르다. 영화에서처럼 거짓이 거짓을 만들며 점점 더 커지고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기도 한다.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고 대인관계도 깨어진다. 뻔히 들킬 허술한 거짓말을 반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사회 전체를 완벽히 속일 정도로 치밀한 경우도 있다. 과거 서울대학교 법대생 행세를 하며 유력 가문과 결혼까지 한 모 저축은행 회장의 이야기나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허위로 꾸며 국내 대학교수 및 국가적 행사 감독까지 되었던 사건은 유명하다.

 

자신의 뇌를 자신이 속인다

흥미롭게도 이런 병적 거짓말쟁이는 자신의 거짓말에 스스로도 속아버린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말과 행동이 거짓된 걸 알지만 그 상황에 익숙해져 버린다. 일종의 자기 최면이다.

최근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심한 거짓말을 할 때 일반인은 양심과 관련된 뇌 부위가 활발히 작동하지만, 병적 거짓말쟁이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할 때와 같은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고 한다. 달리 말하면 병적인 거짓말은 자신의 뇌도 속여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만든다. 의식적으로 정신을 차렸을 때는 거짓말이라는 걸 알지만 거짓말을 할 당시에는 스스로도 속아버린 거다.

이런 병적인 거짓말은 망상(Delusion)이나 작화증(confabulation)과는 다르다. 조현병에서 흔히 동반되는 망상은 왜곡된 지각과 사고, 판단에 따라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잘못된 내용을 확고하게 믿는 증상이다. 그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이지만 주변에서 볼 때는 터무니없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이상함을 알아차릴 수 있다. 

작화증은 치매나 뇌병변(손상)이 있는 경우 주로 나타나는데 뇌기능의 장애로 비워져 버린 생각의 상당 부분을 아무 말로나 채워 넣는 증상이다. 당연히 그 내용이 일관성이 없고 심한 경우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도 어렵다.

 

또 다른 거짓, 나는 잘못이 없다

병적인 거짓말은 치료가 어렵다. 정확히는 치료를 받으러 오지 않는다. 언급했듯 병적인 거짓말쟁이는 스스로도 속이고 있기 때문이다. 병적인 거짓말로 자신의 삶이 피폐해져 가고 주변의 사람들이 고통을 받아도 자신은 정작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 모른다. 한순간 거짓말이 자신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고 느껴도 어느 순간 다시 거짓된 삶으로 돌아가 있다.

병적인 거짓말쟁이는 내면에 다른 정신적인 어려움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어려움이 자꾸 거짓된 자기를 꾸며내도록 부추긴다. 자존감이 극도로 낮을 수 있고 과거 심한 트라우마가 있었을 수도 있고 우울증이나 불안증이 같이 있을 수 있다. 반복된 거짓말로 인해 인격이 변하기도 하고 인격장애로 인해 반복된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거짓말을 안 하게 해주는 약물이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런 약은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게 되면 거짓된 나는 필요 없어진다

치료를 위해서는 자신이 하는 거짓말이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있음을 알고 자신의 거짓말을 불편하게 느끼는 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치료 환경으로 찾아오게 되고 차분한 환경에서 병적인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정신과 의사 앞에서 조금씩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낸다.

초반에는 보잘것없이 느껴지는 자신을 치료자가 비난하고 무시하지 않을까 걱정될 것이다. 하지만 긍정도 부정도 아닌 공감과 이해를 받으면서 거짓된 자신을 꾸며내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안심하고 익숙해진다. 서로 지난하고 고단한 과정이지만 이 과정을 통해 꾸며내지 않은 자기 자신에게서 의미를 찾아내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 거짓된 자기는 필요 없어진다.

병적인 거짓말에 대한 정신과적 치료는 진실한 자신을 드러내는 연습을 하고 안심하며 익숙해져가는 일련의 과정이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고 상처 받고 중도에 포기하는 때도 많다.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과정은 자기 안의 어린아이를 키워가는 것과 같아서 실제 육아와 마찬가지로 인내와 끈기가 해결책이다.

 

이광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마인드랩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경북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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