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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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의 얼굴이 공개됐다. 우락부락하고 험상궂은 얼굴에, 칼자국과 문신이 얼룩덜룩할 것 같고, 과장하자면 뿔이 서너 개는 나 있을 것만 같던 끔찍한 괴물의 실체는 너무나도 평범한 얼굴의 25세 남성이었다. 주위에서 한두 번은 꼭 보았을 것만 같이 평범하고 앳된 그 모습에 강렬했던 분노가 다소 허탈해질 지경이다. 하지만 어쩌면 평범한 그 모습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평범하고 친숙하기에 우리들의 일상 속에 아무렇지 않게 숨어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흉악한 범인들은 대체로 그랬다. 평범하고 다정한 이웃이었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을 뿐이다. 당연한 그 익숙함에 새삼 모골이 송연해진다.

박사는 보통사람들과 보통사람처럼 어울리며 지내왔다. 수도권 소재 대학을 다니며 학보사 편집국장을 맡았었고, 학점도 우수했다고 한다. 봉사단체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심지어 박사방을 운영하던 기간에조차 보육원 봉사활동을 계속했다고 한다. 한 언론과의 봉사활동 인터뷰 기사 사진 속에서 그는 한없이 밝은 얼굴로 아이들과 어울리고 있다.

그의 악귀 같은 모습은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그의 표면 아래 철저히 숨겨져 있었다. 착하고 평범한 조주빈이라는 인물은 박사라는 또 다른 자아를 가지고 있었지만 아무도 알지 못했다. 박사가 활동하던 그곳은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알지 못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가면을 쓰고 있는 곳, 우리들 일상의 한 꺼풀 뒤, 익명의 세계였다.
 

사진_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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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본성에는 원래 악귀와 같은 면모가 있다. 우리 모두가 악귀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분명 인간 종의 뿌리 깊은 특성 중에는 잔악함이 있다. 수천 년 전부터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악녀 황후들의 이야기와 남미 아즈텍 문명의 인신공양부터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전 세계적인 비극까지, 인류의 역사는 분명 그 한 축에서 타인의 고통을 먹고 자라왔다. 단순한 도구적 살인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끔찍한, 약자의 고통을 즐기는 가학의 본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인간의 가학적 본성은 역사의 현장마다 빠짐없이 흔적을 남겨왔다. 

박사와 갓갓, 와치맨은 차마 이 글로 다시 상기시키고 싶지 않은 끔찍한 일들을 저질러왔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은 일들을 서슴없이, 그리고 자랑스럽게 저질러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다며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슬프게도 사람은 그럴 수 있다.

가학적 성도착증을 일컫는 '사디즘(Sadism)'의 유래가 된 프랑스의 사드 후작(마르키 드 사드)은 '소돔 120일'이라는 미완성 소설을 남겼다. 소설 속 귀족들은 어린아이와 하녀, 창녀들에게 각종 고문을 일삼으며 유희를 즐긴다. 그 내용은 N번방 사건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잔인하다. 단순한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드 후작의 소설은 백 년이 넘도록 살아남아왔다. 중국 악녀들의 이야기도 수천 년을 살아 남아 왔다. 그 이야기들에는 인간 내면의 끔찍한 본성을 흥분시키는 묘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학성이라는 것은 아주 드문 몇몇 괴물들에게만 있는 게 아닐 수 있다. N번방 사용자들도 주변에서 극히 보기 드문 괴물 사이코패스들이 아니다. 그들 역시 우리들과 같아 보이는, 우리 근처의 일반인들이다. 심지어 수만 명에 달한다.

사람의 본성에는 원래 악귀와 같은 면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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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적으로 볼 때, 사디즘은 통제력을 회복하고자 하는 욕구의 표현이라고 해석된다. 자신의 능력과 권위가 좌절되는 현실을 부정하고자,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는 방법을 통해 자신도 무언가를 통제할 수 있다는 감각을 되찾고자 한다는 것이다. 물론 약자의 희생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심하게 왜곡된 정신기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사디즘 내면의 이러한 욕구를 살펴보는 것은 가학의 평범성, 악의 평범성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사실 누구나 살면서 자신의 능력과 권위가 좌절되는 경험을 하곤 한다.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 다시 말해 통제력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무수히 좌절한다. 군것질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좌절부터, 사업에 도산하는 회장님의 좌절까지 그것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제력을 되찾고자 하는 욕구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원초적 욕구일 수밖에 없다. 통제력을 점점 계속 잃어버리다가는 자아가 완전히 흩어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는 본능적이다.

때문에 누구나 한 번쯤은 법과 윤리를 초월해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는 상상에 빠진다. 상상 속에서는 직장 상사를 쥐어 팰 수도 있고, 회사에 불을 지를 수도 있다. 상상 속에서라면 초능력을 써서 다른 사람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도 있다. 우리는 분명 통제력을 되찾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가학적 성도착증, 그 왜곡된 행위만 들여다봐서는 그것을 결코 막을 수 없다. 그 행위 내면의 욕구를 들여다볼 때에야 비로소 악의 보편성을 이해하고 막을 수 있다. 그 내면의 욕구, 통제력을 회복하고자 하는 욕구 자체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이자 모두의 환상(Fantasy)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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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숨길 수밖에 없는 욕망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을 내 마음대로 다루고 싶고, 모든 것을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싶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분명 본능적이고, 평범한 우리 모두를 자극한다.

따라서 잔악무도한 범죄자들의 일상이 그토록 평범한 것도, 우리 주변의 친근한 이웃이 남몰래 연쇄살인을 벌이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끔찍한 범죄라고 해서 아주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그렇다면, 그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행동을 실제로, 상상이 아닌 실제로 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과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폭력적인 상상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아니,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그런 욕망이 생겼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조차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N번방의 그들은 평범의 얼굴을 든 채, 익명의 손으로 약자에게 자신들의 숨겨진 욕망을 배설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N번방의 만행이 그토록 평범한 일상으로 뒤덮여 있었다는 사실은 박사와 갓갓, 와치맨이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박사와 갓갓을 추켜세우고 돈을 보내고 공유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한, 평범한 그들이 있는 한, 평범한 누군가는 다시 박사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하고 막아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평범한 나의 이웃, N번방과 박사의 비밀 - 2편에 이어집니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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