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나종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나는 이제 호스피스 들어왔는데, 여기도 전쟁이네. 잘 가라. 내 몫까지 행복해라.”

미국으로 떠나던 공항에서, 나의 이십 대의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희수는 핸드폰 너머로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불과 한 달이 되지 않아, 내가 세상에 태어난 날에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생일날 전해 들은 비보는, 자기를 잊지 말아 달라는 희수의 마지막 부탁 같았다. 기쁨으로 가득했던 나의 이십 대는 순식간에 빛바랜 기억이 되었고, 가장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조차도 회상 후에 오롯이 기쁨으로 남기보다는, 희수의 빈자리를 확인해 주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희수를 잃은 후, 내 생일은 희수의 기일이 되었다. (사진_픽셀)


이 글을 쓰는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로 8,000여 명 이상이 사망한 미국에서는 3월부터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를 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하고, 모든 학교는 문을 닫았으며, 사람들은 오직 온라인으로 화상회의/수업을 하고, 친구, 가족들과조차도 직접적 접촉을 삼가고 있다. 특히나, 내가 살고 있는 뉴욕 주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인 주이며, 일하고 있는 뉴욕 시의 상황은 전시를 방불케 할 정도로 긴박하고 다급하게 돌아가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통해 우리가 현재 느끼는 수많은 감정에는 우울, 분노, 불안 등을 포함한 다양한 감정이 존재할 것이다. 나는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과정이 애도(grief) 과정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이 애도 반응은 일차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바이러스에 잃은 것에 기원한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뉴스를 통해서 접하는, 세상을 떠난 수많은 시민들의 사연 또한 간접 애도 반응을 촉진시킬 것이다. 예기 애도(anticipatory grief; 아직 발생하지 않은 상실에 대한 애도 반응, 시한부 선고를 받은 가족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상실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기 전의 애도 반응) 또한 존재한다.
 

중국인 의사 리원량의 죽음에 사람들은 애도했다. (출처: The New Yorker)


하지만, 이 애도 경험의 보편성은, 단순히 수많은 사람을 잃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작게는 우리가 영위하던 일상생활과 관계의 상실로 인한 애도 반응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보다 거시적으로,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잃어버린 세상을 애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우리의 앞으로의 삶이, 코로나 사태 이전의 세상과 다를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최근 애도 연구가인 케슬러(David Kessler) 박사는 한 매체에서 애도의 단계와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의 사람들의 반응을 흥미롭게 묘사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사람들의 대응에는 부정(denial; 이 바이러스는 독감이랑 다를 바 없어,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못할 거야), 분노(anger; 내 취미 생활을 뺏어가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다니!), 협상(bargaining; 그래, 내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2주간 하면 나아지는 거 맞지?), 우울(depression; 이게 도대체 끝나기는 할까?)이 모두 존재한다.

그리고, 수용(acceptance; 그래, 이건 현실이야, 난 이제 내가 어떻게 나아갈지를 생각해야겠어)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수용을 통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의 불안이 감소하고,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1).

 

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으로 이어지는 애도의 선형적 단계에 대한 이론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이후 이루어진 많은 연구들이 애도의 단계는 직선적이지 않으며, 사람마다 다름을 보고했다.

많은 연구들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실을 경험한 후에, 현실을 수용하고, 상실한 대상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청사진을 그릴 수 있을 때, 비로소 통합된 애도(integrated grief)의 단계로 나아간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에도 내 삶이 풍요롭고 만족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가 맞이할 새로운 세상 또한 마찬가지 일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애도를 여행에 비유하여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여행을 떠났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고, 감정이 가라앉고 생각이 정리된 후에 다시 애도를 하기 전의 자리로 돌아와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하지만 실은 애도란 완전히 다른 세계로의, ‘귀환 없는 여정’을 의미한다.

어떤 것도 그 사람을 잃은 나를, 그 사람을 잃기 전의 나로 돌아가게 만들지는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의 애도 과정은 그렇게 새로운 나를 만나고, 고인과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는 과정이 되어간다.

마찬가지로, 이제 세상은 코로나 사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IMF사태 이전과 이후가 나뉘듯이, 사회의 문화와 제도, 그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인 우리의 마음가짐, 행동방식, 그리고 가치관이 모두 달라진 사회를 우리는 살아가게 될 것이다.

 

케슬러 박사는, 애도의 다섯 단계를 넘어선 여섯 번째 단계를 말한다. 바로 “의미(meaning)”이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 애도를 경험할 때, 수용을 넘어서 더 큰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는 앞서 언급한 통합된 애도와도 일치한다.
 

사진_픽셀


희수가 떠난 이후로 내 이십 대의 많은 기억에 슬픔이 드리웠다. 지금도 내 생일날은 기쁨과 그리움이 공존하는 날이다. 하지만 희수가 떠난 후에 나는 내 인생의 가장 큰 교훈을 얻었다. 내 몫까지 행복하라던 희수의 말은, 내가 그를 잃은 후의 새로운 세상을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애도는 상실 후, 사랑의 다른 형태일 뿐이다 (Grief is the form love takes when someone we love dies).”


또 다른 애도 연구의 대가인 캐서린 셰어(Katherine Shear) 박사는 애도를 이렇게 묘사한다. 역설적으로, 결국 우리가 이렇게 애도 반응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세상을 사랑하고, 우리의 소소한 일상, 우리가 맺는 진솔한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로 우리가 맞이할 다른 세상의 열쇠 또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애도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글은 기존에 여러 기사를 통해 다루어졌습니다. 이들과 별개로 평소 애도에 대해 연구하던 관점에서 논지를 진행하였고, 일부는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참고 문헌: (1) Harvard Business Review, “당신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불편한 감정은 애도입니다. (The discomfort you are noticing is grief)” https://hbr.org/2020/03/that-discomfort-youre-feeling-is-grief)

나종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예일대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
메이요클리닉, 뉴욕대학교 정신과 레지던트
예일대학교 중독 정신과 전임의
서울대 심리학 학사,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석사
저서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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